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학년도 학평 고3 3월 모의고사 한국사 3번 기출문제

문제

3.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문학 작품으로 배우는 한국사]

용안일각* 형상을 한 성군이 탄생하니
신기한 빛이 송악의 성안에 가득했다네.
하늘이 도선을 보내 명을 전하였으니
공(公)의 구제를 기다린다는 말 분명하였네.

* 용안일각 : 제왕의 관상.

[해설] 위 작품은 윤기가 지은 시로, 하늘의 뜻을 받은 (가)이/가 혼란한 시대를 끝내고 백성을 구제할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다. 송악에서 태어난 (가)은/는 고려를 건국한 후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① 사비로 천도하였다.

② 훈요 10조를 남겼다.

③ 우산국을 정복하였다.

④ 균역법을 마련하였다.

⑤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출처: EBSi 홈페이지

문제 해설

(가)에 해당하는 인물은 고려 태조 왕건이다.

고려 태조는 송악(현재 개성)에서 태어나 고려를 건국하고 후삼국을 통일했다.

 

① 사비로 천도하였다.

백제 성왕은 사비로 천도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훈요 10조를 남겼다.

고려 태조는 훈요 10조를 남겼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우산국을 정복하였다.

신라 지증왕은 우산국을 정복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균역법을 마련하였다.

조선 영조는 균역법을 마련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조선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후삼국 통일
  • 왕건은 수군을 이끌고 금성(나주)을 점령하여 광평성 시중의 지위에까지 오름
  • 918년, 태조 왕건은 고구려 계승을 내세워 국호를 고려라 하고, 자신의 세력 근거지였던 송악으로 도읍을 옮김
  • 926년, 발해가 거란에 멸망당했을 때 고구려계 유민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고려로 망명. 태조 왕건은 이들을 우대하여 민족의 완전한 통합을 꾀함.
  • 927년, 견훤이 신라 경애왕을 죽이고, 신라를 돕기 위해 출전한 고려를 공산에서 대패시킴(공산 전투)
  • 930년, 고창 전투에서 후백제가 고려에 대패 당함
  • 935년, 통일 신라 경순왕, 고려에 항복. 태조 왕건, 경순왕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
  • 935년, 후백제 내분 후 견훤이 고려에 귀순
  • 936년, 후백제 멸망, 고려 후삼국 통일
고려 태조
  • 빈민을 구제하고 위한 기구로 흑창 설치(춘궁기에 곡식을 나눠 주고 추수 후에 갚게 했던 빈민 구제 기구)
  • 태조는 지방 호족을 회유하기 위해 호족의 딸과 혼인하고, 왕씨 성을 하사하는 사성 정책 실시
  • 사심관 제도 – 건국 공신들을 사심에 임명하여, 각 자기 출신 지역의 부호장 이하의 임명을 맡게 하는 제도
  • 기인 제도 – 향리의 자제를 뽑아 서울에 인질로 삼고, 출신지의 일에 대하여 자문을 맡게 하는 제도
  •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가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
  • 훈요 10조 – 후대 왕들이 지켜야 할 정책 방향을 제시
  • 북진 정책을 추진하여 평양을 서경으로 삼고,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적극 개발
  • 역분전 지급 –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게 공훈에 대한 대가로 준 논공행상적 성격의 토지
백제
성왕
  • 538년, 대외 진출이 쉬운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김
  • 국호를 남부여로 고침
  • 중앙 관청을 22부로 확대 정비하고, 수도를 5부로 지방을 5방으로 정비
  • 장군 달기를 보내 고구려의 도살성을 점령
  • 551년, 신라와 힘을 합하여 이전에 고구려에 빼앗겼던 한강 유역을 되찾음
  • 동맹국인 신라의 공격을 받아 한강 유역의 땅을 신라에 빼앗김
  • 554년, 친히 군사를 이끌고 신라를 공격하였으나, 관산성(충북 옥천)에서 전사
신라
지증왕
  • 국호를 신라로 바꿈
  • 왕의 칭호를 마립간에서 왕으로 고침
  • 512년, 이사부에 명하여 우산국(울릉도)을 복속시킴
  • 소를 경작에 이용하는 우경을 실시
  • 시장 중 하나인 동시의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동시전을 설치
  • 순장을 폐지
조선 후기
영조의 탕평 정치
  • 탕평 정치 실시. 탕평책.

탕평비

  • 탕평비 설치 – 탕평책을 펼쳐 붕당의 다툼을 없애려 한 영조의 의지가 담겨 있다.
  • 산림 존재 불인정
  • 서원 대폭 정리
  • 이조 전랑 권한 약화
  • 균역법 시행
  • ‘속대전’, ‘속오례의’, ‘동국문헌비고’ 편찬
  • 신문고 부활
조선 세종
  • 집현전 설치

집현전 학사는 학문 연구와 아울러 경연에 참여하여 국왕의 통치를 자문하였다. 이 기능은 뒤에 홍문관으로 이어졌다.

  • 의정부 서사제

6조에서 올라오는 모든 일을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중심이 되는 의정부에서 논의한 다음, 합의된 사항을 국왕에게 올려 결재를 받는 형식이다.

  • 쓰시마섬 정벌

1419년 이종무는, 병선 227척, 병사 1만 7000명을 이끌고 쓰시마 섬을 토벌하여 왜구의 근절을 약속받고 돌아왔다.

  • 4군 6진

세종 때 4군과 6진을 설치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오늘날과 같은 국경선을 확정하였다. 최윤덕이 4군을, 김종서가 6진을 개척했다.

  • 계해약조

3포 개항 이후 세종 25년(1443년)에 계해약조를 맺어 쓰시마 도주에게 세사미두 200석, 세견선 50척으로 허용해 주었다.

  • 훈민정음 창제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1443년)하여 반포하였다(1446년).

  • 지도·지리지

세종 때 전국 지도로서 팔도도를 만들었고, 지리지의 편찬도 추진되어 신찬팔도지리지가 편찬되었다.

  • 삼강행실도

세종 때 모범이 될 만한 충신, 효자, 열녀 등의 행적을 그림으로 그리고 설명을 붙여 윤리서인 삼강행실도를 편찬하였다.

  • 과학 

천체 관측기구로 혼천의(혼의)간의를 제작하고, 시간 측정 기구로 물시계인 자격루와 해시계인 앙부일구 등을 만들었다. 또한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만들어(1441년) 전국 각지의 강우량을 측정하였고, 토지 측량 기구인 인지의와 규형을 제작하여 토지 측량과 지도 제작에 활용하였다.

  • 칠정산

세종 때 만든 칠정산은 중국의 수시력과 아라비아의 회회력을 참고로 하여 만든 역법서로, 우리 나라 역사상 최초로 서울을 기준으로 천체 운동을 정확하게 계산했다.

  • 갑인자

세종 때 구리로 갑인자를 주조하였는데, 이는 글자 모습이 아름답고 인쇄에 편리하게 만들어졌다.

  • 총편등록

세종 때 화약 무기의 제작과 그 사용법을 정리한 총통등록을 편찬하였다.

  • 농사직설

세종 때 정초 등이 편찬한 농사직설은 우리나라에서 편찬된 최초의 농서로서 중국의 농업 기술을 수용하면서 우리의 실정에 맞는 독자적인 농법을 정리하였다.

  • 의학

우리 풍토에 알맞은 약재와 치료 방법을 개발, 정리하여 향약집성방을 편찬하고, 의방유취라는 의학 백과 사전을 간행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6학년도 3월 고3 학평 한국사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