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학년도 학평 고3 3월 모의고사 한국사 8번 기출문제

문제

8. (가), (나) 시기 사이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가) 윤인과 박문의가 몰래 가족을 강화에 두고 최우에게 권하여 말하기를, “강화는 몽골군을 피해 천도할 만한 곳입니다.”라고 하였다. 최우가 그 말을 믿고 두 사람을 시켜 먼저 가서 살피게 하였는데, 가는 도중에 몽골군에게 붙잡혔다.

(나) 원에 상서(上書)하여 이르기를, “쌍성은 본래 고려의 영토입니다. 최근 반역을 꾀한 기철 등이 처형된 후 그 남은 무리가 쌍성으로 도망쳐 반역을 도모하였습니다. 이에 부득이하게 군대를 보내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① 정동행성이 설치되었다.

② 아관 파천이 단행되었다.

③ 9주 5소경 체제가 정비되었다.

④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다.

⑤ 서희가 소손녕과 외교 담판을 벌였다.

 

출처: EBSi 홈페이지

문제 해설

(가)는 몽골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 강화로 천도하기 전 상황이다. 최우는 대몽 항쟁을 위해 고종에게 건의하여 강화로 천도하였다.

(나)는 고려 공민왕의 지시로 쌍성총관부 수복을 한 이후의 상황이다.

(가)와 (나) 시기 사이는 원의 내정 간섭기이다.

 

① 정동행성이 설치되었다.

원은 일본 원정을 계기로 고려에 설치한 정동행성을 통해 고려에 내정간섭을 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아관 파천이 단행되었다.

명성 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으로 일본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 고종은 러시아의 도움으로 일본의 위협을 피할 수 있다고 믿고, 처소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겼다. 이를 아관 파천이라고 한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9주 5소경 체제가 정비되었다.

신라 신문왕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다.

1866년 대포로 무장한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들어와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였다.

미국 선원들은 횡포를 부렸고, 이에 분노한 평양 관민이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워 침몰시켰다(제너럴 셔먼호 사건).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서희가 소손녕과 외교 담판을 벌였다.

993년 고려 성종 때 거란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하여 고려가 차지하고 있는 옛 고구려 땅을 내놓고 송과 교류를 끊을 것을 요구했다.

서희의 담판 외교로 압록강 동쪽의 강동 6주를 확보했다.

거란의 고려 침입은 고려의 대몽 항쟁 이전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고려
몽골의 침입
13세기 초, 몽골 초원에서 칭기즈칸이 몽골 제국을 건설하여 금을 공격하면서 동아시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

고려에 왔다가 귀국하던 몽골 사신이 피살되는 사건(저고여 피살 사건)이 일어나자, 고려와 몽골의 외교관계는 단절

몽골의 1차 침입 – 1231년, 몽골의 침입으로 무신 정권은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강화 천도), 주민을 산성과 섬으로 피난시킨 뒤 항전과 외교를 병행하면서 저항. 귀주성에서는 박서의 지휘 아래 몽골군에 맞서 끝까지 성을 지킴

몽골의 2차 침입 – 1232년, 처인성 전투에서는 김윤후와 처인 부곡민이 몽골군 사령관 살리타를 사살

몽골의 5차 침입 – 1253년 몽골의 5차 침입 때 김윤후가 충주성에서 관민을 이끌고 몽골군을 격퇴.

피해 – 대구 부인사에 보관하고 있던 대장경의 판목과 경주의 황룡사 9층 목탑 등이 몽골군에 의해 소실

개경 환도 – 몽골과 강화를 맺자는 주화파가 득세하고, 최씨 정권이 무너지면서 전쟁 종결. 1270년, 무신의 마지막 권력자인 임유무가 피살되자 고려 정부는 개경으로 환도

삼별초의 항쟁 – 고려 정부가 개경으로 환도하자, 대몽 항쟁에 앞장섰던 삼별초는 배중손의 지휘 아래 반기를 듦. 진도와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여⋅몽 연합군과 전투

삼별초

최우가 야간 경비를 위해 설치한 야별초가 확대된 것으로 좌별초, 우별초, 그리고 몽골의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한 군사들로 조직된 신의군으로 구성

고려
무신정권기
무신정변

  • 무신정변 – 1170년, 의종이 개경 부근의 보현원에서 놀이를 즐길 때를 이용하여 정중부, 이의방 등의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킴
  • 문신들을 제거하고 의종을 귀양 보낸 다음 명종을 세워 정권을 장악
  • 무신 간 내분으로 정중부가 피살되고, 경대승, 이의민이 차례로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됨
  • 중방 – 최고위 무신들로 구성된 회의 기구. 무신정변 직후부터 최충헌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최고 권력 기구
  • 무신 집권자의 변화: 이의방 →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최충헌

  • 최씨 정권의 성립 –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이후 4대 60여년간 최씨 정권이 지속됨
  • 최충헌 – 봉사 10조와 같은 사회 개혁책을 제시
  • 교정도감 – 최씨 정권 최고 권력 기구
  • 최고 집권자는 교정별감이 되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
  • 사병 기관인 도방을 설치하여 신변을 경호
  • 도방은 삼별초와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최우

  • 아버지인 최충헌의 뒤를 이어 교정도감을 통하여 정치 권력을 행사,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하여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
  • 서방을 설치하여 유명 문신을 머무르게 하며 정권 운영의 고문을 담당
  • 고려 고종은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몽 항쟁을 위해 강화 천도
  • 사병으로 조직된 도방과 함께 삼별초가 군사적 기반

