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학년도 학평 고1 3월 모의고사 한국사 15번 기출 해설

문제

15. 밑줄 친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태형을 집행하는 헌병 경찰

② 골품제의 한계를 비판하는 6두품

③ 6ㆍ10 만세 운동에 참가하는 학생

④ 만적과 함께 봉기를 모의하는 노비

⑤ 장시에서 판소리를 공연하는 소리꾼

 

출처: EBSi 홈페이지

문제 해설

김홍도가 활동하던 시절은 조선 후기이다.

 

① 태형을 집행하는 헌병 경찰

조선 태형령이 실시되던 시기는 일제 강점기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골품제의 한계를 비판하는 6두품

골품 제도는 신라의 제도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6ㆍ10 만세 운동에 참가하는 학생

일제 강점기인 1926년에 발생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만적과 함께 봉기를 모의하는 노비

고려 무신 정권기인 만적의 난이 발생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장시에서 판소리를 공연하는 소리꾼

조선 후기 장시가 발달하고 판소리가 등장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조선 후기
진경 산수화와
풍속화, 서예
  • 진경 산수화

진경 산수화는 중국 남종과 북종 화법을 고루 수용하여 우리의 고유한 자연과 풍속에 맞춘 새로운 화법으로 창안한 것이었다.

    • 정선

진경 산수화를 개척한 화가는 18세기에 활약한 정선이었다. 그는 서울 근교와 강원도의 명승지를 두루 답사하여 그것들을 사실적으로 그려 냈다. 정선은 대표작인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에서 바위산은 선으로 묘사하고, 흙산은 묵으로 묘사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산수화의 새로운 경지를 이룩하였다.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 풍속화

풍속화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 정경과 일상적인 모습을 생동감 있게 나타내어 회화의 폭을 확대하였다.

    • 김홍도

풍속화에 새 경지를 열어 놓은 화가는 김홍도였다. 그는 정감어린 풍속화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그는 밭갈이, 추수, 씨름, 서당 등에서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소탈하고 익살스러운 필치로 묘사하였다. 이런 그림에서 18세기 후반의 생활상과 활기찬 사회의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주막

무동

서당도

씨름

    • 신윤복

김홍도에 버금 가는 풍속화가로는 신윤복이 있었다. 그는 주로 양반과 부녀자의 생활과 유흥, 남녀 사이의 애정 등을 감각적이고 해학적으로 묘사하였다.

연소답청

쌍검대무

월하정인

    • 강세황

이 밖에도 강세황 등의 화가가 개성 있는 그림으로 18세기를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특히, 강세황은 서양화 기법을 반영하여 사물을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영통동구도

    • 장승업

19세기에 이르러 장승업은 강렬한 필법과 채색법으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였다.

    • 김정희

김정희는 문인화 세한도를 그렸다.

세한도

 

  • 서예

이광사 – 서예에서도 우리의 정서와 개성을 추구하는 단아한 글씨의 동국진체가 이광사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김정희 – 김정희는 우리 서예 발전의 성과를 바탕으로 고금의 필법을 두루 연구하여 굳센 기운과 다양한 조형성을 가진 추사체를 창안하여 서예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조선 후기
서민 문화의 발달
한글 소설의 보급 – 허균의 홍길동전, 춘향전 등. 한글 소설을 읽어주는 전기수가 등장했다.

판소리판소리 작품으로는 열두 마당이 있었으나, 지금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적벽가, 수궁가 등 다섯 마당만 전하고 있다. 신재효는 19세기 후반에 이런 판소리 사설을 창작하고 정리하였다.

탈놀이 – 탈놀이와 산대놀이는 조선 후기의 사회 변화와 함께 성행하였다. 이런 가면극에서는 지배층과 그들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는 승려의 부패와 위선을 풍자하기도 하였다.

사설 시조 – 이 시기의 시조에는 서민의 감정을 솔직하게 나타내는 경향이 나타났다.

시사 조직 – 중인층과 서민층의 문학 창작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동호인들이 모여 시사를 조직하였다.

정약용 – 정약용은 삼정의 문란을 폭로하는 한시를 남겼다.

