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학년도 6월 모의고사 한국사 3번 해설 – 신라 삼국 통일

3번 문제

3. (가), (나) 시기 사이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가) 정관 22년 김춘추가 당에 가서 황제의 조칙을 받았는데, “내가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평정하면 평양 이남의 백제 땅은 너희 신라에게 주겠다.”라는 내용이었다.

(나) 신문왕 9년 정월 중앙과 지방 관리들의 녹읍을 폐지하고 해마다 차등을 두어 조(租)를 지급하는 것을 법으로 삼았다.

①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하였다.

② 신라가 당의 세력을 몰아내었다.

③ 윤관이 별무반 편성을 건의하였다.

④ 흥선 대원군이 척화비 건립을 주도하였다.

⑤ 조선 혁명군이 영릉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가) 648년, 신라는 백제가 침략해 오는 것에 대응하여 고구려와의 연합을 꾀했으나 성공하지 못하자 김춘추가 당으로 건너가 당과 군사 동맹을 맺었다. 이때 김춘추는 당 태종으로부터 평양 이남의 백제 땅을 약속 받았다.

(나) 신라의 삼국 통일 후 신문왕이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했다.

 

①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하였다.

427년 고구려 장수왕은 평양으로 천도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신라가 당의 세력을 몰아내었다.

676년, 신라는 당나라와의 나⋅당 전쟁에서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둬 당의 세력을 몰아내고 삼국 통일을 이룩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윤관이 별무반 편성을 건의하였다.

고려 숙종 때 윤관의 지휘 아래 여진 정벌군을 파견하였으나 실패하자, 윤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편성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흥선 대원군이 척화비 건립을 주도하였다.

1871년 흥선 대원군 집권 시기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흥선 대원군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건립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조선 혁명군이 영릉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일제 강점기 양세봉이 이끄는 조선 혁명군은 중국 의용군과 함께 영릉가 전투, 흥경성 전투, 신개령 전투, 통화현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⑤번이다.

 

백제, 고구려
멸망
  • 648년, 신라는 백제가 침략해 오는 것에 대응하여 고구려와의 연합을 꾀했으나 성공하지 못하자 김춘추가 당으로 건너가 당과 군사 동맹을 맺음. 김춘추는 당 태종으로부터 평양 이남의 백제 땅을 약속 받음.
  • 660년, 김유신이 지휘한 신라군은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이 이끈 백제의 결사대를 격파한 후 김유신의 신라군과 소정방의 당군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되면서 백제 멸망
  • 668년,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고구려 멸망
  •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이 고구려 수도인 평양에 안동도호부 설치
신라의
삼국 통일
  • 676년, 신라는 당나라와의 나⋅당 전쟁에서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둬 삼국 통일을 이룩
신라
신문왕
  • 김흠돌의 난을 계기로 귀족 세력을 숙청
  • 관료전 지급
  • 녹읍 폐지
  • 중앙 정치 기구와 군사 조직을 정비하고, 9주 5소경 체제의 지방 행정 조직을 완비
  • 유학 교육 기관인 국학을 설립
  • 만파식적
  • 고구려인, 백제인, 말갈인을 포함한 군대인 9서당을 편성
  • 감은사 건립
고구려
장수왕
  • 흥안령 일대의 초원 지대를 장악
  • 414년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광개토 대왕릉비를 세움
  • 427년 평양 천도
  • 475년 백제의 수도 한성 함락, 한강 전 지역을 포함하여 죽령 일대에서 남양만을 연결하는 선까지 그 판도를 넓힘
  • 고구려의 한강 유역 진출은 충주 중원 고구려비에 잘 나타나 있음
고려
여진 정벌
숙종 때 윤관의 지휘 아래 여진 정벌군을 파견하였으나 실패하자, 윤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편성

별무반 – 기병인 신기군, 보병인 신보군, 승병인 항마군으로 편성

1107년, 예종 때 윤관은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 정벌을 단행하여 여진족을 물리치고, 동북면 지역에 동북 9성을 설치

1115년, 예종 때 강성해진 여진족은 금을 건국. 금은 거란을 멸망시킨 뒤 고려에 군신 관계를 요구했고, 당시 집권자였던 이자겸이 금과 무력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임

척화비 건립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흥선 대원군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건립했다(1871년).

이러한 흥선 대원군의 대외 정책은 서양 세력의 침략을 일시적으로 막았으나, 한편으로는 조선의 근대화를 지연하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척화비

1930년대
무장 독립 전쟁

  • 배경

일제가 만주사변(1931년)을 일으키고, 괴뢰 정권인 만주국을 수립한 이후 만주 일대를 장악함으로써, 이 곳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독립군은 보다 큰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에 독립군은 일제의 만주 침략으로 항일 의식이 고조된 중국군과 연합하여 항일전을 전개함으로써 이 난국을 타개하려 하였다.

