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T 기출] 2020 5급 언어논리 나책형 21번 해설 – 가도 봉도 행차 피맛골 종로 피마

개요

다음은 2020년 국가공무원 5급 언어논리영역 나책형 21번 문제 해설이다.

문제

문 21. 다음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조선 시대에는 지체 높은 관리의 행차 때 하인들이 그 앞에 서서 꾸짖는 소리를 크게 내어 행차에 방해되는 사람을 물리쳤다. 이런 행위를 ‘가도’라 한다. 국왕의 행차 때 하는 가도는 특별히 ‘봉도’라고 불렀다. 가도는 잡인들의 통행을 막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에 ‘벽제’라고도 했으며, 이때 하는 행위를 ‘벽제를 잡는다.’라고 했다. 가도를 할 때는 대체로 ‘물렀거라’, ‘에라, 게 들어 섰거라’고 외쳤고, 왕이 행차할 때는 ‘시위~’라고 소리치는 것이 정해진 법도였다. <경도잡지>라는 문헌을 보면, 정1품관인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행차 때 내는 벽제 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고, 그 행차 속도도 여유가 있었다고 한다. 행차를 느리게 하는 방식으로 그 벼슬아치의 위엄을 차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삼정승 아래 벼슬인 병조판서의 행차 때 내는 벽제 소리는 날래고 강렬했다고 한다. 병조판서의 행차답게 소리를 크게 냈다는 것이다.

애초에 가도는 벼슬아치가 행차하는 길 앞에 있는 위험한 것을 미리 치우기 위한 행위였다. 그런데 나중에는 행차 앞에 방해되는 자가 없어도 위엄을 과시하는 관례로 굳어졌다. 가도 소리를 들으면 지나가는 사람은 멀리서도 냉큼 꿇어앉아야 했다. 그 소리를 듣고도 모른 척하면 엄벌을 면치 못했다. 벼슬아치를 경호하는 관원들은 행차가 지나갈 때까지 이런 자들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가둬 두었다가 행차가 지나간 뒤 몽둥이로 마구 때렸다. 그러니 서민들로서는 벼슬아치들의 행차를 피해 다른 길로 통행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서울 종로의 피맛골은 바로 조선 시대 서민들이 종로를 오가는 벼슬아치들의 행차를 피해 오가던 뒷골목이었다. 피맛골은 서울의 숱한 서민들이 종로 근방에 일이 있을 때마다 오가던 길이었고, 그 좌우에는 허름한 술집과 밥집도 많았다. 피마란 원래 벼슬아치들이 길을 가다가 자기보다 높은 관리를 만날 때, 말에서 내려 길옆으로 피해 경의를 표하는 행위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신분이 낮은 서민들은 벼슬아치들의 행차와 그 가도를 피하기 위해 뒷골목으로 다니는 행위를 ‘피마’라고 불렀다. 피맛골은 서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일종의 해방구였던 셈이다.

① 삼정승 행차보다 병조판서 행차 때의 벽제 소리가 더 컸다.

② 봉도란 국왕이 행차한다는 소리를 듣고 꿇어앉는 행위를 뜻한다.

③ 벼슬아치가 행차할 때 잡인들의 통행을 막으면서 서민들에 대한 감시가 증가했다.

④ 조선 시대에 신분이 낮은 서민들은 피마라는 용어를 말에서 내려 길을 피한다는 의미로 바꿔 썼다.

⑤ 가도는 주로 서울을 중심으로 행해졌기 때문에 벼슬아치들의 행차를 피하기 위해 형성된 장소도 서울에만 있다.

 

출처: 사이버국가고시센터

문제 해설

① 삼정승 행차보다 병조판서 행차 때의 벽제 소리가 더 컸다.

그런데 삼정승 아래 벼슬인 병조판서의 행차 때 내는 벽제 소리는 날래고 강렬했다고 한다. 병조판서의 행차답게 소리를 크게 냈다는 것이다.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봉도란 국왕이 행차한다는 소리를 듣고 꿇어앉는 행위를 뜻한다.

조선 시대에는 지체 높은 관리의 행차 때 하인들이 그 앞에 서서 꾸짖는 소리를 크게 내어 행차에 방해되는 사람을 물리쳤다. 이런 행위를 ‘가도’라 한다. 국왕의 행차 때 하는 가도는 특별히 ‘봉도’라고 불렀다.

가도 소리를 들으면 지나가는 사람은 멀리서도 냉큼 꿇어앉아야 했다.

봉도란 국왕의 행차 때 행차에 방해되는 사람을 물리치는 행위를 말한다.

봉도나 가도 소리를 들으면 지나가는 사람은 멀리서도 냉큼 꿇어앉아야 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벼슬아치가 행차할 때 잡인들의 통행을 막으면서 서민들에 대한 감시가 증가했다.

가도는 잡인들의 통행을 막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에 ‘벽제’라고도 했으며, 이때 하는 행위를 ‘벽제를 잡는다.’라고 했다. 가도를 할 때는 대체로 ‘물렀거라’, ‘에라, 게 들어 섰거라’고 외쳤고, 왕이 행차할 때는 ‘시위~’라고 소리치는 것이 정해진 법도였다.

서민들에 대한 감시가 증가했다는 내용은 언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조선 시대에 신분이 낮은 서민들은 피마라는 용어를 말에서 내려 길을 피한다는 의미로 바꿔 썼다.

피마란 원래 벼슬아치들이 길을 가다가 자기보다 높은 관리를 만날 때, 말에서 내려 길옆으로 피해 경의를 표하는 행위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신분이 낮은 서민들은 벼슬아치들의 행차와 그 가도를 피하기 위해 뒷골목으로 다니는 행위를 ‘피마’라고 불렀다.

피마란 원래 벼슬아치들이 길을 가다가 자기보다 높은 관리를 만날 때, 말에서 내려 길옆으로 피해 경의를 표하는 행위를 뜻하다가 신분이 낮은 서민들은 벼슬아치들의 행차와 그 가도를 피하기 위해 뒷골목으로 다니는 행위로 의미가 바뀌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가도는 주로 서울을 중심으로 행해졌기 때문에 벼슬아치들의 행차를 피하기 위해 형성된 장소도 서울에만 있다.

서울 종로의 피맛골은 바로 조선 시대 서민들이 종로를 오가는 벼슬아치들의 행차를 피해 오가던 뒷골목이었다. 피맛골은 서울의 숱한 서민들이 종로 근방에 일이 있을 때마다 오가던 길이었고, 그 좌우에는 허름한 술집과 밥집도 많았다.

가도는 주로 서울을 중심으로 행해졌다는 내용은 언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2020 5급 PSAT 언어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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