19번 문제
19. 다음 상황이 나타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3점]
| 어제 21일 김규식은 출발에 앞서 이번 북행(北行)에 대한 소견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나와 김구 선생은 우리의 손으로써 조국을 통일시켜야 한다는 데서 남북 협상을 제안하였던 것이다. …(중략)… 우리는 안으로 민족의 통일을 성취시키고, 밖으로 연합국의 협조를 통하여 우리의 자주독립을 이루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제시할 예정이다.
1. 어떠한 형태의 독재 정치라도 이를 배격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를 건립할 것. …(중략)… 5. 미.소 양군의 조속한 철수에 관해서는 우선 양군 당국이 철수 조건 및 기일 등을 협정하여 공포하라고 주장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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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가)
② (나)
③ (다)
④ (라)
⑤ (마)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1948년 2월, 유엔은 소총회를 열어 한국 임시 위원단의 접근이 가능한 지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남한만의 단독 선거가 결정되고, 미군정은 5월 총선거 실시를 발표하였다.
김구, 김규식 등은 남한만의 선거로 단독 정부가 수립되면 남북의 분단이 계속될 것을 우려하여 남북한이 협상을 통해서 통일 정부를 수립하자고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김구 등은 남북 협상을 제의하였다.
1948년 4월, 평양에서 김구와 김규식, 김일성과 김두봉 등이 참석하는 남북 연석 회의가 열렸다.
여기에서 단독 정부 수립 반대, 미소 양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조선 건국 동맹 조직 – 1944년
8.15 광복 – 1945년
(나)
제헌 국회 출범 – 1948년 8월 15일
정전 협정 – 1953년
5.16 군사 정변 – 1961년
3선 개헌 – 1969년
정답은 ②번이다.
1948년 2월, 유엔은 소총회를 열어 한국 임시 위원단의 접근이 가능한 지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남한만의 단독 선거가 결정되고, 미군정은 5월 총선거 실시를 발표하였다.
김구, 김규식 등은 남한만의 선거로 단독 정부가 수립되면 남북의 분단이 계속될 것을 우려하여 남북한이 협상을 통해서 통일 정부를 수립하자고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김구 등은 남북 협상을 제의하였다.
1948년 4월, 평양에서 김구와 김규식, 김일성과 김두봉 등이 참석하는 남북 연석 회의가 열렸다. 여기에서 단독 정부 수립 반대, 미소 양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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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윤봉길 의거 이후 큰 활력을 얻었다. 그러나 더 강화된 일제의 감시와 탄압 때문에 상하이를 떠나야만 하였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여러 차례 이동을 거듭한 끝에 충칭에 정착하였다.
1940년 김구의 한국 국민당, 조소앙의 한국 독립당, 지청천의 조선 혁명당 3당은 한국 독립당을 결성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이끌었다.
1940년 임시 정부는 중국 충칭에 정착하여, 총사령관을 지청천, 참모장을 이범석으로 하는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다. 임시 정부는 주석 중심의 단일 지도 체제로 헌법을 개정하고, 김구를 주석으로 선출하였다.
1941년 임시 정부는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기초로 하여 대한민국 건국 강령을 발표하였다. 이 강령에는 보통 선거를 통한 민주 공화정 수립, 토지와 대기업 국유화, 의무 교육 제도 시행, 노동권 보장 등의 내용이 담겼다.
1942년 화북 지방으로 이동하지 않은 조선 민족 전선 연맹(민족 혁명당 후신)의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 의용대 일부가 한국광복군에 합류하였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정식으로 일제에 대일 선전 포고를 하였다. 1944년 한국광복군은 미국 전략 정보국(OSS)와 함께 국내 진공 작전(작전명 독수리 작전)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일제가 일찍 항복하면서 작전은 무산되었다.
화북 지방으로 이동한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는 일본군의 공세에 맞서 호가장 전투 등이 참가하여 큰 전과를 거두었다. 1942년 중국 화북 지역에서 김두봉이 주도하고 한국인 사회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 독립 동맹을 결성하였다. 조선 독립 동맹은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를 조선 의용군으로 개편하였다. 조선 의용군은 중국 공산당의 팔로군 등과 함께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국내에서도 건국 준비 활동이 시작되었다. 1944년 여운형, 안재홍 등 좌·우익 세력이 합작하여 조선 건국 동맹이 만들어졌다. 일제의 패망을 확신한 여운형은 독립 선언서를 준비하고, 무장 세력도 조직하면서 해외 독립운동 세력과의 연계를 시도하였다. 조선 건국 동맹은 일제 타도를 위한 대동단결, 민주주의 원칙에 바탕을 둔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강령을 발표하였다.
1943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개최된 카이로 회담에 미국, 중국, 영국의 3국 정상이 참석하였다. 3국 대표는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독립시킬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카이로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는 최초로 한국의 독립이 약속된 것이다.
1945년 미국, 중국, 영국의 3국 정상이 얄타에서 회담을 열었다. 이 회담에서 소련이 일본과의 전쟁에 참여한다는 내용의 협정이 체결되었다.
1945년 미국, 중국, 영국의 3국 정상이 독일 포츠담에서 회담을 열었다. 이 회담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카이로 선언에서 결정된 한국의 독립을 재확인한다는 포츠담 선언이 발표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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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 후 38도선 획정과 군정 실시 |
마침내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일제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 민족의 광복은 미국, 영국, 중국, 소련 등 연합군이 승리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이 국내외에서 줄기차게 전개해 온 독립 투쟁의 결실이었다.