박지원 – 양반전, 허생전, 호질, 민옹전 등의 한문 소설을 써서 양반 사회의 허구성을 지적하며 실용적 태도를 강조하였다.

회화 – 회화에서는 그 저변이 확대되어 풍속화와 민화가 유행하였다.

일제의
무단 통치

  • 1910년 ~ 1919년
  • 조선 총독부

국권 강탈 이후, 일제는 식민 통치의 중추 기관으로 조선 총독부를 설치하여 한민족에 대한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착취를 자행하였다.

그리하여 일본군 현역 대장이 조선 총독으로 임명되어 식민 통치의 전권을 장악하였다.

조선 총독은 일본 국왕에 직속되어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 및 군대 통수권까지 장악하였다.

 

  • 중추원

조선 총독부는 자문 기구로 중추원을 두어 한국인을 정치에 참여시키는 형식을 취하였는데, 이는 한국인을 회유하기 위한 술책에 지나지 않았다.

 

  • 헌병 경찰 통치

일제는 한반도에는 일본군 2개 사단과 2만여 명의 헌병 경찰 및 헌병 보조원을 배치하여 강력한 헌병 경찰 통치를 실시하였다.

일제는 헌병 경찰 통치를 통하여 언론, 집회, 출판, 결사의 자유를 박탈당하였고, 민족 지도자들은 체포, 투옥, 학살당하였다.

또, 일반 관리는 물론 학교 교원들에게까지도 제복을 입히고 칼을 차게 하였던 것은 위협적인 헌병 경찰 통치의 한 수단이었다.

 

  • 즉결 처분권

일제는 헌병 경찰에게 사소한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즉결 처분권을 부여하여 우리 민족을 태형(조선 태형령 1912년)에 처하기도 하였다.

조선 태형령(1912)

제11조 태형은 감옥 또는 즉결 관서에서 비밀리에 행한다.

제13조 본령은 조선인에 한하여 적용한다.

 

  • 민족 언론 탄압

1910년대에는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문을 강제 폐간시켜 민족 언론을 탄압하였다.

 

  • 제1차 조선 교육령(1911년)

일제는 제1차 조선 교육령을 발표하여 한국인의 교육을 보통 교육과 실업 교육 중심으로 편성하여 고등 교육의 기회를 제한하였다. 또한 민족 교육을 강조하던 사립 학교를 탄압하였다.

1918년 일제는 <서당 규칙>을 통해 서당 설립을 인가제(허가제)로 바꾸었다.

 

  • 105인 사건(1911년)

일제는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를 꾸몄다고 날조하여 수백 명의 민족 지도자를 투옥하고, 신민회를 해산시켰다.

신라
사회 모습
  • 화백회의 – 신라는 여러 부족의 대표가 함께 모여 정치를 운영
  • 골품 제도 – 혈연에 따라 사회적 제약이 가해졌다. 골품은 신라 사회에서 개인의 사회 활동과 정치 활동의 범위까지 엄격히 제한하였다.

자료: 국사 편찬 위원회
  • 화랑도 – 진흥왕 때 국가 차원에서 그 활동을 장려하여 조직이 확대되었으며, 원광은 청소년에게 세속 5계를 가르쳐 마음가짐과 행동의 규범을 제시하였다.

6·10 만세 운동

  • 배경

1920년대에 일제의 감시와 탄압으로 민족 지도자들의 독립 운동이 크게 제약을 받는 가운데 학생들은 강연, 연극, 야학, 농촌 계몽 활동 등을 통하여 민중 계몽에 앞장 섰다.

또, 학생들은 일제의 민족 차별 교육에 반대하고, 일본인 교사의 한국인 멸시에 항거하는 동맹 휴학을 하기도 하였다.

 

  • 전개

1926년 4월 순종이 세상을 떠나자, 사회주의 계열인 조선 공산당은 학생 단체, 천도교 일부 세력과 힘을 모아 순종의 인산일(장례일)인 6월 10일에 대규모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이 계획은 사전에 발각되면서 많은 사람이 체포되었으나, 학생들은 일제 경찰의 감시를 뚫고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 곳곳에서 격문을 뿌리며 독립 만세를 외쳤다.

