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학년도 수능 한국사 3번 해설 – 고구려

3번 문제

3. (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개로왕이 북위에 사신을 보내 표(表)를 올렸다. “우리와 (가)은/는 모두 부여에서 나왔으므로 서로 옛정을 굳건히 존중하였는데, 그들의 선조인 쇠(釗, 고국원왕)가 이웃과의 우호를 깨버리고 우리의 국경을 짓밟았습니다. 이에 우리의 선조께서 평양성을 공격하여 쇠를 죽였습니다. …(중략)… 지금 (가)의 연(璉, 장수왕)이 죄가 있어 나라는 엉망이 되었고, 백성들은 이리저리 흩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멸망시킬 기회이며 폐하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입니다.”

① 조사 시찰단을 파견하였다.

② 도병마사를 설치하였다.

③ 수의 침략을 막아 냈다.

④ 전국을 8도로 나누었다.

⑤ 대가야를 정복하였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472년 백제 개로왕은 고구려를 견제하고자 북위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 공격을 요청했다.

고국원왕과 장수왕 모두 고구려의 국왕이다.

(가)에 해당하는 국가는 고구려이다.

 

① 조사 시찰단을 파견하였다.

1881년에 조선 정부는 박정양, 어윤중, 홍영식, 유길준 등을 비밀리에 조사 시찰단으로 일본에 파견하였다.

이들은 일본의 제도와 법률, 공장 등을 조사하고 국왕에게 보고서를 올려 개화 정책의 자료로 삼게 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도병마사를 설치하였다.

도병마사는 고려의 중앙 정치 조직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수의 침략을 막아 냈다.

612년 고구려의 을지문덕은 수나라군을 상대로 살수대첩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전국을 8도로 나누었다.

조선 태종 때 전국을 8도(道)로 나누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대가야를 정복하였다.

신라 진흥왕 때 대가야를 정복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한성 함락
  •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 정책으로 압박을 느낀 백제와 신라는 433년 나·제 동맹을 맺음
  • 472년 개로왕은 고구려를 견제하고자 북위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 공격을 요청
  •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살해됨
  • 475년, 백제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함
  • 493년 고구려의 남진 정책에 대응하기 위하여 백제 동성왕과 신라 소지왕은 혼인 동맹을 맺어 나·제 동맹을 강화
고구려와
수·당 전쟁
  • 612년 을지문덕의 살수 대첩(수나라)
  • 631년 천리장성 축조 시작(당나라 대비)
  • 642년 연개소문 정변, 영류왕 살해, 보장왕 즉위
  • 645년 안시성 전투(당나라)
외교 사절과
시찰단 파견
  • 수신사

강화도 조약 체결 직후 정부는 일본에 수신사를 파견하여 근대화에 필요한 기술과 정보를 조사하였다.

    • 1차 수신사

1차 수신사 김기수 일행은 일본의 근대 시설을 시찰하였다(1876년).

    • 2차 수신사

일본과의 조약 개정을 위해 파견된 2차 수신사 김홍집 일행은 목적을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일본의 발전상을 살펴보고 돌아왔다(1880년).

이때 김홍집은 <조선책략>을 가지고 들어왔다.

    • 3차 수신사

박영효가 일본에 파견되었다.

 

  • 조사 시찰단

정부는 1881년에 박정양, 어윤중, 홍영식, 유길준 등을 비밀리에 조사 시찰단으로 일본에 파견하였다.

이들은 일본의 제도와 법률, 공장 등을 조사하고 국왕에게 보고서를 올려 개화 정책의 자료로 삼게 하였다.

 

  • 영선사(1881년)

정부는 김윤식을 영선사로 임명하여 중인 자제들을 이끌고 청에 가서 무기 화약 기계 제조법을 배우게 하였다.

정부의 재정 부족으로 인원이 줄고 임오군란이 일어나면서 이들은 일찍 돌아오게 되었으나 이를 계기로 기기창이 설치되었다.

기기창

1883년 한성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무기 제조 공장이었다.

 

  • 보빙사

정부는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후 미국과 수교한 이후 미국에 답례 사절단인 보빙사를 파견하여 근대 시설을 살펴보게 하였다(1883년).

민영익, 유길준, 홍영식, 서광범 등이 파견되었다. 유길준은 귀국 후에 <서유견문>을 집필하여 서양 근대 문명을 소개했다.

고려
중앙 정치 조직
고려의 통치 체제는 성종 때에 마련한 2성 6부제를 토대로 하였다. 고려는 당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도 고려의 실정에 맞게 이를 조정하였다.

 

중서문하성

  • 중서문하성은 고려의 최고 관서로서, 그 장관인 문하시중이 국정을 총괄하였다.
  • 중서문하성은 재신과 낭사로 구성되었다. 재신은 국가의 정책을 심의하고, 낭사는 정치의 잘못을 비판하였다.
  • 낭사는 어사대의 관원과 함께 대간으로 불렸다.
  • 재신은 중추원의 추밀과 함께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의 구성원이었다.

