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학년도 9월 모의평가 한국사 17번 해설 – 문맹 퇴치 운동

17번 문제

17. 다음 운동이 전개된 시기에 볼 수 있었던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제○회 학생 여름 ○○○○운동

남여 학생 충동원, 휴가는 봉사적으로

학생 여러분!
여름 방학 일주일간의 노력이면 당신 고향 마을의 ‘문맹’이 소멸될 것이요, 위생 사상이 보급될 것입니다.

① 황성신문을 발행하는 언론인

② 문자 보급 운동을 전개하는 청년

③ 암태도 소작 쟁의에 참가하는 소작농

④ 조선 청년 총동맹 결성식에 참석하는 지식인

⑤ 민립 대학 설립을 위해 모금에 동참하는 기업인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일제 강점기에 차별적인 교육 정책으로 한국인 중 상당수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이에 실력 양성 운동 차원에서 한글을 보급하여 민중을 깨우치고 생활을 개선하고자 하는 문맹 퇴치 운동이 일어났다.

 

① 황성신문을 발행하는 언론인

국권 피탈 이전인 1898년 국한문 혼용체를 사용한 황성신문은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실어 을사늑약을 비판하고 민족 의식을 고취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문자 보급 운동을 전개하는 청년

<조선일보>는 1929년부터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라는 구호 아래 문자 보급 운동을 펼쳤다.

조선일보는 이 과정에서 <한글원본>이라는 한글 교재를 발간하여 농촌에 배부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암태도 소작 쟁의에 참가하는 소작농

1923년 전라도 암태도에서 소작인들이 친일 지주 문재철의 횡포와 일본 경찰의 탄압에 맞서 암태도 소작 쟁의를 벌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조선 청년 총동맹 결성식에 참석하는 지식인

1920년대 초에 사회주의 사상이 유입된 이후, 청년 단체들은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로 나뉘었다. 이와 같은 청년 운동의 분열을 수습하기 위하여 조직된 것이 조선 청년 총동맹이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민립 대학 설립을 위해 모금에 동참하는 기업인

3·1운동 이후 교육에 대한 한국인들의 요구가 높아졌고, 제2차 조선 교육령에 따라 대학 설립이 가능해지자 실력 양성 운동 차원에서 한국인의 힘으로 고등 교육 기관을 설립하자는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이 일어났다.

이상재 등이 중심이 된 조선 교육회의 제안으로 서울에서 조선 민립 대학 기성 준비회가 만들어졌다(1922년 11월).

이를 바탕으로 출범한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는 ‘한민족 1천만이 한 사람이 1원씩’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전국적인 모금 운동을 벌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17학년도(2016) 9월 모의평가 한국사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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