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학년도 수능 한국사 13번 해설 – 대한민국 임시 정부

13번 문제

13.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① 한성순보를 발행하였다.

② 식목도감을 설치하였다.

③ 육영 공원을 설립하였다.

④ 연통제와 교통국을 조직하였다.

⑤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김규식을 대표로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하여 <한국 독립에 관한 청원서>를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이를 전달하게 했다.

또한 미국에 구미 위원부를 두어 이승만을 중심으로 외교 활동을 전개하여 한국 독립 문제를 국제 여론화하는 데 노력하였다.

 

① 한성순보를 발행하였다.

1883년 박영효의 주도로 박문국에서 한성순보를 발간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식목도감을 설치하였다.

식목도감은 고려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관청으로, 재신과 추밀이 함께 모여 회의로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곳이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육영 공원을 설립하였다.

1886년 조선 정부는 육영 공원을 세워 헐버트 등 미국인 교사 세 사람을 초빙하여 주로 현직 관료와 상류층의 자제들에게 신지식과 외국어를 가르쳤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연통제와 교통국을 조직하였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연통제와 교통국 조직은 국내외를 연결하는 비밀 행정 조직망이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김영삼 정부는 1996년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 각지의 임시 정부

3⋅1 운동 후 독립 운동을 체계적으로 조직할 지도부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여러 지역에서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연해주에서는 대한 국민 의회가 조직되었다. 대통령 손병희, 국무총리 이승만 선임.

서울에서는 13도 대표가 모여 한성 정부가 수립되었다. 집정관 총재 이승만, 국무 총리 이동휘 선임.

상하이에서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임시 의정원 구성, 국무총리 이승만 선임.

대한 국민 회의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1919. 03.)
  • 대통령: 손병희
  • 부통령: 박영효
  • 국무총리: 이승만
한성 정부
(경성, 서울)
(1919. 04.)
  • 집정관 총제: 이승만
  • 국무총리 총재: 이동휘
상하이 임시 정부
(중국 상하이)
(1919. 04)
  • 국무총리: 이승만
  • 내무총장: 안창호
  • 군무총장: 이동휘

 

  • 임시 정부 통합

정부 통합 운동은 민족 지도자들에 의하여 성사되었다.

국내에서 수립된 한성 정부를 계승하고, 대한 국민 의회를 흡수하여 상하이에 통합 정부인 대한 민국 임시 정부를 수립하였다(1919년 9월).

대한 민국 임시 정부는 각지의 임시 정부를 통합한 후, 민주주의에 입각한 근대적 헌법을 갖추고,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이동휘를 국무총리로, 안창호를 내무총장으로 추대하였다.

헌정 체제를 입법 기관인 임시 의정원, 사법 기관인 법원, 행정 기관인 국무원으로 구성하여, 우리 나라 최초의 3권 분립에 입각한 민주 공화제 정부로 출범하였다.

 

  •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활동
    • 비밀 행정 조직망

임시 정부의 연통제와 교통국 조직은 국내외를 연결하는 비밀 행정 조직망이었다.

연통제는 임시 정부의 지방 행정 기관으로 국내의 각 도, 군, 면에 독판, 군감, 면감을 두어 정부 문서와 명령 전달, 군자금의 송부, 정보 보고 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교통국은 통신 기관으로 정보의 수집, 분석, 교환, 연락의 업무를 관장하였다.

 

    • 독립운동 자금 마련

임시 정부 활동에는 막대한 독립운동 자금이 필요하였다. 임시 정부는 이 자금을 독립 공채의 발행이나 국민의 의연금으로 마련하였다.

국내외에서 수합된 자금은 연통제나 교통국의 조직망에 의해 임시 정부에 전달되었으며, 또 만주의 이륭 양행이나 부산의 백산 상회를 통하여 전달되기도 하였다.

 

    • 외교

임시 정부는 파리 강화 회의에 김규식을 대표로 파견하여 독립을 주장하였다.

또한 미국에 구미 위원부를 두어 이승만을 중심으로 외교 활동을 전개하여 한국 독립 문제를 국제 여론화하는 데 노력하였다.

 

    • 군사

임시 정부는 정부 조직에 군무부를 설치하여 군사 업무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군무부 아래에는 광복군 사령부와 광복군 총영 등을 두었으며, 이후 육군 주만 참의부(1924년)를 편성하여 무장 투쟁을 펼쳤다.

 

    • 기타

임시 정부는 기관지로 독립신문을 간행하여 배포하였으며, 사료 편찬소를 두어 한⋅일 관계 사료집을 간행하였다.

 

  • 국민 대표 회의(1923년)
    • 배경

1920년대 초 일제의 탄압으로 연통제와 교통국 조직이 발각되어 자금 사정은 어려워졌다.

또한 임시 정부 내에서 독립운동 노선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었다. 더욱이 외교 활동은 강대국의 외면으로 큰 성과를 얻지 못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승만의 국제 연맹 위임 통치 사건이 발생하였다.

국제 연맹 위임 통치 청원 사건

1919년 파리 강화 회의가 개최되자 이승만은 미국 대통령 윌슨에게 한국을 국제 연맹의 위임 통치 아래 둘 것을 제안하는 청원서를 보냈다.

