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학년도 6월 모의평가 한국사 12번 해설 – 척화비

12번 문제

12.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한국사 신문

인물 탐구: (가)

▲ 척화비

그는 고종이 즉위한 후 실권자가 되어 개혁을 추진하였다. 통치 체제를 정비하기 위해 중앙 정치 기구를 개편하고,『대전회통』을 편찬하였다. 그리고 유생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전국의 서원을 정리하여 47개만 남기고 모두 철폐하였다. …(중략)… 두 차례의 양요를 겪은 후 그는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에 척화비를 세웠다.

① 태조의 북진 정책

② 광해군의 외교 정책

③ 흥선 대원군의 개혁 정치와 대외 정책

④ 영조의 탕평파 육성과 민생 안정 정책

⑤ 광종의 과거제 실시와 왕권 강화 정책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위 자료에서 (가)에 해당하는 인물은 흥선 대원군이다.

 

① 태조의 북진 정책

고려 태조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한 후, 북진 정책을 추진하여 평양을 서경으로 삼고,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적극 개발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광해군의 외교 정책

조선 후기 광해군 때 명에 요청에 따라 강홍립을 도원수로 삼아 1만 3000명의 군대를 파견하였다.

하지만 조⋅명 연합군은 후금군에게 패하였고, 사르후 전투에 참전했던 강홍립 등은 후금에 항복하였다.

이후에도 명의 원군 요청은 계속되었지만, 광해군은 후금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중립 외교 정책을 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흥선 대원군의 개혁 정치와 대외 정책

흥선 대원군 집권 시기, 세도 정권의 핵심 권력 기구로 왕권을 제약하였던 비변사를 축소하여 사실상 폐지하였다. 그리고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을 부활시켜 행정권과 군사권을 나누어 맡도록 함으로써 권력 독점을 견제하였다.

그리고 <대전회통>, <육전조례> 등 법전을 편찬하여 통치 체제를 재정비하였다.

또한 전국의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철폐하였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흥선 대원군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건립했다(1871년).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영조의 탕평파 육성과 민생 안정 정책

1742년 조선 영조는 붕당의 폐해를 경계하기 위한 탕평비가 건립되었다. 탕평책을 펼쳐 붕당의 다툼을 없애려 한 영조의 의지가 담겨 있다.

이후 탕평 정치를 실시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광종의 과거제 실시와 왕권 강화 정책

958년 고려 광종은 쌍기의 건의로 과거 제도를 시행하여, 유학을 익힌 신진 인사를 등용하고 신구 세력을 교체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17학년도(2016) 6월 모의평가 한국사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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