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학년도 6월 모의평가 한국사 11번 해설 – 조선 후기 경제

11번 문제

11. 다음 주장이 나타난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3점]

육지로 천 리를 가는 것이 뱃길로 만 리를 가는 것의 편리함을 당하지 못하므로 통상이란 반드시 뱃길을 중요하게 여긴다. …(중략)… 나라의 재주 있는 장인들을 모아 배를 만들되, 청나라의 배처럼 견고하고 치밀하게 만들어야 한다.

- 박제가, 『북학의』-

① 벽란도가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

② 농지 개혁으로 농지가 유상 분배되었다.

③ 한강을 중심으로 경강상인이 활동하였다.

④ 상권을 수호하기 위해 상회사가 설립되었다.

⑤ 화폐 정리 사업으로 상인들이 타격을 받았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는 청에 다녀온 후 <북학의>를 저술하여 청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제창하였다.

그는 상공업의 발달, 청과의 통상 강화, 수레와 선박의 이용 등을 역설하였다. 또, 생산과 소비와의 관계를 우물물에 비유하면서 생산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절약보다 소비를 권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① 벽란도가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

고려 시대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농지 개혁으로 농지가 유상 분배되었다.

제헌 국회는 농민에게 농지를 분배한다는 내용을 제헌 헌법에 담았으며, 1949년 6월에는 농지 개혁법을 제정하였다.

3정보를 초과하는 토지는 정부가 사들인 다음, 이를 농민에게 대가를 받고 분배하는 ‘유상 매입, 유상 분배’의 방식으로 농지 개혁을 추진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한강을 중심으로 경강상인이 활동하였다.

조선 후기 사상이 서울을 비롯한 각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그들은 각 지방의 장시를 연결하면서 물품을 교역하고, 각지에 지점을 두어 상권을 확장하였다.

경강상인은 운송업에 종사하면서 거상으로 성장하였다. 그들은 한강을 근거지로 하여 주로 서남 연해안을 오가며 미곡, 소금, 어물 등을 거래하였다. 또한 선박의 건조 등 생산 분야에까지 진출하여 활동 분야를 넓히기도 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상권을 수호하기 위해 상회사가 설립되었다.

개항 후, 외국 상인의 내륙 상업이 허용됨에 따라 중개 무역을 하던 객주 등의 상인들이 큰 타격을 받게 되었는데, 자본 축적에 성공한 일부 상인들은 상회사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1880년대 초기부터 대동 상회, 장통 회사 등의 상회사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갑오개혁 이전에는 회사 수가 전국 각지에 40여 개에 달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화폐 정리 사업으로 상인들이 타격을 받았다.

1904년 러일 전쟁 중 일제는 제1차 한일 협약을 체결하고 대한 제국에 메가타를 재정 고문으로 파견하였다.

1905년 메가타의 주도 하에 화폐 정리 사업이 실시되었다.

조선의 화폐였던 백동화와 엽전을 일본 제일은행에서 발행하는 일본 화폐인 일본 제일은행권으로 교환하게 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17학년도(2016) 6월 모의평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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