 

농민과 천민의 봉기

  • 조위총의 난 – 1174년, 서경에서 조위총이 무신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일으킴
  • 망이·망소이의 난 –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는 무거운 조세 부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망이, 망소이 형제를 중심으로 봉기
  • 김사미·효심의 난 – 1193년, 경상도의 운문(청도)과 초전(울산)에서는 김사미와 효심이 저항 운동을 일으킴
  • 만적의 난 – 1198년, 개경에서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이 중심이 되어 신분 해방 운동을 시도, 사전 발각 후 실패
원의
내정간섭
원의 일본 원정 – 고려는 두 차례 실시된 원의 일본 원정에 군대와 물자의 제공

정동행성 – 원은 일본 원정을 계기로 고려에 설치한 정동행성을 통해 고려에 내정간섭

관제 변화 –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을 합쳐 첨의부로 하고, 6부는 4사로 통폐합되었으며, 중추원은 밀직사로 격하

영토 상실 – 철령 이북에 쌍성총관부, 자비령 이북에 동녕부, 제주도에 탐라총관부라는 원의 통치 기구 설립

공녀 – 원은 공녀라 하여 고려의 처녀들을 뽑아감

응방 – 매를 징발하기 위해서 응방이라는 특수 기관을 설치

고려
공민왕
  • 기철로 대표되던 친원 세력을 숙청
  • 원의 간섭으로 바뀌었던 관제를 복구며, 몽골 풍속을 금지
  •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 쌍성총관부 공격, 철령 이북의 땅 수복
  • 정방 폐지
  • 승려 신돈 등용
  • 전민변정도감 설치 –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를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고, 강제로 노비가 된 사람을 양민으로 해방
  • 성균관 개편
  • 홍건적이 개경까지 침입해 오자 공민왕은 멀리 안동(복주)까지 피란
  • 왜구에게 강화도까지 약탈당하고, 개경이 위협 받음
을미개혁
  • 을미사변(1895년)

삼국 간섭 등으로 박영효가 실각한 뒤, 친러 성향의 제3차 김홍집 내각이 성립되었다.

이 때, 명성 황후는 친러파와 연결하여 일본의 침략 세력을 제거하려 하였고, 이에 일본은 낭인을 동원하여 명성 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을 일으켰다.

 

  • 제4차 김홍집 내각

을미사변 후 친일 성향의 제 4차 김홍집 내각이 수립되었다.

이후 을미개혁이 추진되었다.

 

  • 주요 개혁 내용
    • 정치
      • ‘건양’ 연호를 사용
    • 사회
      • 태양력 사용
      • 종두법 실시
      • 단발령 실시
      • 소학교 설치
      • 우체사 설치
    • 군사
      • 친위대와 진위대 설치

 

  • 중단
    • 을미의병

개항 이후 계속된 일본의 경제적, 정치적 침략과 명성 황후 시해로 분노한 국민들의 반일 감정이 단발령을 계기로 폭발하여 항일 의병이 일어나게 되었다

    • 아관파천

1896년 명성 황후 시해사건으로 일본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 고종은 러시아의 도움으로 일본의 위협을 피할 수 있다고 믿고, 처소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겼다. 이를 아관파천이라고 한다.

을미의병과 아관 파천으로 인하여 을미개혁은 중단되었다.

신라
신문왕
  • 김흠돌의 모역 사건을 계기로 귀족 세력을 숙청
  • 관료전 지급
  • 녹읍 폐지
  • 중앙 정치 기구와 군사 조직을 정비하고, 9주 5소경 체제의 지방 행정 조직을 완비
  • 유학 교육 기관인 국학을 설립
  • 만파식적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신미양요
  • 제너럴 셔먼호 사건

1866년 대포로 무장한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들어와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였다.

미국 선원들은 횡포를 부렸고, 이에 분노한 평양 관민이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워 침몰시켰다(제너럴 셔먼호 사건).

 

  • 신미양요

미국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군함과 병력을 동원하여 강화도를 공격하였다( 신미양요, 1871년).

 

    • 전개

로저스 제독이 이끄는 미국의 함대는 초지진과 덕진진을 점령하고 광성보를 공격하였다.

어재연 등이 이끄는 조선의 수비대가 격렬하게 항전하였으나 광성보는 함락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선 대원군이 통상 수교 협상에 응하지 않자 미군은 퇴각하였다.

고려
거란의 침입
거란의 1차 침입 – 993년 고려 성종 때 거란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하여 고려가 차지하고 있는 옛 고구려 땅을 내놓고 송과 교류를 끊을 것을 요구. 서희의 담판 외교로 압록강 동쪽의 강동 6주 확보

거란의 2차 침입 – 1010년 고려 현종 때 거란은 목종을 폐하고 현종을 즉위시킨 강조의 정변을 트집잡아 다시 두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 양규가 이끄는 고려군이 강화를 맺고 물러가는 거란군을 크게 격파

거란의 3차 침입 – 1018년 고려 현종 때 거란은 다시 10만의 대군으로 침입. 1019년 강감찬이 지휘한 고려군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전멸시킴(귀주대첩)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개경에 나성을 쌓아 도성 수비를 강화하고, 압록강 하구에서 동해안의 도련포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쌓음

 

기출 문제 키워드

 

2026학년도 3월 고3 학평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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