 

기출 자료

전세계 피압박 민족과 무산자 대중은 모두 함께 정의의 깃발을 들고 우리와 함께 보조를 맞추어 나갈 것이며, 붕괴하고 있는 제국주의의 하나인 일본 지배 계급도 운명이 다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명백하다. 최후까지 싸워 완전 독립을 쟁취하자. 혁명적 민족운동자 단체 만세! 조선 독립 만세!

조선 민중아! 우리의 철천지 원수는 자본·제국주의 일본이다. 2,000만 동포야!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자! 만세, 만세, 조선 독립 만세.

조선인 교육은 조선인 본위로! 보통학교 용어는 조선어로!

 

  • 의의

학생 운동이 식민 통치 전반에 대한 저항으로 발전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은 이 운동을 함께 준비하면서 민족 유일당(민족 협동 전선)을 만들어 힘을 합칠 수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였고 신간회 창립에 기여하였다.

고려
무신정권기
무신정변

  • 무신정변 – 1170년, 의종이 개경 부근의 보현원에서 놀이를 즐길 때를 이용하여 정중부, 이의방 등의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킴
  • 문신들을 제거하고 의종을 귀양 보낸 다음 명종을 세워 정권을 장악
  • 무신 간 내분으로 정중부가 피살되고, 경대승, 이의민이 차례로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됨
  • 중방 – 최고위 무신들로 구성된 회의 기구. 무신정변 직후부터 최충헌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최고 권력 기구
  • 무신 집권자의 변화: 이의방 →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최충헌

  • 최씨 정권의 성립 –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이후 4대 60여년간 최씨 정권이 지속됨
  • 최충헌 – 봉사 10조와 같은 사회 개혁책을 제시
  • 교정도감 – 최씨 정권 최고 권력 기구
  • 최고 집권자는 교정별감이 되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
  • 사병 기관인 도방을 설치하여 신변을 경호
  • 도방은 삼별초와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최우

  • 아버지인 최충헌의 뒤를 이어 교정도감을 통하여 정치 권력을 행사,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하여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
  • 서방을 설치하여 유명 문신을 머무르게 하며 정권 운영의 고문을 담당
  • 고려 고종은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몽항쟁을 위해 강화 천도
  • 사병으로 조직된 도방과 함께 삼별초가 군사적 기반

 

농민과 천민의 봉기

  • 조위총의 난 – 1174년, 서경에서 조위총이 무신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일으킴
  • 망이·망소이의 난 –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는 무거운 조세 부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망이, 망소이 형제를 중심으로 봉기
  • 김사미·효심의 난 – 1193년, 경상도의 운문(청도)과 초전(울산)에서는 김사미와 효심이 저항 운동을 일으킴
  • 만적의 난 – 1198년, 개경에서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이 중심이 되어 신분 해방 운동을 시도, 사전 발각 후 실패
조선 후기
장시의 발달
  • 배경

조선 후기 사상의 성장은 이 시기에 전국적으로 발달한 장시를 토대로 하였다.15세기 말 남부 지방에서 개설되기 시작한 장시는 18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전국에 1000여 개소가 개설되었다.

 

  • 장시

장시는 지방민의 교역 장소로, 인근의 농민, 수공업자, 상인이 일정한 날짜에 일정한 장소에 모여 물건을 교환하였는데, 보통 5일마다 열렸다.

일부 장시는 상설 시장이 되기도 하였지만, 인근의 장시와 연계하여 하나의 지역적 시장권을 형성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 대표적 장시

18세기 말의 장시 중에서 광주 송파장, 은진 강경장, 덕원 원산장, 창원 마산포장 등은 전국적인 유통망을 연결하는 상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하였다.

 

  • 보부상

농촌의 장시를 하나의 유통망으로 연계시킨 상인은 보부상이었다. 이들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이어 주는 데 큰 역할을 한 행상으로서, 장날의 차이를 이용하여 일정 지역 안이나 전국적인 장시를 무대로 활동하였다.

보부상(褓負商)

보부상이란 봇짐장수와 등짐장수를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 단결을 굳게 하기 위하여 보부상단이라는 조합을 이루고 있었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6학년도 3월 고1 학평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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