 

    • 소집 요구

이승만의 국제 연맹 위임 통치 사건을 계기로 신채호, 박용만 등의 무장 투쟁론자들은 이를 문제 삼아 임시 정부의 개편을 요구하였다.

이어 여러 민족 운동가는 독립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국민대표 회의를 개최하였다.

 

    • 결과
창조파 개조파 현상 유지파
인물 박용만, 신채호, 김규식 안창호, 이동휘, 여운형 김구, 이동녕
주장 임시 정부 해체,

임시 정부 대체할 새로운 조직,

상하이 이외 지역으로 임시 정부 이전

임시 정부 개선·보완,

실력 양성 우선,

임시 정부를 민족 운동의 최고 지도 기관으로 개조

현상 유지

국민 대표 회의는 임시 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자는 창조파와 임시 정부의 조직만 바꾸자는 개조파의 대립으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국민 대표 회의가 결렬되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임시 정부를 떠났다.

 

    • 임시 정부의 재정비

1925년 임시 의정원에서는 이승만을 탄핵하고 박은식을 제2대 대통령으로 추대하였다.

곧이어 헌법을 고쳐 대통령제를 국무령 중심의 내각 책임제로 바꾸고 일종의 집단 지도 체제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이동녕과 김구 등을 중심으로 체제를 재정비해 나갔다.

 

  •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개헌 변천과정
구분 연도 정부 형태
제1차 개정헌법 1919년 대통령중심제
제2차 개정헌법 1925년 국무령 중심의 내각 책임제
제3차 개정헌법 1927년 국무위원 중심의 집단지도체제
제4차 개정헌법 1940년 주석 중심의 단일지도체제
제5차 개정헌법 1944년 주석·부주석 체제

근대 언론 기관의
발달

  • 한성순보

1883년 박영효가 주도한 박문국에서 순 한문체로 발행된 한성순보는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적 신문으로 관보의 성격을 띠었으며, 열흘에 한 번씩 발행되었다.

 

  • 한성주보

갑신정변으로 발행이 중단된 한성순보가 한성주보로 다시 발행되었다.

최초로 신문에 상업 광고가 게재되었다.

 

  • 독립신문

최초로 민간에서 간행한 신문은 독립신문이었다.

1896년에 독립 협회의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은 대중을 계몽하여 근대화를 촉진하려는 순 한글판과, 외국인에게 우리의 처지를 홍보하는 영문판으로 발행되었다.

 

  • 황성신문

1898년 국한문 혼용체를 사용한 황성신문은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실어 을사늑약을 비판하고 민족 의식을 고취하였다.

한문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이 주로 구독하였다.

황성신문이 여권통문을 처음 보도하였다.

 

  • 제국신문(1898년)

제국신문은 주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여 간행되었는데, 순 한글로 발행되었다.

신문지법에 의해 탄압을 받았다.

어용 단체인 일진회에 대해 통렬히 논박하는 등 민족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국채 보상 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 해조신문

190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된 한인 신문이다.

연해주 지역으로 망명한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국권 회복과 러시아 한인 계몽을 위해 <해조신문>을 창간하였다.

<해조신문>은 블라디보스토크(海蔘威) 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인 신문이라는 의미였다.

 

  • 대한매일신보

양기탁이 중심이 된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에 창간되었다.

한글 보급에 크게 기여한 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반대 운동, 국채 보상 운동 등을 주도하였다.

통감부의 극심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영국인 베델을 발행인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일본의 침략에 반대하는 논설을 실을 수 있었다.

특히, 의병 활동 등 민족 운동에 관한 기사를 많이 실어 민족의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또한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폭로하는 친서를 발표하였다.

그러다 1908년 통감부는 신문지법을 개정하여 대한매일신보를 규제하였다.

 

  • 만세보

만세보는 천도교 기관지로, 국한문 혼용으로 발행되었다. 만세보는 민중 계몽에 앞장섰다.

 

  • 신문지법

1907년 통감부는 신문지법을 만들어 자주 독립을 요구하던 민족 언론을 탄압하였다.

그러다 1908년 통감부는 신문지법을 개정하여 제국신문과 영국인 베델이 발행인인 대한매일신보를 규제하였다.

신문지를 발행하려는 자는 발행지를 관할하는 관찰사를 경유하여 내무대신에게 청원하여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신문지법-

고려
중앙 정치 조직
고려의 통치 체제는 성종 때에 마련한 2성 6부제를 토대로 하였다. 고려는 당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도 고려의 실정에 맞게 이를 조정하였다.

 

중서문하성

  • 중서문하성은 고려의 최고 관서로서, 그 장관인 문하시중이 국정을 총괄하였다.
  • 중서문하성은 재신과 낭사로 구성되었다. 재신은 국가의 정책을 심의하고, 낭사는 정치의 잘못을 비판하였다.
  • 낭사는 어사대의 관원과 함께 대간으로 불렸다.
  • 재신은 중추원의 추밀과 함께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의 구성원이었다.

