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번 문제
15. 밑줄 친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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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13도 창의군을 이끄는 의병장
② 임술 농민 봉기에 가담하는 농민
③ 황국 신민 서사를 암송하는 학생
④ 4.13 호헌 조치에 분개하는 시민
⑤ 전태일 분신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였다.
일제는 침략 전쟁을 확대하면서 한국인의 정신을 말살하고 일본 국왕에 대한 숭배 사상을 주입하는 민족 말살 통치를 실시하였다. 이는 한국인을 침략 전쟁에 효율적으로 동원하려는 의도였다.
일제는 성과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고쳐 쓰도록 하고(창씨개명 1940년), 황국 신민 서사 암송(1937년), 궁성 요배, 신사 참배 등을 강요하였다.
일제 무단 통치: 1910년 ~ 1919년
일제 문화 통치: 1919년 ~ 1937년
일제 민족 말살 통치: 1937년 ~ 1945년
① 13도 창의군을 이끄는 의병장
정미의병 이후, 1908년 각지에서 의병 부대가 일본군과의 전투를 계속하는 과정에서 서울에서 일본군을 몰아 내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나, 의병장 이인영을 총대장으로 하는 13도 창의군이 편성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임술 농민 봉기에 가담하는 농민
1862년 조선 철종 때 진주에서 삼정의 문란과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수탈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몰락한 양반 출신인 유계춘 등을 중심으로 봉기를 일으켰다. 이를 임술 농민 봉기라고 한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황국 신민 서사를 암송하는 학생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4.13 호헌 조치에 분개하는 시민
전두환 정부 시기인 1986년 야당은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1천만인 서명 운동을 벌여 정부를 압박하였다.
1987년 1월 대학생 박종철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러한 가운데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은 시민들의 개헌 요구를 무시하고 기존 헌법에 따라 간선제로 다음 대통령을 뽑겠다고 발표하였다(4·13 호헌 조치).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전태일 분신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
1970년 11월에 서울 청계천 평화 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자기 몸을 불살라 암울한 노동 현실을 사회에 고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1920년대 후반에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경제 공황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일제는 일본 본토와 식민지를 하나로 묶는 경제 블록을 형성하였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노동력과 자원은 일제에게 보다 철저히 수탈당하였다. 그 후 일제는 1931년 만주를 점령하고(만주사변), 더 나아가 1937년 중⋅일 전쟁을 도발하여 본격적인 대륙 침략을 강행하면서 한국을 대륙 침략의 병참 기지로 삼았다. 그리고는 식민 정책을 강화하여 우리 민족을 더욱 탄압하였고, 모든 방면에 걸쳐 식민지 수탈 정책을 강화하였다. 일제는 침략 전쟁을 확대하면서 한국인의 정신을 말살하고 일본 국왕에 대한 숭배 사상을 주입하는 민족 말살 통치를 실시하였다. 이는 한국인을 침략 전쟁에 효율적으로 동원하려는 의도였다.
일제는 만주 점령 이후 만주를 농업 원료 지대로, 한국을 중화학 공업 지대로 설정하고 조선 공업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일제는 일본에 필요한 공업 제품의 원료를 생산하기 위해 면화의 재배와 면양의 사육을 시도하는, 이른바 남면 북양 정책을 수립하였다.
일제는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여 본격적으로 인력과 물자의 수탈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일제는 강제 징용으로 한국인 노동력을 착취하였고, 학도 지원병 제도, 징병 제도 등을 실시하여 수많은 우리 젊은이를 전쟁에 동원하였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 정신을 뿌리뽑기 위해 이른바 일⋅선 동조론을 주장하였고, 내선 일체의 구호를 내세워 우리 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성과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고쳐 쓰도록 하고(창씨개명 1940년), 황국 신민 서사 암송(1937년), 궁성 요배, 신사 참배 등을 강요하였다. 그리고 1941년 소학교의 명칭을 ‘황국 신민 학교’라는 뜻의 국민학교로 바꾸었다.
일제는 제3차 조선 교육령을 공포하여 조선어 교육을 사실상 폐지(선택 과목)하여, 일본어만 사용하도록 하였다.
일제는 조선어 과목을 완전히 폐지했다.
1940년에는 한글을 사용하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신문을 폐간하였다.
