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학년도 수능 한국사 3번 해설 – 고려 태조

3번 문제

3. 밑줄 친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 이 삼한을 평정한 후 신하들에게 절개와 의리를 장려하고자하여 마침내 직접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반포하였다.
  • 이 말하기를, “염려스러운 것은 후대 왕들이 기강을 무너뜨릴까 하는 것이다. 이에 훈요 10조를 적어 후손들에게 전하니, 영원히 귀감으로 삼기를 바라노라.”라고 하였다.

① 고려를 건국하였다.

② 대가야를 정복하였다.

③ 규장각을 육성하였다.

④ 경국대전을 반포하였다.

⑤ 홍범 14조를 발표하였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위 자료에 해당하는 왕은 고려 태조 왕건이다.

 

① 고려를 건국하였다.

918년, 태조 왕건은 고구려 계승을 내세워 국호를 고려라 하고, 자신의 세력 근거지였던 송악으로 도읍을 옮겼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대가야를 정복하였다.

신라 신흥왕은 562년 고령의 대가야를 정복하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규장각을 육성하였다.

조선 정조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경국대전을 반포하였다.

조선 성종 때 경국대전을 완성하고 반포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홍범 14조를 발표하였다.

1897년 제2차 갑오개혁 때 고종은 종묘에 나가 독립 서고문을 바치고, 개혁의 방향을 제시한 홍범 14조를 반포하였다. 이는 최초의 근대적 헌법의 성격을 지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후삼국 통일
  • 왕건은 수군을 이끌고 금성(나주)을 점령하여 광평성 시중의 지위에까지 오름
  • 918년, 태조 왕건은 고구려 계승을 내세워 국호를 고려라 하고, 자신의 세력 근거지였던 송악으로 도읍을 옮김
  • 926년, 발해가 거란에 멸망당했을 때 고구려계 유민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고려로 망명. 태조 왕건은 이들을 우대하여 민족의 완전한 통합을 꾀함.
  • 927년, 견훤이 신라 왕경을 습격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신라를 돕기 위해 출전한 고려를 공산에서 대패시킴(공산 전투). 고려의 신숭겸이 왕건을 대신하여 전사함.
  • 930년, 고창 전투에서 후백제가 고려에 대패 당함
  • 935년 3월, 후백제 내분으로 견훤의 아들 신검이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시킴.
  • 935년 6월 견훤이 고려에 귀순.
  • 935년 11월, 통일 신라 경순왕, 고려에 항복. 태조 왕건, 경순왕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
  • 936년, 후백제의 신검이 일리천 전투에서 고려에 대패당함. 후백제 멸망, 고려 후삼국 통일
고려 태조
  • 흑창

빈민을 구제하기 위한 기구로 흑창 설치(춘궁기에 곡식을 나눠 주고 추수 후에 갚게 했던 빈민 구제 기구)

  • 사성 정책

태조는 지방 호족을 회유하기 위해 호족의 딸과 혼인하고, 왕씨 성을 하사하는 사성 정책 실시

  • 사심관 제도

건국 공신들을 사심에 임명하여, 각 자기 출신 지역의 부호장 이하의 임명을 맡게 하는 제도

  • 기인 제도

향리의 자제를 뽑아 서울에 인질로 삼고, 출신지의 일에 대하여 자문을 맡게 하는 제도

  • <정계>와 <계백료서>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가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

  • 훈요 10조

후대 왕들이 지켜야 할 정책 방향을 제시

  • 북진 정책

북진 정책을 추진하여 평양을 서경으로 삼고,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적극 개발

  • 역분전 지급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게 공훈에 대한 대가로 준 논공행상적 성격의 토지

  • 천수라는 연호 사용

 

  • 만부교 사건

고려 태조는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무도한 나라라고 하여 그 사신들을 섬으로 유배하고 낙타는 모두 만부교 아래에서 굶겨 죽였다.

제2차
갑오개혁
  • 배경

일본이 청⋅일 전쟁에서 유리해지자 조선의 내정에 적극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일본에서 망명 중이던 박영효를 불러들였다.

1894년 김홍집·박영효 연립 내각을 구성하여 군국기무처를 폐지하고 제2차 갑오개혁을 추진하였다.

  • 제2차 김홍집 내각

고종은 종묘에 나가 독립 서고문을 바치고, 개혁의 방향을 제시한 홍범 14조를 반포하였다. 이는 최초의 근대적 헌법의 성격을 지녔다.

홍범 14조

1. 청에 의존하는 생각을 버리고 자주 독립의 기초를 세운다.

2. 왕실 전범(典範)을 제정하여 왕위 계승의 법칙과 종친과 외척과의 구별을 명확히 한다.