 

상서성

  • 상서성은 실제 정무를 나누어 담당하는 6부를 두고 정책의 집행을 담당하였다.
  • 6부 – 6부에는 이부, 병부, 호부, 형부, 예부, 공부가 소속되어 있었다.

 

중추원

  • 송의 제도를 본따 만든 중추원은 군사 기밀과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였다.
  • 군사 기밀을 담당하면서 재신과 함께 국정을 총괄하는 추밀과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는 승선으로 구성되었다.
  • 추밀은 중서문하성의 재신과 함께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의 구성원이었다.

 

삼사

  • 삼사는 송나라와 달리, 단순히 화폐와 곡식의 출납에 대한 회계만 맡았다.

 

어사대

  • 어사대는 정치의 잘잘못을 논하고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는 임무를 맡았다.
  • 어사대의 관원은 중서문하성의 낭사와 함께 대간으로 불렸다.

 

대간

  • 대간은 어사대의 관원과 중서문하성의 낭사로 구성된다.
  • 왕의 잘못을 논하는 간쟁과 잘못된 왕명을 시행하지 않고 되돌려보내는 봉박, 관리의 임명과 법령의 개정이나 폐지 등에 동의하는 서경권을 가지고 있었다.

 

도병마사

  • 도병마사는 고려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관청으로, 재신과 추밀이 함께 모여 회의로 국방, 군사 문제를 논의하였다.
  • 도병마사는 국방 문제를 담당하는 임시 기구였으나, 고려 후기에 도평의사사(도당)로 개편되면서 구성원이 확대되고 국정 전반에 걸친 중요 사항을 담당하는 최고 정무 기구로 발전하였다.
  • 이러한 회의 기구의 존재는 고려 귀족 정치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식목도감

  • 식목도감는 고려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관청으로, 재신과 추밀이 함께 모여 회의로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곳이었다.
  • 식목도감은 임시 기구로서 국내 정치에 관한 법의 제정이나 각종 시행 규정을 다루던 회의 기구였다.
  • 이러한 회의 기구의 존재는 고려 귀족 정치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조선 태종 두 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을 통하여 개국 공신 세력을 몰아 내고 왕위에 오른 태종은 왕권을 강화하고 국왕 중심의 통치 체제를 정비하고자 하였다.

 

  • 6조 직계제

태종은 도평의사사를 없애고 의정부를 두면서 그 정치적 권한을 약화시키고, 6조 직계제를 채택하였다. (6조에서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사안을 국왕에게 올려 재가를 받아 시행하는 제도)

  • 사간원 독립

언론 기관인 사간원을 독립시켜 대신들을 견제하였다.

  • 사병 혁파

사병을 없애 왕이 군사 지휘권을 장악하면서 친위 군사를 늘렸다.

  • 조선 8도

태종 13년에 전국을 8도(道)로 나누었다.

  • 양전 사업

태종은 양전 사업에 노력을 기울였다.

  • 호패법

호패법을 실시하여 전국의 인구 동태를 파악하였으며, 이를 조세 징수와 군역부과에 활용하였다. 16세 이상 남자에게 발급했다. 거주지와 이름을 적었다.

호패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태종 때에 세계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만들었다.

  • 계미자

태종 때에 주자소를 설치하고 구리로 계미자를 주조하였다.

  • 신문고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신문고를 설치하여,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사섬서

사섬서를 설치하여 저화를 발행하였다.

신라
진흥왕
  • 활발한 정복 활동을 전개하면서 삼국 간의 항쟁을 주도
  • 화랑도를 국가적인 조직으로 개편
  • 한강 유역 장악 후, 함경도 지역으로까지 진출
  • 545년 거칠부가 역사서 <국사>를 편찬
  • 550년 이사부에 명하여 도살성과 금현성 점령
  • 새로 차지한 영토를 기념하기 위해 단양 적성비와 4개의 진흥왕 순수비(북한산비, 마운령비, 황초령비, 창녕비)를 세움
  • 553년 신라가 한강 하류를 차지하여 신주를 설치하였다.
  • 562년 고령의 대가야를 정복하여 낙동강 서쪽을 장악
  • 황룡사 건립
  • 자신을 황제에 비겨 ‘태왕’ 또는 ‘짐’이라 하였으며, ‘개국·태창·홍제’ 등의 연호를 사용하여 자주 의식을 나타냄

신라 진흥왕 북한산 순수비

창녕 진흥왕 순수비(또는 척경비)

진흥왕 순수비 마운령비

단양 적성비

 

기출 문제 키워드

 

2025학년도(2024)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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