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번 문제
17. 밑줄 친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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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홍경래의 난에 참여하는 상인
② 4.13 호헌 조치에 분개하는 시민
③ 노비안검법의 시행을 명하는 국왕
④ 황국 신민 서사의 암송을 강요받는 학생
⑤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소식을 보도하는 기자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였다.
일제는 침략 전쟁을 확대하면서 한국인의 정신을 말살하고 일본 국왕에 대한 숭배 사상을 주입하는 민족 말살 통치를 실시하였다. 이는 한국인을 침략 전쟁에 효율적으로 동원하려는 의도였다.
일제는 성과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고쳐 쓰도록 하고(창씨개명), 황국 신민 서사 암송(1937년), 궁성 요배, 신사 참배 등을 강요하였다.
① 홍경래의 난에 참여하는 상인
1811년 세도 정권의 수탈에 시달리던 농민들과 부당한 차별 대우에 불만을 품어 오던 평안도 지방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여, 몰락한 양반인 홍경래의 지휘하에 영세 농민, 중소 상인, 광산 노동자 등이 합세하여 홍경래의 난을 일으켰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4.13 호헌 조치에 분개하는 시민
1986년 야당은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1천만인 서명 운동을 벌여 정부를 압박하였다.
1987년 1월 대학생 박종철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러한 가운데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은 시민들의 개헌 요구를 무시하고 기존 헌법에 따라 간선제로 다음 대통령을 뽑겠다고 발표하였다.
6월 9일, 대학생 이한열이 호헌 철폐 요구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6월 10일, 민주 헌법 쟁취 국민운동 본부의 주도로 ‘박종철 고문 살인 조작·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 대회’가 열렸다.
6월 26일에는 100만여 명이 시위에 참여하여, ‘직선제 쟁취’,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쳤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노비안검법의 시행을 명하는 국왕
고려 광종은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여 호족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국가의 수입 기반을 확대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황국 신민 서사의 암송을 강요받는 학생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소식을 보도하는 기자
1945년 12월에 모스크바에서 미국, 영국, 소련의 3국 외상 회의가 개최되었다.
모스크바의 3국 외상 회의에서는 한국에 조선 민주주의 임시 정부를 수립하기 위하여 미⋅소 공동 위원회를 설치하고, 최고 5년간 미국, 영국, 중국, 소련의 4개국이 신탁 통치를 실시한다고 결정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1920년대 후반에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경제 공황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일제는 일본 본토와 식민지를 하나로 묶는 경제 블록을 형성하였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노동력과 자원은 일제에게 보다 철저히 수탈당하였다. 그 후 일제는 1931년 만주를 점령하고(만주사변), 더 나아가 1937년 중⋅일 전쟁을 도발하여 본격적인 대륙 침략을 강행하면서 한국을 대륙 침략의 병참 기지로 삼았다. 그리고는 식민 정책을 강화하여 우리 민족을 더욱 탄압하였고, 모든 방면에 걸쳐 식민지 수탈 정책을 강화하였다. 일제는 침략 전쟁을 확대하면서 한국인의 정신을 말살하고 일본 국왕에 대한 숭배 사상을 주입하는 민족 말살 통치를 실시하였다. 이는 한국인을 침략 전쟁에 효율적으로 동원하려는 의도였다.
일제는 만주 점령 이후 만주를 농업 원료 지대로, 한국을 중화학 공업 지대로 설정하고 조선 공업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일제는 일본에 필요한 공업 제품의 원료를 생산하기 위해 면화의 재배와 면양의 사육을 시도하는, 이른바 남면 북양 정책을 수립하였다.
일제는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여 본격적으로 인력과 물자의 수탈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일제는 강제 징용으로 한국인 노동력을 착취하였고, 학도 지원병 제도, 징병 제도 등을 실시하여 수많은 우리 젊은이를 전쟁에 동원하였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 정신을 뿌리뽑기 위해 이른바 일⋅선 동조론을 주장하였고, 내선 일체의 구호를 내세워 우리 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성과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고쳐 쓰도록 하고(창씨개명), 황국 신민 서사 암송(1937년), 궁성 요배, 신사 참배 등을 강요하였다. 그리고 1941년 소학교의 명칭을 ‘황국 신민 학교’라는 뜻의 국민학교로 바꾸었다.
일제는 제3차 조선 교육령을 공포하여 조선어 교육을 사실상 폐지(선택 과목)하여, 일본어만 사용하도록 하였다.
일제는 조선어 과목을 완전히 폐지했다.
1940년에는 한글을 사용하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신문을 폐간하였다.