1930년대부터 일제는 직접적으로 저항하는 행동은 물론이고 사상까지 통제하고 감시하였다. 일제의 민족 말살 통치 시기, 중일전쟁 후 일제는 한국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침략 전쟁에서 한국인의 협력을 강요하기 위해 국민정신 총동원 운동 조선 연맹을 조직하였다. 연맹의 가장 하부에는 애국반을 조직하였고, 반상회를 통해 일본어 사용, 전쟁을 위한 애국 저금 등의 정책을 홍보하였다. 1940년 초 일제가 강점기 막바지에 여성의 노동력을 얻기 위해 몸뻬를 고안해 냈다. 1936년 제정된 <조선 사상범 보호 관찰령>은 <치안 유지법> 위반자 중 집행 유예, 형 집행 종료 또는 가출옥한 사람을 대상으로 2년간 보호 관찰을 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었다. 1941년 제정된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은 이에 더 나아가서 <치안 유지법>을 위반하여 형에 처해진 경력이 있는 자를 그 집행을 마치고 석방된 이후에도 필요한 경우 검경이 법원의 영장 없이도 자의적으로 계속하여 구금하거나 일정하게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반인권적 조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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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 의병 운동 |
명성 황후 시해로 분노한 국민들의 반일 감정이 단발령을 계기로 폭발하여 을미의병이 일어나게 되었다. 유인석, 이소응, 허위 등 위정척사 사상을 가진 유생이 주도하였다. 이소응 부대는 춘천을 중심으로 활동하였고, 유인석 부대는 제천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여 한때 충주성을 점령하였다. 아관 파천 이후 고종이 단발령을 취소하고 의병의 해산을 권유하자, 의병들은 대부분 활동을 중단하였다.
을미의병의 활동 후, 1900년을 즈음하여 해산된 농민들의 일부가 활빈당을 조직하여 반봉건⋅반침략 운동을 계속 전개하였다. 활빈당은 양반·부호, 관청, 장시 등을 습격하여 무기와 재물을 약탈하고, 그 중에서 일부를 빈민에게 분배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동학 농민군의 잔여 세력과 행상, 유민, 노동자, 걸인 등으로 조직되었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대규모의 의병 부대가 여러 곳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하였다. 민종식, 최익현 등 양반 출신 의병장을 비롯하여, 평민 출신 의병장인 신돌석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최익현은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의병장으로 국내외에서 항일전을 전개하고 있던 안중근은, 우리나라 침략에 앞장섰던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대표와 회담하기 위하여 하얼빈에 도착했을 때, 그를 사살하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분명히 보여 주었다(1909년). 안중근은 뤼순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저술하였다. 또한 뤼순 감옥에서 사형을 당했다.
이재명은 명동 성당 앞에서 을사 5적 중 한 명인 이완용을 칼로 찔러 부상을 입혔다.
고종 황제를 호위하는 임무를 맡고 있던 민영환은 동포에게 전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장지연은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제목으로 논설을 실어 일본의 침략을 비난하였으며, 조약 체결에 앞장선 친일 대신들을 격렬하게 비판하였다.
나철, 오기호 등은 5적 암살단을 조직하여 을사 5적의 집을 불사르고 일진회를 습격하는 등 매국노를 처단하고자 하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1908년 전명운, 장인환이 일본의 한국 침략이 정당하다고 주장한 미국인 외교 고문 스티븐스를 저격하였다.
고종 황제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을 계기로, 의병 운동은 그 규모와 성격면에서 의병 전쟁으로 발전되어 갔다. 이 때의 의병을 정미의병이라고 한다. 대한제국 군대의 해산이 결정되자 시위대 제1대대장 박승환이 자결하였고, 해산된 군인들이 일본군과 서울 시가전을 전개하면서 대일 항전을 개시하였다. 그 뒤 각 지방의 해산 군인들도 잇달아 봉기하였다.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 부대에 합류하면서 의병 부대는 보다 조직적인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고, 근대적인 무기를 갖추어 전투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정미의병 이후, 각지에서 의병 부대가 일본군과의 전투를 계속하는 과정에서 서울에서 일본군을 몰아 내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나, 의병장 이인영을 총대장으로 하는 13도 창의군을 편성하였다. 이 때, 의병은 서울 주재 각국 영사관에 의병을 국제법상의 교전 단체로 승인해 줄 것을 요구하는 서신을 발송하여, 스스로 독립군임을 내세웠다. 그 중 300명의 선발대는 서울 진공 작전을 펼쳤으나, 일본군의 선제 공격을 받아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처럼 활발하게 전개되던 의병 투쟁은 그 후 일본군의 남한 대토벌 작전을 계기로 크게 위축되었다. 일부 의병 부대는 국권을 빼앗긴 후에 만주나 연해주로 이동하여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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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술 농민 봉기 | 홍경래의 난은 실패로 끝났으나 그 영향은 의외로 커서, 이후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농민 봉기가 잇달아 일어났다.
1862년 철종 때 진주에서 삼정의 문란과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수탈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몰락한 양반 출신인 유계춘 등을 중심으로 봉기를 일으켰다. 이를 임술 농민 봉기라고 한다.
임술 농민 봉기는 진주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는데, 농민들은 탐관오리와 토호의 탐학에 저항하여 한때 진주성을 점령하기도 하였다. 대규모의 농민 봉기에 당황한 세도 정권은 암행어사를 파견하여 관리들의 비리를 조사하였으며, 안핵사 박규수를 파견하여 주동자를 처벌하도록 하였다.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기 위한 기구로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여 개혁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정책은 삼정 문란의 원인을 운영상의 문제로만 파악하여 농민 봉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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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야당은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1천만인 서명 운동을 벌여 정부를 압박하였다.
