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학년도 수능 한국사 13번 해설 – 국채 보상 운동

13번 문제

13. (가)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① 치안 유지법에 의해 탄압받았다.

② 조선 형평사의 주도로 전개되었다.

③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의 지원을 받았다.

④ 평양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⑤ 이만손 등이 영남 만인소를 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일제는 통감부를 설치하면서 그들의 식민지 시설을 갖추기 위하여 시설 개선 등의 명목을 내세워 우리 정부로 하여금 일본으로부터 거액의 차관을 들여 오게 하였는데, 1907년까지 들여 온 차관 총액은 대한 제국의 1년 예산과 맞먹는 1300만 원에 달하였다.

일제의 차관 제공에 의한 경제적 예속화 정책에 저항하여 국채 보상 운동이 일어났다.

1907년 서상돈, 김광제의 제안으로 대구에서 국채 보상 운동이 시작되었다.

 

① 치안 유지법에 의해 탄압받았다.

1925년 일제는 치안 유지법을 제정하여 항일 민족 운동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더욱 강화하여 많은 한국인을 구속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조선 형평사의 주도로 전개되었다.

1923년 백정 출신들은 경상 남도 진주에서 조선 형평사를 창립하고,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형평 운동을 펼쳐 나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의 지원을 받았다.

국채 보상 운동 당시 대한 매일 신보 등의 언론 기관이 모금 운동에 앞장섰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평양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1920년 조만식, 이상재 등이 평양에서 조선 물산 장려회를 조직하여 물산 장려 운동을 시작하였고, 1923년 관세령 폐지 이후 서울에서도 조선 물산 장려회가 만들어지는 등 물산 장려 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이만손 등이 영남 만인소를 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1880년대 들어 개화 정책이 실시되고 <조선책략>이 퍼지자, 이만손을 중심으로 한 영남 유생들은 만인소를 올려 정부의 개화 정책 및 미국과의 수교에 반대하였다. 이러한 개화 반대 운동은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19학년도(2018)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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