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번 문제
13. (가) 통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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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사헌부가 설치되었다.
② 노비안검법이 실시되었다.
③ 치안 유지법이 시행되었다.
④ 삼청 교육대가 운영되었다.
⑤ 백두산정계비가 건립되었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1919년 3⋅1 운동은 일제의 통치 방식에 영향을 주어, 일제는 폭력적인 무단 통치에서 이른바 ‘문화 통치’로 바꾸었다.
① 사헌부가 설치되었다.
사헌부는 조선의 중앙 정치 조직으로, 관리의 비행을 감찰하고 풍속을 바로 잡는 역할을 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노비안검법이 실시되었다.
고려 광종 때 노비안검법이 실시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치안 유지법이 시행되었다.
일제 문화 통치 시기인 1925년 일제는 치안 유지법을 제정하여 항일 민족 운동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더욱 강화하여 많은 한국인을 구속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삼청 교육대가 운영되었다.
1980년 신군부 세력은 불량배 소탕을 빌미로 삼청 교육대를 만들어 시민들의 인권을 짓밟았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백두산정계비가 건립되었다.
조선 숙종 때 백두산정계비가 건립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우리 민족의 거족적인 3⋅1 운동과 그로 인하여 악화된 국제 여론에 직면한 일제는 식민 통치 정책의 전환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3⋅1 운동 이후 일제는 이른바 문화 통치를 표방하였다. 일제의 문화 통치는 친일파를 길러 우리 민족을 이간, 분열시키려는 정책으로서, 우리 민족의 단결을 억제하고 독립 운동을 막으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었다.
일제는 지금까지 현역 군인으로 조선 총독을 임명, 파견하던 것을 고쳐 문관도 그 자리에 임명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일제가 축출될 때까지 단 한 명의 문관 총독도 임명되지 않았다.
일제는 헌병 경찰제를 보통 경찰제로 바꾸었다 하지만 경찰의 수와 장비, 그리고 그 유지비는 3⋅1 운동 이전보다 크게 증가되었다. 뿐만 아니라 고등 경찰 제도를 실시하여 우리 민족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더욱 강화시켰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우리 민족의 신문 발행이 허가되었다. 하지만 일제는 언론에 대해서 검열을 강화하여 자신들의 비위에 맞지 않는 기사는 마음대로 삭제하였고, 더 나아가 신문의 정간을 다반사로 하였으며, 폐간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일제는 제2차 조선 교육령(1922년 2월)을 통해 보통 학교의 교육 연한을 4년에서 6년, 고등 보통학교의 수업 연한을 5년으로 연장하였다. 또한 교육의 기회를 확대해 준다고 했다. 하지만 학교 수는 여전히 부족했고, 조선인의 취학률이 일본인보다 낮았다.
일제는 지방 자치제를 실시하는 것처럼 부 면 합의회를 민선으로 구성하고 도 평의회를 설치했다. 하지만 이 기구는 의결권이 없는 자문 기구일 뿐이었고, 일본인이나 친일 인사로 구성되었다.
1925년 일제는 치안 유지법을 제정하여 항일 민족 운동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더욱 강화하여 많은 한국인을 구속하였다.
문화 통치에 동조한 일부 지식인들은 민족 개조론, 자치론, 참정권론 등을 주장하며 민족 운족의 분열을 초래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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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중앙 정치 체제 |
조선의 중앙 정치 체제는 경국대전으로 법제화되었다.
관리는 문반과 무반의 양반으로 구성되었고, 30등급(18품 30계)으로 나뉘었다. 조선의 중앙 관직인 경관직은 국정을 총괄하는 의정부와 그 아래에 왕의 명령을 집행하는 행정 기관인 6조를 중심으로 편성되었다.
의정부는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 통치 기관이었다. 3정승의 합의에 의해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였다.
6조는 왕의 명령을 집행하는 행정 기관이었다. 6조는 국가의 행정을 나누어 맡았다. 6조의 판서(장관)들은 행정만을 맡은 것이 아니라, 나라의 중요한 일을 의논할 때에는 의정부의 재상들과 자리를 같이하여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로 이루어졌다.
3사는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을 말한다. 3사의 언론은 고관은 물론이고 왕이라도 함부로 막을 수 없었고, 이를 위한 여러 규정이 관행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와 같은 3사의 기능 강화는 권력의 독점과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조선 시대 정치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사헌부는 관리의 비행을 감찰하고 풍속을 바로 잡았다. 또한 백관에 대한 규찰과 탄핵 등을 관장했다. 사헌부의 수장은 대사헌이다. 집의, 장령 등의 관직을 두었다. ‘상대’는 사헌부의 별칭이다.
