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학년도 학평 고3 3월 모의고사 한국사 4번 기출문제

문제

4. 밑줄 친 ‘전쟁’ 중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흉악한 왜적이 바다를 건너가니 명의 수군과 우리 수군이 추격하여 다수의 머리를 베었다고 한다. …(중략)… 그런데 전쟁 초기부터 호남의 방어를 맡아 나라의 방패가 되어 준 통제사 이순신이 왜적의 탄환에 맞아 전사하였으니 참으로 애석하다. 전쟁이 일어난 지 7년 만에 왜적이 돌아갔는데, 우리 장수와 병사들이 얼마나 죽었는지 헤아릴 수 없다. 분하고 애통함을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① 곽재우 등 의병이 활약하였다.

②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였다.

③ 윤관의 건의로 별무반이 편성되었다.

④ 강감찬이 귀주에서 적군을 대파하였다.

⑤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출처: EBSi 홈페이지

문제 해설

위 자료는 조선 시대 임진왜란에 대한 내용이다. 이순신이 수군이 이끌고 왜군을 물리쳤다.

 

① 곽재우 등 의병이 활약하였다.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였다.

고려 말 명이 철령 이북의 땅을 차지하려 하자, 최영은 이성계를 시켜 요동 정벌을 단행하였다.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하여(1388년) 최영을 제거한 뒤, 군사적 실권을 장악하여 1392년 조선을 건국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윤관의 건의로 별무반이 편성되었다.

고려 시대 여진 정벌을 위해 윤관의 건의로 별무반이 편성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강감찬이 귀주에서 적군을 대파하였다.

고려 시대 거란이 침입했을 때 강감찬이 귀주대첩으로 거란군을 대파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고구려 시대 수나라가 침입했을 때, 을지문덕이 살수대첩으로 수나라군을 대파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임진왜란
  • 배경

중종 때의 3포 왜란(1510년), 명종 때의 을묘왜변(1555년) 발생

비변사를 설치하여 군사 문제를 전담하게 하는 등 대책 강구

 

  • 임진왜란 발발

일본은 전국 시대의 혼란을 수습한 뒤 철저한 준비 끝에 20만 대군으로 조선을 침략(1592년).

 

  • 이순신과 수군

전라도 지역에서 이순신이 이끈 수군은 옥포에서 첫 승리를 거둔 이후 남해안 여러 곳에서 연승을 거두어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

한산도 대첩, 명량 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둠

한산도 대첩에서 거북선 사용

 

  • 의병

의병은 경상도에서 곽재우가 처음 일으킨 후 김천일, 조헌, 고경명, 정문부, 유정(사명대사), 서산대사 등이 여러 지방에서 왜군과 전투

 

  • 육군

조⋅명 연합군은 평양성을 탈환(평양성 전투)하였으며, 권율 장군은 관군, 백성과 함께 합심하여 행주산성에서 적의 대규모 공격을 물리쳤다(행주 대첩). 진주에서는 김시민이 이끄는 관민이 일본군을 물리쳤다(진주 대첩, 제1차 진주성 전투).

 

  • 훈련도감

류성룡의 건의에 따라 훈련도감을 설치하여 군대의 편제와 훈련 방법을 바꾸었고, 속오법을 실시하여 지방군 편제도 개편하였으며, 화포를 개량하고 조총도 제작하여 무기의 약점을 보완

 

  • 정유재란

3년여에 걸친 명과 일본 사이의 휴전 회담이 결렬되자, 왜군이 다시 침입(1597년).

조⋅명 연합군이 왜군을 직산에서 격퇴하고 이순신이 적선을 명량에서 대파하자(명량 해전), 전세가 불리해진 왜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본국으로 철수

 

  • 임진왜란의 영향

조선 – 토지 대장과 호적의 대부분이 없어져 국가 재정이 궁핍해지고, 식량 부족. 왜군의 약탈과 방화로 불국사, 서적, 실록 등 수많은 문화재가 손실되었고, 수만 명이 일본에 포로로 잡혀감

징비록 – 류성룡이 지은 징비록에는 임진왜란 이전 일본과의 관계,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제해권 장악, 명의 군대 파견 등에 대한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일본 – 일본은 조선에서 활자, 그림, 서적 등을 약탈해 갔고, 성리학자와 우수한 인쇄공 및 도자기 기술자 등을 포로로 잡아가 일본의 성리학과 도자기 문화가 발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

명 – 조선과 명이 일본과 싸우는 동안 북방의 여진족이 급속히 성장하여 동아시아의 정세가 크게 변화

조선의 건국
  • 위화도 회군

명이 철령 이북의 땅을 차지하려 하자, 최영은 이성계를 시켜 요동 정벌을 단행하였다.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하여(1388년) 최영을 제거한 뒤, 군사적 실권을 장악하여 본격적인 개혁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 신진 사대부의 분화와 갈등

정도전 등 급진 개혁파는 창왕을 몰아 내고 공양왕을 세우면서 정치적 실권을 잡았다. 이들은 역성혁명을 반대하던 정몽주를 비롯한 온건 개혁파를 제거하였다.

 

  • 과전법 시행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우왕과 최영을 몰아 내고 실권을 잡은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들은 문란한 토지 제도를 바로잡고, 경제 기반을 다지기 위해 과전법(1391년)을 실시하였다.

 

  • 조선 건국

신흥 무인 세력과 급진 개혁파는 새 나라 건설을 반대한 정몽주 등을 제거하고, 마침내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여 새 왕조를 세웠다(1392년).

고려
여진 정벌
숙종 때 윤관의 지휘 아래 여진 정벌군을 파견하였으나 실패하자, 윤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편성

별무반

기병인 신기군, 보병인 신보군, 승병인 항마군으로 편성

1107년, 예종 때 윤관은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 정벌을 단행하여 여진족을 물리치고, 동북면 지역에 동북 9성을 설치

1115년, 강성해진 여진족은 금을 건국. 금은 거란을 멸망시킨 뒤 고려에 군신 관계를 요구했고, 당시 집권자였던 이자겸이 금과 무력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임

고려
거란의 침입
거란의 1차 침입 – 993년 고려 성종 때 거란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하여 고려가 차지하고 있는 옛 고구려 땅을 내놓고 송과 교류를 끊을 것을 요구. 서희의 담판 외교로 압록강 동쪽의 강동 6주 확보

거란의 2차 침입 – 1010년 고려 현종 때 거란은 목종을 폐하고 현종을 즉위시킨 강조의 정변을 트집잡아 다시 두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 양규가 이끄는 고려군이 강화를 맺고 물러가는 거란군을 크게 격파

거란의 3차 침입 – 1018년 고려 현종 때 거란은 다시 10만의 대군으로 침입. 1019년 강감찬이 지휘한 고려군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전멸시킴(귀주대첩)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개경에 나성을 쌓아 도성 수비를 강화하고, 압록강 하구에서 동해안의 도련포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쌓음

고구려와
수·당 전쟁
  • 612년 을지문덕의 살수 대첩(수나라)
  • 천리장성 축조(당나라 대비)
  • 642년 연개소문 정변, 영류왕 살해, 보장왕 즉위
  • 645년 안시성 전투(당나라)

 

기출 문제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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