1987년 1월 대학생 박종철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러한 가운데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은 시민들의 개헌 요구를 무시하고 기존 헌법에 따라 간선제로 다음 대통령을 뽑겠다고 발표하였다.
6월 9일, 대학생 이한열이 호헌 철폐 요구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6월 10일, 민주 헌법 쟁취 국민운동 본부의 주도로 ‘박종철 고문 살인 조작·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 대회’가 열렸다. 6월 26일에는 100만여 명이 시위에 참여하여, ‘직선제 쟁취’,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쳤다.
전두환 정부는 국민의 민주화 요구에 굴복하여 여당 대통령 후보인 노태우를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 기본권 보장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하였다.
대통령 직선제, 대통령 임기 5년 단임, 헌법 재판소 설치 등 오늘날 헌법의 내용이 담긴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1987년 12월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 분열로 여당 후보였던 노태우가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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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1960년 사이 평균 출산율은 6.3명에 달한 반면, 사망률은 점차 낮아져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960년대에 들어와 정부는 가족 계획 사업을 시작하여 출산율을 낮추려 노력하였다. 여기에 여성의 혼인 연령 상승, 자녀 교육비 증가, 자식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피임 확산 등으로 출산율은 점점 낮아졌다.
1960년대에 들어와 경제 개발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우리 나라는 전통적인 농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빠르게 바뀌어 갔다.
정부는 주택 문제를 해결하려 대규모 도시 정비 사업을 진행하였다. 빈민들은 강제로 다른 지역으로 쫓겨났으며, 빈민촌이 있던 곳에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와우아파트 붕괴 참사, 광주 대단지 사건 등이 일어났다.
개발 제한 구역은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 방지와 자연환경의 보전을 위하여 도시개발을 제한하도록 지정한 구역을 말한다. 박정희 정부 시기인 1971년에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가 지정되었다.
1970년대 중반에 다수확 품종의 개발로 쌀의 자급자족이 가능해졌고, 농민은 원예, 축산 등 영농의 다각화를 시작하였다.
중화학 공업의 육성과 함께 정부는 농촌의 근대화와 생활 향상을 위해 새마을 운동을 추진하였다. 근면, 자조, 협동을 기본 정신으로 한 새마을 운동을 계기로 농⋅어민들의 환경 개선과 소득 증대 사업이 이루어져, 농⋅어촌의 생활 수준과 소득도 점차 높아져 갔다.
1976~1978년 함평 고구마 피해 보상 운동이 전개되었다.
1951년~1952년 부산 조선 방직에서 경영진의 노조 탄압과 집단 해고에 맞서 총파업이 발생했다.
1970년 11월에 서울 청계천 평화 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자기 몸을 불살라 암울한 노동 현실을 사회에 고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학생, 지식인, 종교계 등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후 평화 시장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청계 피복 노동 조합이 결성되었다.
박정희 정부는 노동자의 노동 3권을 크게 제한하고 노동 운동을 탄압하였다. 1979년 YH 무역 노동자들이 부당한 공장 폐쇄에 맞서 야당인 신민당 당사에서 시위를 벌였다. 박정희 정부는 이를 강제로 진압하였고, 이에 항의하던 신민당 총재 김영삼을 국회의원에서 제명하였다. YH 무역 여성 노동자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가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1987년 최저 임금을 결정하는 최저 임금 위원회가 설치되었다.
1991년 정부는 국제 노동 기구(ILO)에 가입하여 국제 수준의 노동 규칙을 따르고자 하였다.
19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창립되었다.
1997년 외환 위기로 국제 통화 기금(IMF)의 관리를 받게 되면서 노동자의 대량 실직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에, 김대중 정부는 노사정 위원회를 구성하여 구조 조정에 따른 실업이나 노사 문제 등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광복 이후 미국식 교육 제도의 영향으로 6⋅3⋅3 학제가 도입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박정희 정부는 국민 교육 헌장을 제정하여 학생들에게 암송하도록 강요하였다.
1969년 정부는 중학교 무시험 진학 제도를 시행하였다.
1974년 정부는 고교 평준화 제도를 시행하였다.
1981년 정부는 과외 전면 금지를 시행하여 높은 교육열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고자 하였다.
이승만 정부는 언론 탄압을 강화하면서 정부에 비판적인 경향신문을 폐간하였다.
박정희 정부는 언론계에 자유 언론 실천 운동이 확산되자 유신 체제는 광고주에게 압력을 가하여 <동아일보>에 광고를 싣지 못하도록 하는 광고 탄압을 자행하였다.
전두환 정부의 문화공보부는 언론사 기사 통제를 위해 보도지침을 작성하여 각 언론사에 배포했다.
1970년대 퇴폐풍조 추방 운동의 일환으로 장발, 미니스커트 단속을 했다. 1970년대 초반 대학생 층을 중심으로 서구의 라이프 스타일과 대중문화를 추종하는 청년 문화가 유행하였다.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 1956년 첫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었다. 1981년 1월 1일부터 우리나라에서 컬러 텔레비전 방송 시대가 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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