사간원은 왕이 바른 정치를 하도록 일깨워 주었다. 왕에게 간언, 논박. 사간원의 수장은 대사간이다.
홍문관은 왕의 정치 자문과 왕과 대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학술과 정책 문제 등을 토론하는 경연을 담당했다. 다른 이름으로는 ‘옥당’이라고 불렀다.
의금부는 국왕 직속 사법 기구로 반역죄, 강상죄 등과 같은 국가의 큰 죄인을 다스렸다. 금오(金吾), 조옥(詔獄)라는 별칭이 있었다.
승정원은 왕명의 출납을 맡은 비서 기관으로, 왕의 곁에서 국정 운영을 보좌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도승지를 수장으로 좌승지, 우승지 등의 관직을 두었다. 은대(銀臺)라는 별칭이 있었다.
한성부는 서울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했다.
춘추관은 역사서 편찬과 보관을 담당했다. 사초와 시정기를 바탕으로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하였다.
천문, 지리, 기후 등에 관한 사무를 맡았다.
사대교린에 관한 문서를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성균관은 조선의 최고 교육 기관이었다. 주요 건물로 공자를 비롯한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학생들이 학문을 배우던 명륜당 등이 있다. 대사성, 좨주, 직강 등의 관직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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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광종 |
956년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여 호족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국가의 수입 기반을 확대
958년 쌍기의 건의로 과거 제도를 시행하여, 유학을 익힌 신진 인사를 등용하고 신구 세력의 교체
지배층의 위계 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백관의 공복 제정
국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황제를 칭하고(외왕내제), 광덕, 준풍 등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
기금을 마련한 뒤 이자로 빈민을 구제하는 제위보를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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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정부 수립 |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신군부는 입법·사법·행정의 삼권을 모두 포괄하는 초헌법적 기구인 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를 조직하여 정권을 장악하였다.
1980년 신군부 세력은 불량배 소탕을 빌미로 삼청 교육대를 만들어 시민들의 인권을 짓밟았다.
1980년 8월, 전두환은 최규하를 대통령에서 물러나게 하고,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980년 10월 개헌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7년 단임으로 하고, 대통령 선거인단이 간선제로 대통령을 뽑도록 하였다.
1981년 2월, 전두환은 새 헌법에 따라 제12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전두환 정부는 정권에 대한 반발을 누그러뜨리려 유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야간 통행금지 해제, 중고생의 두발과 교복 자율화, 프로 야구 출범, 해외 여행 자유화 등이 이루어졌다. 반면 언론 장악을 위해 언론사 통폐합이 추진됐으며, 언론사 기사 통제를 위해 문화공보부가 보도지침을 작성하여 각 언론사에 배포하였다.
1986년 부천 경찰서 성 고문 사건이 발생하였다.
1987년 1월 대학생 박종철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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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청과의 관계 |
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청에 대하여 표면상 사대 관계를 맺고 사신이 왕래하면서 교역을 활발하게 하였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청에 대한 적개심이 오랫동안 남아 있어서 북벌 정책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효종은 청에 반대하는 입장을 강하게 내세웠던 송시열, 송준길, 이완 등을 높이 등용하여 군대를 양성하고 성곽을 수리하였으며, 어영청을 중심으로 국방력을 강화하고 북벌을 준비하였다. 그 후, 숙종 때에도 청의 정세 변화를 이용하여 윤휴를 중심으로 북벌 움직임이 제기되었으나, 현실적으로 북벌을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였다.
이 시기에 청은 중국 대륙을 장악한 뒤 국력이 크게 신장되고, 중국의 전통 문화를 보호, 장려하고 서양의 문물까지 받아들여 문화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다. 조선 사신은 귀국 후에 기행문이나 보고서를 통하여 변화하는 청의 사정을 전하였고, 새로운 문물을 소개하였다. 이후 학자들 중에도 청을 무조건 배척하지만 말고 우리에게 이로운 것은 적극적으로 배우자는 북학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조선 정부는 청의 수도인 북경에 정기적으로 연행사를 파견했다.
한편, 청은 중국 대륙을 차지한 후에도 그들의 본거지였던 만주 지방에 관심을 기울여 이 지역을 성역화하였다.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일부가 두만강을 건너 인삼을 캐거나 사냥을 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청과 국경 분쟁이 일어났다. 이에, 1712년 조선 숙종 때 조선과 청의 두 나라 대표가 백두산 일대를 답사하고 국경을 확정하여 정계비를 세웠다. 이 정계비에서 양국 간의 국경은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을 경계로 한다고 하였다. 이후 청 정부는 중국인의 간도 이주와 개간을 목적으로 조선인의 간도 철수를 요구하였다. 이에 양국 대표들이 모여 국경을 확정지으려 하였으나, 백두산정계비의 해석을 둘러싸고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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