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학년도 학평 고2 3월 모의고사 한국사 3번 기출 해설

문제

3. 자료에 나타난 전쟁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왜적의 포로가 된 너희가 적의 사정을 알아 오거나 다른 포로를 많이 데리고 탈출하면 양인과 천인을 막론하고 벼슬을 내릴 것이다. 명의 군사가 황해도와 평안도에 가득하고, 곧 우리와 명의 군사가 함께 부산과 동래에 있는 왜적을 공격할 계획이다. 공격이 시작되면 너희도 휩쓸려 죽을 것이니 서로 이야기를 전하여 빨리 탈출하라.

① 이순신의 지휘를 받는 수군

② 태형을 집행하는 헌병 경찰

③ 만적과 반란을 모의하는 노비

④ 개혁 정강을 작성하는 급진 개화파

⑤ 당으로 유학을 떠나는 6두품 지식인

 

출처: EBSi 홈페이지

문제 해설

위 자료는 조선 시대 임진왜란에 대한 내용이다. 왜군이 조선을 침입했을 때 명나라가 파병을 하여 조명 연합군과 왜군 간의 격전이 벌어졌다.

 

① 이순신의 지휘를 받는 수군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수군이 왜군을 상태로 큰 승리를 거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태형을 집행하는 헌병 경찰

조선 태형령은 일제 강점기에 시행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만적과 반란을 모의하는 노비

만적의 난은 고려 무신 정권기에 일어났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개혁 정강을 작성하는 급진 개화파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고, 정권을 잡은 급진 개화파가 개혁 정강 14개조를 발표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당으로 유학을 떠나는 6두품 지식인

신라 시대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임진왜란
  • 배경

중종 때의 3포 왜란(1510년), 명종 때의 을묘왜변(1555년) 발생

비변사를 설치하여 군사 문제를 전담하게 하는 등 대책 강구

 

  • 임진왜란 발발

일본은 전국 시대의 혼란을 수습한 뒤 철저한 준비 끝에 20만 대군으로 조선을 침략(1592년).

 

  • 이순신과 수군

전라도 지역에서 이순신이 이끈 수군은 옥포에서 첫 승리를 거둔 이후 남해안 여러 곳에서 연승을 거두어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

한산도 대첩, 명량 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둠

한산도 대첩에서 거북선 사용

 

  • 의병

의병은 경상도에서 곽재우가 처음 일으킨 후 김천일, 조헌, 고경명, 정문부, 유정(사명대사), 서산대사 등이 여러 지방에서 왜군과 전투

 

  • 육군

조⋅명 연합군은 평양성을 탈환(평양성 전투)하였으며, 권율 장군은 관군, 백성과 함께 합심하여 행주산성에서 적의 대규모 공격을 물리쳤다(행주 대첩). 진주에서는 김시민이 이끄는 관민이 일본군을 물리쳤다(진주 대첩, 제1차 진주성 전투).

 

  • 훈련도감

류성룡의 건의에 따라 훈련도감을 설치하여 군대의 편제와 훈련 방법을 바꾸었고, 속오법을 실시하여 지방군 편제도 개편하였으며, 화포를 개량하고 조총도 제작하여 무기의 약점을 보완

 

  • 정유재란

3년여에 걸친 명과 일본 사이의 휴전 회담이 결렬되자, 왜군이 다시 침입(1597년).

조⋅명 연합군이 왜군을 직산에서 격퇴하고 이순신이 적선을 명량에서 대파하자(명량 해전), 전세가 불리해진 왜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본국으로 철수

 

  • 임진왜란의 영향

조선 – 토지 대장과 호적의 대부분이 없어져 국가 재정이 궁핍해지고, 식량 부족. 왜군의 약탈과 방화로 불국사, 서적, 실록 등 수많은 문화재가 손실되었고, 수만 명이 일본에 포로로 잡혀감

징비록 – 류성룡이 지은 징비록에는 임진왜란 이전 일본과의 관계,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제해권 장악, 명의 군대 파견 등에 대한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일본 – 일본은 조선에서 활자, 그림, 서적 등을 약탈해 갔고, 성리학자와 우수한 인쇄공 및 도자기 기술자 등을 포로로 잡아가 일본의 성리학과 도자기 문화가 발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

명 – 조선과 명이 일본과 싸우는 동안 북방의 여진족이 급속히 성장하여 동아시아의 정세가 크게 변화

일제의
무단 통치

  • 1910년 ~ 1919년

 

  • 조선 총독부

국권 강탈 이후, 일제는 식민 통치의 중추 기관으로 조선 총독부를 설치하여 한민족에 대한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착취를 자행하였다.

그리하여 일본군 현역 대장이 조선 총독으로 임명되어 식민 통치의 전권을 장악하였다.