 

상서성

  • 상서성은 실제 정무를 나누어 담당하는 6부를 두고 정책의 집행을 담당하였다.
  • 6부 – 6부에는 이부, 병부, 호부, 형부, 예부, 공부가 소속되어 있었다.

 

중추원

  • 송의 제도를 본따 만든 중추원은 군사 기밀과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였다.
  • 군사 기밀을 담당하면서 재신과 함께 국정을 총괄하는 추밀과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는 승선으로 구성되었다.
  • 추밀은 중서문하성의 재신과 함께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의 구성원이었다.

 

삼사

  • 삼사는 송나라와 달리, 단순히 화폐와 곡식의 출납에 대한 회계만 맡았다.

 

어사대

  • 어사대는 정치의 잘잘못을 논하고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는 임무를 맡았다.
  • 어사대의 관원은 중서문하성의 낭사와 함께 대간으로 불렸다.

 

대간

  • 대간은 어사대의 관원과 중서문하성의 낭사로 구성된다.
  • 왕의 잘못을 논하는 간쟁과 잘못된 왕명을 시행하지 않고 되돌려보내는 봉박, 관리의 임명과 법령의 개정이나 폐지 등에 동의하는 서경권을 가지고 있었다.

 

도병마사

  • 도병마사는 고려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관청으로, 재신과 추밀이 함께 모여 회의로 국방, 군사 문제를 논의하였다.
  • 도병마사는 국방 문제를 담당하는 임시 기구였으나, 고려 후기에 도평의사사(도당)로 개편되면서 구성원이 확대되고 국정 전반에 걸친 중요 사항을 담당하는 최고 정무 기구로 발전하였다.
  • 이러한 회의 기구의 존재는 고려 귀족 정치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식목도감

  • 식목도감는 고려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관청으로, 재신과 추밀이 함께 모여 회의로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곳이었다.
  • 식목도감은 임시 기구로서 국내 정치에 관한 법의 제정이나 각종 시행 규정을 다루던 회의 기구였다.
  • 이러한 회의 기구의 존재는 고려 귀족 정치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근대 교육의
발달

  • 원산학사

1883년에 원산(덕원부)에 관민이 합심하여 기금을 모아 원산 학사을 설립하고 최초로 근대 교육을 했다.

 

  • 동문학

1883년에 정부는 통역관 양성을 위한 동문학을 설립하였다.

 

  • 육영 공원

1886년 정부는 육영 공원을 세워 헐버트 등 미국인 교사 세 사람을 초빙하여 주로 현직 관료와 상류층의 자제들에게 신지식과 외국어를 가르쳤다.

좌원과 우원을 구분하여 학생을 선발하였다.

 

  • 배재 학당와 이화 학당

외국의 개신교 선교사들도 정부의 협조를 얻어 배재 학당, 이화 학당 등을 세워 신학문과 서양 문화 및 영어 등을 가르쳤다.

이화 학당은 최초의 여성 교육 기관으로 건립되었다.

 

  • 한성 사범 학교

갑오개혁 이후 정부에서는 교육 입국 조서를 발표하여 교육의 중요성을 널리 알린 후에, 한성 사범 학교(1895년), 외국어 학교, 소학교 등을 차례로 세워 인재의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 대성 학교와 오산 학교

신민회는 평양에 대성 학교(1908년), 정주에 오산 학교(1907년)를 세워 인재를 길렀다.

김영삼 정부
  • 문민정부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의 김영삼이 당선되면서 5·16 군사 정변 이후 처음으로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게 되었다.

 

  • 금융 실명제

1993년 김영삼 정부는 금융 실명제를 실시하여 탈세와 부정부패를 막고자 하였다.

 

  • 지방 자치제 실시

김영삼 정부에서는 지역 주민이 자치 단체장까지 직접 선출하는 지방 자치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하였다.

 

  • 역사 바로 세우기

역사 바로 세우기를 진행하여 1995년 조선 총독부 청사를 해체하였다.

 

  • 삼풍 백화점 붕괴

1995년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가 일어났다.

 

  • OECD 가입

김영삼 정부는 1996년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 IMF 외환 위기

김영삼 정부임기 말인 1997년, 외환 위기가 발생해 국제 통화 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대규모 해고 사태가 발생하였다.

 

  •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과 세계 무역 기구(WTO)

1986년에는 자유 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우루과이에서 다자간 무역 협상 개시를 위한 각료 선언(우루과이 라운드)을 발표하였다.

이에 정부는 미국 등의 개방 압력과 우루과이 라운드에 따라 시장과 자본의 전면적인 개방을 서둘렀고, 그 결과 다국적 기업과 국제 금융 자본 등이 국내에 진출하였다.

1994년에 타결된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과 다음 해에 세계 무역 기구(WTO)가 출범하자, 상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중시하는 새로운 국제 무역 질서가 수립되었다.

한국 정부는 1995년 1월 1일부터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 초등학교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었다.

 

  • 하나회 청산

군내 비밀 사조직이었던 하나회를 청산했다.

 

  • 거창 사건 특별법

1996년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었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6학년도(2025)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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