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학년도 9월 모의고사 한국사 3번 해설

3번 문제

3. 밑줄 친 ‘이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① 골품제를 운영하였다.

② 탕평책을 실시하였다.

③ 과거제를 도입하였다.

④ 회사령을 시행하였다.

⑤ 육영 공원을 설립하였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진흥왕과 선덕 여왕은 신라의 국왕이었다.

 

① 골품제를 운영하였다.

신라는 신분 제도였던 골품제를 운영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탕평책을 실시하였다.

조선 후기 영조, 정조 때 붕당 정치의 폐해를 해결하기 위해 탕평책을 실시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과거제를 도입하였다.

고려 광종 때 과거제를 도입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회사령을 시행하였다.

1910년 일제는 민족 기업을 규제하기 위하여 회사령을 제정, 공포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육영 공원을 설립하였다.

1886년 조선은 육영 공원을 세워 헐버트 등 미국인 교사 세 사람을 초빙하여 주로 현직 관료와 상류층의 자제들에게 신지식과 외국어를 가르쳤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삼국의
건축과 탑
  • 삼국의 건축
    • 고구려

안학궁 – 장수왕이 평양에 세웠다.

 

    • 백제

미륵사 – 7세기 무왕이 추진한 백제의 중흥을 반영하고 있다.

 

    • 신라

황룡사 – 6세기에 진흥왕이 세웠다.

 

  • 삼국의 탑
    • 고구려

주로 목탑을 건립했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없다.

 

    • 백제

익산 미륵사지 석탑 – 서탑만 일부가 남아 있는데, 목탑의 모습을 많이 지니고 있다. 해체 과정에서 사리호와 사리봉안기가 발견되었다.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 – 부여에 남아 있다.

익산 왕궁리 5층 석탑

미륵사지 석탑

정림사지 5층 석탑

왕궁리 5층 석탑

 

    • 신라

황룡사 9층 목탑 – 신라 선덕여왕 시기 자장의 건의에 따라 세워졌다.

분황사 모전 석탑 – 전탑의 형식을 따랐다.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았다.

분황사 모전 석탑

신라
사회 모습
  • 화백회의

신라는 여러 부족의 대표가 함께 모여 정치를 운영

 

  • 골품 제도

신라에는 혈연에 따라 사회적 제약이 가해지는 골품 제도가 있었다. 골품은 신라 사회에서 개인의 사회 활동과 정치 활동의 범위까지 엄격히 제한하였다.

자료: 국사 편찬 위원회

 

  • 화랑도

진흥왕 때 국가 차원에서 그 활동을 장려하여 조직이 확대되었으며, 진평왕 때 원광은 청소년에게 세속 5계를 가르쳐 마음가짐과 행동의 규범을 제시하였다.

조선 후기
영조의 탕평 정치
  • 1728년 이인좌의 난 발생
  • 탕평 정치 실시. 탕평책.

탕평비

  • 탕평비 설치 – 1742년 붕당의 폐해를 경계하기 위한 탕평비가 건립되었다. 탕평책을 펼쳐 붕당의 다툼을 없애려 한 영조의 의지가 담겨 있다.
  • 준천사를 설치하여 청계천을 준설함으로서 청계천의 범람 피해와 하수처리 문제를 해결
  • 산림 존재 불인정
  • 서원 대폭 정리
  • 이조 전랑 권한 약화
  • 균역법 시행
  • ‘속대전’, ‘속오례의’, ‘동국문헌비고’ 편찬
  • 신문고 부활
고려 광종
  • 노비안검법

956년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여 호족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국가의 수입 기반을 확대

  • 과거 제도

958년 쌍기의 건의로 과거 제도를 시행하여, 유학을 익힌 신진 인사를 등용하고 신구 세력의 교체

  • 공복 제정

지배층의 위계 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백관의 공복 제정

  • 칭제 건원

국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황제를 칭하고(외왕내제), 광덕, 준풍 등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

  • 제위보

기금을 마련한 뒤 이자로 빈민을 구제하는 제위보를 설치

일제의
산업 침탈

  • 회사령 공포

1910년 일제는 민족 기업을 규제하기 위하여 회사령을 제정, 공포하였다.

회사령

제1조 회사의 설립은 조선 총독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제2조 조선 외에서 설립한 회사가 조선에 본점이나 지점을 설립하고자 할 때는 조선 총독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제5조 회사가 본령이나 본령에 의거하여 발하는 명령과 허가 조건에 위반하거나 공공질서와 선량한 풍속에 반하는 행위를 할 때 조선 총독은 사업의 정지, 지점의폐쇄, 또는 회사의 해산을 명한다.

 

  • 회사령 허가제

회사령은 기업의 설립을 총독의 허가제로 하고, 허가 조건을 위반할 때에는 총독이 사업의 금지와 기업의 해산을 명할 수 있게 규정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인의 기업 활동이 억압되고 민족 산업의 성장이 저해되었다.

 

  • 임업

임업 부문에서 산림령에 따른 임야 조사 사업이 실시되어, 막대한 국⋅공유림과 소유주가 명확하지 않았던 임야가 거의 일본인에게 넘어가 전체 임야의 50% 이상이 조선 총독부와 일본인에게 점탈되었다.

 

  • 어업

조선 총독부는 어업령을 공포하여 일본 어민의 성장을 지원하고 우리 어민의 활동을 억압하였다.

 

  • 광업

조선 총독부는 전국의 광산 자원을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우리 민족의 광업 활동을 제약하는 광업령을 제정, 공포한 후 일본인 재벌에게 많은 광산을 넘겼다.

근대 교육의
발달

  • 원산학사

1883년에 원산(덕원부)에 관민이 합심하여 기금을 모아 원산 학사을 설립하고 최초로 근대 교육을 했다.

 

  • 동문학

1883년에 정부는 통역관 양성을 위한 동문학을 설립하였다.

 

  • 육영 공원

1886년 정부는 육영 공원을 세워 헐버트 등 미국인 교사 세 사람을 초빙하여 주로 현직 관료와 상류층의 자제들에게 신지식과 외국어를 가르쳤다.

좌원과 우원을 구분하여 학생을 선발하였다.

 

  • 배재 학당와 이화 학당

외국의 개신교 선교사들도 정부의 협조를 얻어 배재 학당, 이화 학당 등을 세워 신학문과 서양 문화 및 영어 등을 가르쳤다.

이화 학당은 최초의 여성 교육 기관으로 건립되었다.

 

  • 한성 사범 학교

갑오개혁 이후 정부에서는 교육 입국 조서를 발표하여 교육의 중요성을 널리 알린 후에, 한성 사범 학교(1895년), 외국어 학교, 소학교 등을 차례로 세워 인재의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 대성 학교와 오산 학교

신민회는 평양에 대성 학교(1908년), 정주에 오산 학교(1907년)를 세워 인재를 길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7학년도(2026) 9월 모의평가 한국사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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