조선 총독은 일본 국왕에 직속되어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 및 군대 통수권까지 장악하였다.

 

  • 중추원

조선 총독부는 자문 기구로 중추원을 두어 한국인을 정치에 참여시키는 형식을 취하였는데, 이는 한국인을 회유하기 위한 술책에 지나지 않았다.

 

  • 헌병 경찰 통치

일제는 한반도에는 일본군 2개 사단과 2만여 명의 헌병 경찰 및 헌병 보조원을 배치하여 강력한 헌병 경찰 통치를 실시하였다.

일제는 헌병 경찰 통치를 통하여 언론, 집회, 출판, 결사의 자유를 박탈당하였고, 민족 지도자들은 체포, 투옥, 학살당하였다.

또, 일반 관리는 물론 학교 교원들에게까지도 제복을 입히고 칼을 차게 하였던 것은 위협적인 헌병 경찰 통치의 한 수단이었다.

 

  • 즉결 처분권

일제는 헌병 경찰에게 사소한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즉결 처분권을 부여하여 우리 민족을 태형(조선 태형령 1912년)에 처하기도 하였다.

조선 태형령(1912)

제11조 태형은 감옥 또는 즉결 관서에서 비밀리에 행한다.

제13조 본령은 조선인에 한하여 적용한다.

 

  • 민족 언론 탄압

1910년대에는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문을 강제 폐간시켜 민족 언론을 탄압하였다.

 

  • 제1차 조선 교육령(1911년)

일제는 제1차 조선 교육령을 발표하여 한국인의 교육을 보통 교육과 실업 교육 중심으로 편성하여 고등 교육의 기회를 제한하였다. 또한 민족 교육을 강조하던 사립 학교를 탄압하였다.

1918년 일제는 <서당 규칙>을 통해 서당 설립을 인가제(허가제)로 바꾸었다.

 

  • 105인 사건(1911년)

일제는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를 꾸몄다고 날조하여 수백 명의 민족 지도자를 투옥하고, 신민회를 해산시켰다.

고려
무신정권기
무신정변

  • 무신정변 – 1170년, 의종이 개경 부근의 보현원에서 놀이를 즐길 때를 이용하여 정중부, 이의방 등의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킴
  • 문신들을 제거하고 의종을 귀양 보낸 다음 명종을 세워 정권을 장악
  • 무신 간 내분으로 정중부가 피살되고, 경대승, 이의민이 차례로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됨
  • 중방 – 최고위 무신들로 구성된 회의 기구. 무신정변 직후부터 최충헌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최고 권력 기구
  • 무신 집권자의 변화: 이의방 →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최충헌

  • 최씨 정권의 성립 –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이후 4대 60여년간 최씨 정권이 지속됨
  • 최충헌 – 봉사 10조와 같은 사회 개혁책을 제시
  • 교정도감 – 최씨 정권 최고 권력 기구
  • 최고 집권자는 교정별감이 되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
  • 사병 기관인 도방을 설치하여 신변을 경호
  • 도방은 삼별초와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최우

  • 아버지인 최충헌의 뒤를 이어 교정도감을 통하여 정치 권력을 행사,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하여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
  • 서방을 설치하여 유명 문신을 머무르게 하며 정권 운영의 고문을 담당
  • 고려 고종은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몽항쟁을 위해 강화 천도
  • 사병으로 조직된 도방과 함께 삼별초가 군사적 기반

 

농민과 천민의 봉기

  • 조위총의 난 – 1174년, 서경에서 조위총이 무신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일으킴
  • 망이·망소이의 난 –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는 무거운 조세 부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망이, 망소이 형제를 중심으로 봉기
  • 김사미·효심의 난 – 1193년, 경상도의 운문(청도)과 초전(울산)에서는 김사미와 효심이 저항 운동을 일으킴
  • 만적의 난 – 1198년, 개경에서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이 중심이 되어 신분 해방 운동을 시도, 사전 발각 후 실패
갑신정변
  • 배경

임오군란 후 청의 내정 간섭과 민씨 정권의 친청 정책으로 급진 개화파의 개화 정책은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였다.

이에 김옥균은 개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에서 차관을 얻으려 하였으나, 차관 교섭이 실패로 끝나면서 급진 개화파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졌다

마침 청은 베트남 문제로 프랑스와 전쟁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자 조선에 주둔한 청군의 절반을 철수하였다.

급진 개화파는 이 틈을 타 민씨 정권을 몰아낼 계획을 세우고 일본의 군사적 지원을 받기로 하였다.

 

  • 전개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 급진 개화파는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하여 사대당 요인들을 살해하고 개화당 정부를 수립한 뒤, 14개조의 개혁 정강을 마련하였다(1884년).