3. 임금은 각 대신과 의논하여 정사를 행하고, 종실(宗室), 외척의 내정 간섭을 용납하지 않는다.

4. 왕실 사무와 국정 사무를 나누어 서로 혼동하지 않는다.

5. 의정부(議政府) 및 각 아문(衙門)의 직무, 권한을 명백히 규정한다.

6. 납세는 법으로 정하고 함부로 세금을 징수하지 아니한다.

7. 조세의 징수와 경비 지출은 모두 탁지아문(度支衙門)의 관할에 속한다.

8. 왕실의 경비는 솔선하여 절약하고, 이로써 각 아문과 지방관의 모범이 되게 한다.

9. 왕실과 관부(官府)의 1년 회계를 예정하여 재정의 기초를 확립한다.

10. 지방 제도를 개정하여 지방 관리의 직권을 제한한다.

11. 총명한 젊은이들을 파견하여 외국의 학술, 기예를 견습시킨다.

12. 장교를 교육하고 징병을 실시하여 군제의 근본을 확립한다.

13. 민법, 형법을 제정하여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전한다.

14. 문벌을 가리지 않고 인재 등용의 길을 넓힌다.

 

  • 주요 개혁 내용
    • 정치
      • 내각제 도입
      • 8아문을 7부로 고쳐 내각을 편성
      • 지방 행정을 8도를 23부로 개편
      • 재판소 설치
      • 지방관 권한 축소(사법권과 군사권을 배제, 행정권만 행사)
    • 사회
      • 교육 입국 조서 반포
    • 군사
      • 훈련대와 시위대 창설

 

  • 중단

당시 일본이 삼국 간섭에 의해 세력이 약화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조선의 내각 대신들, 특히 내무 대신 박영효의 주도하에 단행되었다.

그러나 민비 폐위 음모 사건에 연루된 박영효가 민씨 일파에 의해 실각됨에 따라 개혁은 중단되었다.

삼국 간섭

한반도와 만주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러시아가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여 일본이 청⋅일 전쟁에서 승리하여 얻은 랴오둥 반도를 포기하도록 만든 사건

조선 성종
  • 경국대전 편찬
  • 관수관급제 실시 – 직전법의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지방 관청에서 그 해의 생산량을 조사하여 거두고, 관리에게 나누어 주는 방식으로 바뀜
  • 홍문관 설치 – 집현전 계승
  •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국조오례의, 악학궤범 간행
  • 금양잡록 – 금양(시흥) 지방을 중심으로 한 경기 지방의 농사법을 정리하여 금양잡록을 편찬
  • 팔도지리지 – 양성지가 지리지인 팔도지리지를 편찬
  • 동문선 – 서거정, 노사신 등이 우리나라의 역대 시문(詩文)을 모아 편찬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 정치
  • 조선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아들
  • 탕평 정치 시행
  • 초계문신제 실시 – 신진 인물이나 중⋅하급 관리 중에서 유능한 인사를 재교육
  • 규장각 설치 – 규장각은 학문과 정책을 연구하는 기구. 서얼 출신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을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
  • 장용영 설치 –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하여 왕권을 뒷받침. 한양과 수원에 설치
  • 수원 화성 건설
  • 신해통공 실시 – 금난전권을 폐지하여 도성 안에서 시전 상인이 아닌 난전의 상업 활동 허락
  • ‘대전통편’, ‘동문휘고’, ‘탁지지’, ‘규장전운’, ‘무예도보통지’ 등 수많은 책 편찬
  • 중국에서 <고금도서집성> 수입
신라
진흥왕
  • 활발한 정복 활동을 전개하면서 삼국 간의 항쟁을 주도
  • 화랑도를 국가적인 조직으로 개편
  • 한강 유역 장악 후, 함경도 지역으로까지 진출
  • 545년 거칠부가 역사서 <국사>를 편찬
  • 550년 이사부에 명하여 도살성과 금현성 점령
  • 새로 차지한 영토를 기념하기 위해 단양 적성비와 4개의 진흥왕 순수비(북한산비, 마운령비, 황초령비, 창녕비)를 세움
  • 562년 고령의 대가야를 정복하여 낙동강 서쪽을 장악
  • 황룡사 건립
  • 자신을 황제에 비겨 ‘태왕’ 또는 ‘짐’이라 하였으며, ‘개국·태창·홍제’ 등의 연호를 사용하여 자주 의식을 나타냄
  • 553년 신라가 한강 하류를 차지하여 신주를 설치하였다.

신라 진흥왕 북한산 순수비

창녕 진흥왕 순수비(또는 척경비)

진흥왕 순수비 마운령비

단양 적성비

 

기출 문제 키워드

 

2026학년도(2025)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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