1930년대부터 일제는 직접적으로 저항하는 행동은 물론이고 사상까지 통제하고 감시하였다. 일제의 민족 말살 통치 시기, 중일전쟁 후 일제는 한국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침략 전쟁에서 한국인의 협력을 강요하기 위해 국민정신 총동원 운동 조선 연맹을 조직하였다. 연맹의 가장 하부에는 애국반을 조직하였고, 반상회를 통해 일본어 사용, 전쟁을 위한 애국 저금 등의 정책을 홍보하였다. 1940년 초 일제가 강점기 막바지에 여성의 노동력을 얻기 위해 몸뻬를 고안해 냈다. 1936년 제정된 <조선 사상범 보호 관찰령>은 <치안 유지법> 위반자 중 집행 유예, 형 집행 종료 또는 가출옥한 사람을 대상으로 2년간 보호 관찰을 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었다. 1941년 제정된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은 이에 더 나아가서 <치안 유지법>을 위반하여 형에 처해진 경력이 있는 자를 그 집행을 마치고 석방된 이후에도 필요한 경우 검경이 법원의 영장 없이도 자의적으로 계속하여 구금하거나 일정하게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반인권적 조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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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홍경래의 난 |
19세기의 세도 정치하에서 국가 기강이 해이해진 틈을 타 탐관오리의 부정과 탐학은 끝이 없었다. 삼정의 문란으로 극도에 달한 수령의 부정은 중앙 권력과도 연계되어 있어 암행어사의 파견만으로 막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농촌 사회가 피폐하여 가는 가운데 농민의 사회 의식은 오히려 더욱 강해져 갔다.
1811년 세도 정권의 수탈에 시달리던 농민들과 부당한 차별 대우에 불만을 품어 오던 평안도 지방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여, 몰락한 양반인 홍경래의 지휘하에 영세 농민, 중소 상인, 광산 노동자 등이 합세하여 홍경래의 난을 일으켰다.
이들은 처음 가산에서 난을 일으켜 선천, 정주 등을 별다른 저항없이 점거하였다. 한때는 청천강 이북 지역을 거의 장악하였으나, 정주성 싸움에서 패하여 5개월 만에 평정되었다.
홍경래의 난은 평안도의 농민이 하나로 뭉쳐 탐관오리의 착취와 지방 차별에 반대한 농민 항쟁이었다. 이 난은 평안도 지역에 한정되어 일어났고, 지도자들이 농민층을 조직적으로 끌어들일 개혁안을 내놓지 못함으로써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정부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그 뒤에 발생한 임술 농민 봉기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렇지만 관리들의 부정과 탐학은 시정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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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야당은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1천만인 서명 운동을 벌여 정부를 압박하였다.
1987년 1월 대학생 박종철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러한 가운데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은 시민들의 개헌 요구를 무시하고 기존 헌법에 따라 간선제로 다음 대통령을 뽑겠다고 발표하였다.
6월 9일, 대학생 이한열이 호헌 철폐 요구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6월 10일, 민주 헌법 쟁취 국민운동 본부의 주도로 ‘박종철 고문 살인 조작·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 대회’가 열렸다. 6월 26일에는 100만여 명이 시위에 참여하여, ‘직선제 쟁취’,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쳤다.
전두환 정부는 국민의 민주화 요구에 굴복하여 여당 대통령 후보인 노태우를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 기본권 보장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하였다.
대통령 직선제, 대통령 임기 5년 단임, 헌법 재판소 설치 등 오늘날 헌법의 내용이 담긴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1987년 12월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 분열로 여당 후보였던 노태우가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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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광종 |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여 호족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국가의 수입 기반을 확대
쌍기의 건의로 과거 제도를 시행하여, 유학을 익힌 신진 인사를 등용하고 신구 세력의 교체
지배층의 위계 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백관의 공복 제정
국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황제를 칭하고(외왕내제), 광덕, 준풍 등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
기금을 마련한 뒤 이자로 빈민을 구제하는 제위보를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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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12월에 모스크바에서 미국, 영국, 소련의 3국 외상 회의가 개최되었다.
모스크바의 3국 외상 회의에서는 한국에 조선 민주주의 임시 정부를 수립하기 위하여 미⋅소 공동 위원회를 설치하고, 최고 5년간 미국, 영국, 중국, 소련의 4개국이 신탁 통치를 실시한다고 결정하였다.
우익인 민족주의 진영은 이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신탁 통치 반대 운동(반탁)을 펼쳤다. 민족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신탁 통치 반대 국민 총동원 위원회를 결성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반탁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승만은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를 조직하고 반탁 운동을 전개하였다.
좌익인 공산주의 진영은 초기에는 신탁 통치에 반대하였다. 하지만 이후에 3국 외상 회의 결정의 본질이 민주주의 임시 정부 수립에 있다고 보고, 회의 결정에 대한 총체적 지지로 입장(찬탁)을 바꾸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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