 

  • 개혁 정강 주요 내용

청과의 의례적 사대 관계를 폐지하고, 입헌 군주제적 정치 구조를 지향하면서,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권과 능력에 따른 인재 등용을 주장하였다.

또, 지조법을 실시하고, 호조로 재정을 일원화하였으며, 혜상공국을 폐지하여 자유로운 상업의 발전을 꾀하였다.

  • 지조법(地租法)

토지에 부과하는 세금을 생산량 기준이 아니라 토지 가격에 따라 부과하는 방식. 종래의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려는 방안으로, 일본에서 실시된 것을 수용한 것이었다.

  • 혜상공국(惠商公局)

보부상을 보호하기 위하여 설치한 기관

갑신정변 때의 14개조 정강

1. 청에 잡혀간 흥선 대원군을 곧 돌아오도록 하게 하며, 종래 청에 대하여 행하던 조공의 허례를 폐지한다.

2.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의 권리를 세워, 능력에 따라 관리를 임명한다.

3. 지조법을 개혁하여 관리의 부정을 막고 백성을 보호하며, 국가 재정을 넉넉하게 한다.

4. 내시부를 없애고, 그 중에 우수한 인재를 등용한다.

5. 부정한 관리 중 그 죄가 심한 자는 치죄한다.

6. 각 도의 환상미를 영구히 받지 않는다.

7. 규장각을 폐지한다.

8. 급히 순사를 두어 도둑을 방지한다.

9. 혜상공국을 혁파한다.

10.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자와 옥에 갇혀 있는 자는 그 정상을 참작하여 적당히 형을 감한다.

11. 4영을 합하여 1영으로 하되, 영 중에서 장정을 선발하여 근위대를 급히 설치한다.

12. 모든 재정은 호조에서 통할한다.

13. 대신과 참찬은 의정부에 모여 정령을 의결하고 반포한다.

14. 의정부, 6조 외의 모든 불필요한 기관을 없앤다.

 

  • 3일 천하

개화당 정부의 개혁은 청이 정변을 진압하고 일본군이 약속을 어기고 철수하면서 3일 천하로 끝이 났다.

정변을 주도하였던 급진 개화파는 일본 공사관에 피신했다가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 결과
    • 한성 조약

조선은 일본의 강요로 배상금 지불과 공사관 신축비 부담 등을 내용으로 하는 한성 조약을 체결하였다.

    • 톈진 조약

청⋅일 양국은 조선에서 청⋅일 양국군이 철수할 것, 그리고 장차 조선에 파병할 경우 상대국에 미리 알릴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톈진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으로 일본은 청국과 동등하게 조선에 대한 파병권을 얻었다.

    • 청의 내정 간섭 심화

갑신정변 실패 이후, 조선에 대한 청국의 내정 간섭이 더욱 강화되었다.

 

  • 갑신정변의 의의

갑신정변은 근대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최초의 정치 개혁 운동이었다.

 

  • 갑신정변 이후 정세
    • 거문도 사건

갑신정변 이후, 조선 정부는 청의 지나친 내정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러시아와 외교 관계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이때 조러 비밀 협약을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세력 확장에 불안을 느낀 영국은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였다(1885년).

    • 조선 중립화론

이렇듯 열강의 조선 침략이 격화되자, 조선 주재 독일 외교관인 부들러나 개화파 지식인 유길준 등은 조선을 중립국으로 하자는 논의를 구상하기도 하였다.

통일 신라 말 호족과
6두품의 성장
  • 배경

8세기 후반 이후, 진골 귀족들은 경제 기반을 확대하여 사병을 거느리고 권력 싸움을 벌였다.

중앙 귀족들 사이에 왕위 쟁탈전이 치열해지면서 왕권이 약화되고 귀족 연합적인 정치가 운영되었다.

지방 세력들도 왕위 쟁탈전에 가담하여 중앙 정부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 호족의 성장

사회가 혼란해지면서 지방에서는 호족이라 불리는 새로운 세력이 성장하였다.

호족들은 중앙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면서 반독립적인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들은 자기 근거지에 성을 쌓고 군대를 보유하여 스스로 성주 또는 장군이라고 칭하면서 그 지방의 행정권과 군사권을 장악하였다.

 

  • 6두품의 성장

6두품 출신들은 신라 중대에 왕의 정치적 조언자로 활동하였다.

당에 유학하였다가 돌아온 6두품 출신의 일부 유학생과 선종 승려 등은 신라 골품제 사회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정치 이념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들도 진골 귀족에 의하여 자신들의 뜻을 펼 수 없게 되자, 은거하거나 지방의 호족 세력과 연계하여 사회 개혁을 추구하였다.

강수, 설총, 최치원은 대표적인 6두품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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