하지만 광복의 감격과 각계각층의 건국 운동이 곧바로 자주 독립 국가의 건설로 연결되지는 못하였다.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이유로 미군과 소련군이 38도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설정하고, 38도선 이남과 이북에 진주하여 군정을 실시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미⋅소의 분할 점령과 함께 우리 민족도 우익과 좌익으로 분열하기 시작하였다.
1945년 9월, 미군은 서울에 들어와 조선 총독의 항복을 받고 군정청을 설치하여 남한 지역을 직접 통치하였다. 미군은 통치의 편의를 위해 조선 총독부의 행정 체제를 유지하였다. 미군정의 직접 통치 방침에 따라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정부의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한편, 소련군은 각 지역에 세워진 인민 위원회에 행정권을 이양하여 간접 통치하는 방식을 취하였고, 사회주의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도록 지원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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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정부 수립 |
1948년 5월 10일, 38도선 이남 지역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총선거가 실시되었다(5⋅10 총선거). 5⋅10 총선거는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 원칙에 따라 치러진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주의 선거였다. 총선거를 통해 임기 2년의 198명의 제헌 국회 의원이 선출되었다. 김구, 김규식 등 남북 협상 참가 세력과 많은 중도계 인사가 남한만의 단독 선거에 반대하며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
1948년 7월 17일 총선거를 구성된 제헌 국회는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삼권 분립에 바탕을 둔 헌법을 공포하였다. 헌법은 대한민국이 3·1 운동으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으며, 국민 주권에 바탕을 둔 민주 공화국임을 명시하였다. 정부 형태는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였으나, 대통령과 부통령은 국회에서 간선제 방식으로 선출하도록 하였다.
제헌 국회는 이승만을 대통령, 이시영을 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하였다. 유엔 총회는 대한민국 정부를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의 총선거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 수립된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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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 |
냉전이 심화하는 가운데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이 무렵 남한과 북한은 서로의 체제를 비난하면서 38도선 부근에서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을 벌였다.
1949년 10월, 국공 내전에서 승리한 중국 공산당은 중화 인민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국공 내전에 참여하였던 조선 의용군이 북한에 편입되어 북한의 군사력이 강화되었다. 북한은 중국은 물론 소련에서도 군사 지원을 받았다. 소련은 북한의 남침 계획에 동의하였으며, 중국도 필요한 경우 참전할 것을 약속하였다.
1950년 1월, 미국은 태평양 방위선에서 한반도와 타이완을 제외한다는 애치슨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에 북한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져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였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6·25 전쟁이 시작되었다. 부산이 임시 수도가 되었다.
유엔은 전쟁이 나자 안전 보장 이사회를 소집하여 북한의 남침을 침략 행위로 규정하였고, 이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16개국이 유엔군을 파견하였다.
1950년 9월 15일, 유엔군과 국군은 인천 상륙 작전에 성공하였다. 동시에 북한군의 전력 분산을 위한 장사 상륙 작전이 진행되었다.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 후 38선을 넘어 압록강까지 북진하였다. 1950년 11월 1일, 국군∙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최대로 북진하였다.
1950년 10월, 중국군의 개입 후 장진호 전투가 벌어졌고 국군과 유엔군은 남쪽으로 후퇴하였으며, 이 가운데 흥남 철수 작전도 이뤄졌다.
1951년 1월 4일에는 다시 서울이 함락되었다. 이후 전세는 휴전선 일대에서 교착 상태에 들어갔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좌익 전향자를 계몽·지도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인 국민 보도 연맹원에 대한 학살이 자행되었다.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소련은 국제 연합(UN)에 정전을 제안하였다.
정전 회담의 주요 쟁점은 군사 분계선 설정과 포로 송환 문제였다. 유엔군 측은 포로의 자유송환을, 공산군 측은 강제송환을 주장했다.
정전을 반대하는 이승만 정부는 27,000여 명에 이르는 반공 포로를 석방하여 정전 회담은 큰 위기를 맞기도 했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 협정이 조인됨으로써 3년여 만에 6·25 전쟁은 정전으로 매듭지어졌다. 휴전협정에 서명한 나라는 미국, 북한, 중국이다. 휴전협정으로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시위원단이 설치되었다.
1953년 6.25 전쟁이 끝난 이후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에 따라 미군이 한국에 계속 주둔하였고, 미국의 영향력은 한국과 동아시아에서 강화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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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6 군사 정변 |
장면 내각 시기에 전개된 민간 차원의 통일 운동과 정부의 군비 축소 계획에 대해 일부 군인들은 불만을 품고 있었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와 일부 군인들이 군사 정변을 일으켜 헌정을 중단하였다.
군사 정변 세력은 군사 혁명 위원회를 조직하고, 반공을 국시로 내건 ‘혁명 공약’을 발표하였으며, 비상계엄을 선포하였다.
군사 정변 세력은 국가 재건 최고 회의를 구성하고 군정을 시행하였다.
1961년 군사 정변 세력은 5·16 군사 정변 직후 중앙정보부를 창설하였다.
군사 정변 세력은 정치 정화법을 제정하여 주요 정치인들의 정치 활동을 규제하였다.
군사 정변 세력은 대통령 직선제, 대통령 중심제와 단원제 국회 구성을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안을 국민 투표로 확정하여 공포하였다.
군사 정변 세력은 민주 공화당을 창당했다.
군사 정변 당시 군부 세력은 민간에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약속하였으나 박정희는 전역 직후 제5대 대통령 선거에 민주 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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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선 개헌 |
1967년 박정희는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1968년 북한 특수 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하고, 미해군의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나포되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었다.
박정희 정부는 국가 안보와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구실로 대통령 3회 연임을 허용하는 개헌을 추진하였다. 1969년, 3선 개헌을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졌지만, 결국 여당 의원들만 따로 모여 편법적으로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1971년 박정희는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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