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학년도 6월 모의평가 한국사 11번 해설 – 대한제국

11번 문제

11. 밑줄 친 ‘황제국’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광무 원년 10월 12일은 우리 역사에서 제일 빛나고 영화로운 날이 되었다. 폐하께서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시어 조선이 자주독립한 황제국이 되었으니 백성으로서 어찌 감격한 생각이 아니 나겠는가. …(중략)… 이날 오전 환구단에 가서 하늘에 제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음을 고하였다. 정오에 만조백관이 예복을 갖추고 경운궁에 나아가 황제 폐하께 크게 하례를 올렸다.

① 지계를 발급하였다.

② 골품제를 운영하였다.

③ 개경을 수도로 삼았다.

④ 인조반정으로 성립되었다.

⑤ 국민 대표 회의를 소집하였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조선 고종은 그동안 떨어진 나라의 위신을 높이기 위해 국호를 대한 제국으로, 연호를 광무라 고친 다음, 왕을 황제라 칭하여 자주 국가임을 내외에 선포하고 환구단에서 황제로 즉위했다(1897년).

 

① 지계를 발급하였다.

대한 제국은 1898년부터 양전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양지아문과 지계아문을 설치했다.

그리고 전국 토지를 측량한 후 토지 소유권을 입증하는 지계를 발급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골품제를 운영하였다.

신라는 골품제라는 신분 제도를 운영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개경을 수도로 삼았다.

고려는 개경을 수도로 삼았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인조반정으로 성립되었다.

조선 광해군과 북인 정권은 왕권의 안정을 이루고자 영창 대군을 죽이고 인목 대비를 유폐시키는 등 유교 윤리에 어긋나는 정치를 펴 도덕적으로 큰 약점을 드러냈다.

그리하여 이를 빌미로 서인이 인조반정을 일으킴으로써 광해군은 왕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국민 대표 회의를 소집하였다.

1920년대 초 대한민국 임시 정부 내에서 독립운동 노선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었다. 더욱이 외교 활동은 강대국의 외면으로 큰 성과를 얻지 못하였다.

이후 이승만의 국제 연맹 위임 통치 청원 사건을 계기로 신채호, 박용만 등의 무장 투쟁론자들은 이를 문제 삼아 임시 정부의 개편을 요구하였다.

이어서 여러 민족 운동가는 독립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1923년 국민대표 회의를 개최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3학년도(2022) 6월 모의평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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