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17.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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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예송의 발생
② 신간회의 해소
③ 한일 협정의 체결
④ 위정척사 운동의 전개
⑤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의 영향
출처: EBSi 홈페이지
문제 해설
위 자료는 신탁 통치 실시에 대한 찬반에 대한 내용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종료 후인 1945년 12월에 모스크바에서 미국, 영국, 소련의 3국 외상 회의가 개최되었다.
모스크바의 3국 외상 회의에서는 한국에 조선 민주주의 임시 정부를 수립하기 위하여 미⋅소 공동 위원회를 설치하고, 최고 5년간 미국, 영국, 중국, 소련의 4개국이 신탁 통치를 실시한다고 결정하였다.
이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우익인 민족주의 진영은 신탁 통치 반대 운동(반탁)을 펼쳤고 좌익인 공산주의 진영은 찬성(찬탁) 입장을 보였다.
① 예송의 발생
조선 현종 시기 효종과 효종비의 사망으로 효종의 왕위 계승에 대한 정통성과 관련하여 두 차례의 예송이 발생하면서 서인과 남인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신간회의 해소
일제 강점기인 1927년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연대하여 최대 규모의 합법적인 민족 협동 전선 단체인 신간회를 결성하였다.
그러다 코민테른은 중국에서 제1차 국공 합작이 실패한 것을 계기로 사회주의자들에게 민족주의 계열과의 협동 전선 해체를 지시하였고, 1931년에 열린 전체 대회에서 신간회를 해소하기로 결정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한일 협정의 체결
1965년 박정희 정부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한·일 협정을 체결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위정척사 운동의 전개
조선 정부의 개화 정책 추진에 대해 전통적인 유생층은 성리학적 전통 질서를 지키고 외세를 배척하자는 위정척사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개항과 개화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정부의 정책에 반발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의 영향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 1945년 12월에 모스크바에서 미국, 영국, 소련의 3국 외상 회의가 개최되었다.
모스크바의 3국 외상 회의에서는 한국에 조선 민주주의 임시 정부를 수립하기 위하여 미⋅소 공동 위원회를 설치하고, 최고 5년간 미국, 영국, 중국, 소련의 4개국이 신탁 통치를 실시한다고 결정하였다.
우익인 민족주의 진영은 이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신탁 통치 반대 운동(반탁)을 펼쳤다. 민족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신탁 통치 반대 국민 총동원 위원회를 결성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반탁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승만은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를 조직하고 반탁 운동을 전개하였다.
좌익인 공산주의 진영은 초기에는 신탁 통치에 반대하였다. 하지만 이후에 3국 외상 회의 결정의 본질이 민주주의 임시 정부 수립에 있다고 보고, 회의 결정에 대한 총체적 지지로 입장(찬탁)을 바꾸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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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붕당 정치 전개 |
붕당 정치 초기에는 동인이 우세한 가운데 정국이 운영되었다. 동인은 정여립 모반 사건 등을 계기로 온건파인 남인과 급진파인 북인으로 나뉘었다.
처음에는 남인이 정국을 주도하였으나 임진왜란이 끝난 뒤 북인이 집권하여 광해군 때까지 정국을 주도하였다.
광해군의 지지 세력인 북인은 서인과 남인을 배제한 채 정권을 독점하려 하였다. 또한 북인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취하는 등 성리학적 의리 명분론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 이는 서인과 남인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광해군의 영창 대군 살해와 인목 대비 유폐 등으로 결국 인조 반정이 일어나 광해군과 북인은 몰락하였다. 반정을 주도한 서인은 남인 일부와 연합하여 정국을 운영해 나갔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서로의 학문적 입장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상호 비판적인 공존 체제를 이루어 나갔다. 서인은 광해군의 중립 외교 정책을 비판하고, 친명 배금 정책을 추진하여 후금을 자극하였다. 각 학파에서 학식과 덕망을 겸비한 인물이 산림이란 이름으로 재야에서 그 여론을 주재하였다.