 

  • 한·중 연합 작전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
↙ ↘
혁신 의회
(북만주)
국민부
(남만주)
한국 독립당
한국 독립군
조선 혁명당
조선 혁명군

조선 혁명군과 한국 독립군은 각각 중국군과 연합하여 항일 전쟁을 전개하였다.

 

  • 한국 독립군

지청천이 이끄는 한국 독립군이 중국 호로군과 연합하여 쌍성보 전투, 사도하자 전투, 대전자령 전투 등에서 일본군에 승리했다.

지청천을 비롯한 한국 독립군의 일부는 중국 관내로 이동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합류하였고, 한국광복군을 만드는 데 참여하였다.

 

  • 조선 혁명군

양세봉이 이끄는 조선 혁명군은 중국 의용군과 함께 영릉가 전투, 흥경성 전투, 신개령 전투, 통화현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 중국 관내의 무장 독립 전쟁
    • 민족 혁명당

일제가 만주를 점령한 이후 만주 일대에서 무장 투쟁이 어려워지자, 독립운동가들은 중국 관내로 이동하였다.

1935년 중국 난징에서 민족 유일당 운동의 연결선상에서 김원봉, 조소앙, 지청천 등이 민족 혁명당을 결성하였다.

민족 혁명당 결성에는 김구를 제외한 한국 독립당(임시 정부 계열), 의열단, 신한독립당, 조선 혁명당, 대한독립당 등이 참여하였다.

 

    • 한국 국민당

1935년 민족 혁명당에 합류하지 않은 김구는 한국 국민당을 결성했다.

 

    • 조선 민족 혁명당

의열단의 김원봉의 전권 장악에 반발한 한국 독립당계(임시 정부 계열, 조소앙)와 신한 독립당계(지청천 또는 이청천)가 탈퇴한 후, 민족 혁명당은 조선 민족 혁명당으로 개편됐다.

탈퇴한 조소앙은 한국 독립당(임시 정부 계열)을 재건했다.

탈퇴한 지청천(또는 이청천)은 조선 혁명당을 재건했다.

 

    • 조선 민족 전선 연맹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나자 조선 민족 혁명당은 다른 단체들을 통합하여 조선 민족 전선 연맹을 결성하였다.

 

    • 조선 의용대

1938년 중국 우한에서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조선 민족 전선 연맹 아래 중국 관내 최초의 한국인 무장 부대인 조선 의용대가 김원봉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조선 의용대는 일본군의 정보 수집, 포로 신문, 후방 교란, 심리전 등을 수행하였다.

 

      • 분화

조선 의용대는 항일 투쟁에 대한 노선이 나뉘어져 분화되었다.

적극적인 항일 투쟁을 원하는 조선 의용대 대원들은 중국 화북 지역으로 이동하여,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를 결성했다.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는 일본군의 공세에 맞서 호가장 전투 등이 참가하여 큰 전과를 거두었다.

김원봉을 포함한 조선 의용대 본대 잔류 인원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있는 충칭으로 이동하여 한국광복군에 합류하였다.

 

민족 혁명당 결성
(김원봉, 조소앙, 지청천 등)
한국 국민당
(김구)
.
조선 민족 혁명당 개편
(김원봉)

탈퇴

한국 독립당
(조소앙)조선 혁명당
(지청천)
조선 민족 전선 연맹 결성
조선 의용대
↓ 분화 ↓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

조선 의용대 본대

(김원봉)

합류

한국 독립당
한국광복군

 

  • 만주에서의 무장 독립 전쟁
    • 동북 인민 혁명군

중국 공산당은 만주 지역 곳곳에 만들어진 항일 유격대를 통합하여 동북 인민 혁명군을 조직하였다(1933년).

 

    • 동북 항일 연군

이후 동북 인민 혁명군은 사상에 관계없이 모든 반일 세력을 받아들인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동북 항일 연군으로 확대·개편되었다(1936년).

 

    • 조국 광복회

동북 항일 연군 내의 한 부대로 편성된 한인 유격대는 사회주의 세력과 민족주의 세력까지 포함하여 조국 광복회를 결성하였다(1936년).

1937년 이들은 국내 독립운동가들의 지원 아래 함경도 보천보의 경찰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습격하였다(보천보 전투).

 

기출 문제 키워드

 

2027학년도(2026) 6월 모의평가 한국사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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