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학년도 6월 모의평가 한국사 16번 해설 – 황국 신민화 정책

16번 문제

16. 교사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답변으로 옳은 것은?

▲  황국 신민 서사를 강제로 암송하는 학생들 ▲ 조선 신궁에 강제로 참배하는 학생들
선생님: 이 자료들은 일제가 중∙일 전쟁 후 본격적으로 추진했던 정책의 내용을 보여 줍니다. 이 시기에는 또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요?

① 동학 농민군을 공격하는 일본 군인이요.

② 경인선 개통을 준비하는 일본 기술자요.

③ 강화도 조약 문서에 서명하는 일본 외교관이요.

④ 방곡령의 철회와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일본 상인이요.

⑤ 일본식으로 성과 이름을 바꾸도록 강제하는 일본인 교사요.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였다.

일제는 침략 전쟁을 확대하면서 한국인의 정신을 말살하고 일본 국왕에 대한 숭배 사상을 주입하는 민족 말살 통치를 실시하였다. 이는 한국인을 침략 전쟁에 효율적으로 동원하려는 의도였다.

일제는 성과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고쳐 쓰도록 하고(창씨개명 1940년), 황국 신민 서사 암송(1937년), 궁성 요배, 신사 참배 등을 강요하였다.

 

① 동학 농민군을 공격하는 일본 군인이요.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과정에서 동학 농민군은 공주의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을 상대로 격전을 벌였으나, 근대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패하여 큰 희생을 치렀다.

이후 전봉준 등 지도자들이 체포됨으로써 동학 농민 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경인선 개통을 준비하는 일본 기술자요.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강화도 조약 문서에 서명하는 일본 외교관이요.

1876년 조선 정부는 논의를 거쳐 개항을 결정하고 일본과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을 체결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방곡령의 철회와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일본 상인이요.

1883년 일본과의 협정한 조일 통상 장정에는 미곡 유출을 제한하는 방곡령 시행 규정이 포함되었다.

1889년 함경도 관찰사 조병식은 흉년으로 인해 방곡령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조⋅일 통상 장정의 규정을 구실로 통고받은 날부터 수출 금지 일자까지 1개월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방곡령의 취소를 요구하였다.

결국 조선은 방곡령을 철회하였으며, 일본 상인들은 방곡령으로 인하여 손해를 입었다고 하여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하였고, 결국 조선 정부는 일본에 배상금을 지불하게 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일본식으로 성과 이름을 바꾸도록 강제하는 일본인 교사요.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17학년도(2016) 6월 모의평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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