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학년도 9월 모의평가 한국사 17번 해설 – 3.1 운동, 미쓰야 협정

17번 문제

17. (가), (나) 시기 사이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가)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가 배포되었다. 학생과 시민들은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며, 서울 도심 곳곳에서 행진하였다.

(나) 1925년 6월, 조선 총독부 경무국장 미쓰야와 만주 군벌 세력은 만주에서 활동하는 조선인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는 협정을 체결하였다.

① 을미사변이 일어났다.

② 신미양요가 발생하였다.

③ 황룡사 9층 목탑이 건립되었다.

④ 청산리 전투에서 독립군이 승리하였다.

⑤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가) 1919년에 발생한 3.1 운동에 대한 내용이다.

(나) 1925년에 체결된 미쓰야 협정에 대한 내용이다.

 

① 을미사변이 일어났다.

1895년 청일 전쟁이 끝난 후 삼국 간섭 등으로 박영효가 실각한 뒤, 친러 성향의 제3차 김홍집 내각이 성립되었다.

이 때, 명성 황후는 친러파와 연결하여 일본의 침략 세력을 제거하려 하였고, 이에 일본은 낭인을 동원하여 명성 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1895년)을 일으켰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신미양요가 발생하였다.

1871년 미국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군함과 병력을 동원하여 강화도를 공격하였다(신미양요).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황룡사 9층 목탑이 건립되었다.

신라 선덕 여왕 때 황룡사 9층 목탑이 건립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청산리 전투에서 독립군이 승리하였다.

1920년 10월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 군정서와 홍범도의 대한 독립군을 중심으로 한 독립군 연합 부대는 청산리 일대 백운평, 완루구, 어랑촌, 고동하 등지에서 6일 동안 10여 차례의 전투 끝에 일본군을 격파하였다. 이것이 청산리 전투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1964년 한·일 국교 회담에서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 정당한 배상 등에 대한 요구보다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였다는 내용이 알려지자, 국민들은 대일 굴욕 외교로 평가하고 범국민적인 정권 퇴진 운동을 전개하였다(6·3 시위).

정부는 휴교령과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시위를 진압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1학년도(2020) 9월 모의평가 한국사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