현종 때까지 서인이 우세한 가운데 남인과 연합하여 공존하는 구도가 유지된 채 붕당 정치가 전개되었다. 현종 때에 효종의 왕위 계승에 대한 정통성과 관련하여 두 차례의 예송이 발생하면서 서인과 남인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1659년 기해예송. 기년복 1년. 효종의 상을 당하여 자의 대비의 복제가 문제 되었는데, 서인은 1년설을, 남인은 3년설을 주장하여 1년설이 채택되었다. 당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서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1674년 갑인예송. 기년복 1년. 효종비의 상을 계기로 또 자의 대비의 복제가 문제 되었는데, 서인은 9개월설을, 남인은 1년설을 주장하여 1년설이 채택되었다. 남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서인이 약화되고 남인 중심의 정국이 운영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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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중국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의 제1차 국공 합작이 이루어졌다. 이를 배경으로 분열된 독립운동 진영을 통합하자는 민족 유일당 운동이 일어났다.
1926년 중국 북경에서 안창호의 주도로, 한국 독립 유일당 북경 촉성회가 창립되었다. 이로 인해 만주에서 3부 통합 운동이 전개되었다.
국내에서는 최린, 이광수 등이 자치 운동(자치론)을 전개하며 일제에 타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에 이상재, 안재홍 등의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은 이를 비판하였고, 나아가 사회주의자들과 연대하여 민족 운동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일제는 1925년 치안 유지법을 만들어 사회주의 세력을 강력하게 탄압하였다. 이에 사회주의자들은 민족주의 진영과의 연대하고자 하였다.
치안 유지법으로 인해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사회주의 세력은 정우회 선언을 발표하여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의 협동을 강조하였다. 이로 인해 신간회 설립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1927년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연대하여 최대 규모의 합법적인 민족 협동 전선 단체인 신간회를 결성하였다.
신간회는 민족의 단결과 정치적·경제적 각성을 촉구하고 기회주의자를 배격하는 것을 기본 강령으로 내세웠다.
신간회 출범과 더불어 탄생한 것이 근우회였다. 근우회는 김활란 등이 중심이 되어 여성계의 민족 유일당으로 조직되었고, 여성 노동자의 권익 옹호와 새생활 개선을 행동 강령으로 하였다.
신간회는 합법적인 공간을 활용하여 한국인 본위의 교육 실시, 식민지 교육 반대, 타협적 정치 운동 반대 등을 주장하고 일제의 식민 통치 정책을 비판하였다.
신간회는 광주에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여 전국적인 민중 대회를 준비하였다.
코민테른은 중국에서 제1차 국공 합작이 실패한 것을 계기로 사회주의자들에게 민족주의 계열과의 협동 전선 해체를 지시하였다.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은 신간회 해소를 적극적으로 반대하였으나, 1931년에 열린 전체 대회에서 신간회를 해소하기로 결정하였다.
신간회의 결성은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민족의 독립을 위해 이념과 노선의 차이를 극복하여 민족 협동 전선을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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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 국교 정상화 |
박정희 정부는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경제 개발을 추진하였다. 그래서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 마련 등을 이유로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였다.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일본 오히라 외무대신이 만나서 일본이 한국에 경제 협력 자금이라는 명목의 지원금과 유·무상 차관을 제공하기로 합의하였다.
한·일 국교 회담에서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 정당한 배상 등에 대한 요구보다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였다는 내용이 알려지자, 국민들은 대일 굴욕 외교로 평가하고 범국민적인 정권 퇴진 운동을 전개하였다. 정부는 휴교령과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시위를 진압하였다.
1965년 박정희 정부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한·일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 협정에서는 독도 영유권에 관한 문제가 다뤄지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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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정척사 운동 |
정부의 개화 정책 추진에 대해 전통적인 유생층은 성리학적 전통 질서를 지키고 외세를 배척하자는 위정척사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개항과 개화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정부의 정책에 반발하였다.
1860년대 천주교가 퍼지고 서구 열강이 무력을 앞세워 통상을 요구하자 유생들은 통상에 반대하였다. 이항로, 기정진 등은 척화 주전론을 내세우며 흥선 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지지하였다.
1870년대 강화도 조약의 체결 무렵에는 최익현 등이 왜양일체론을 내세우며 일본의 개항 요구에 반대하였다(개항 반대 운동).
1880년대 들어 개화 정책이 실시되고 <조선책략>이 퍼지자, 이만손을 중심으로 한 영남 유생들은 만인소를 올려 정부의 개화 정책 및 미국과의 수교에 반대하였다. 이러한 개화 반대 운동은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반외세·반침략의 성격을 띤 위정척사 운동은 항일 의병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양반 중심의 성리학적 질서를 유지하려 했다는 한계를 지녔다. 유인석은 을미의병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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