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학년도 9월 모의평가 한국사 19번 해설 – 4.19 혁명

19번 문제

19.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① 조선 형평사가 주도하였다.

② 3.15 부정 선거가 원인이었다.

③ 민립 대학 설립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④ 전태일 분신 사건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⑤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가 주도하였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① 조선 형평사가 주도하였다.

1923년 백정 출신들은 경상 남도 진주에서 조선 형평사를 창립하고,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형평 운동을 펼쳐 나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3.15 부정 선거가 원인이었다.

1960년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은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 과정에서 대대적인 부정을 저질렀다(3·15 부정 선거).

시민들은 부정 선거에 맞서 강력하게 저항하였다. 선거 당일에 마산, 광주, 서울 등에서 부정 선거 규탄 시위를 열었다.

1960년 4월 11일,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최루탄을 맞고 사망한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었고, 이를 계기로 시위는 격화되었다.

1960년 4월 19일, 서울에서 학생과 시민 수만 명이 시위에 나섰다. 시위대가 부정 선거와 독재 정치를 규탄하며 경무대(현 청와대)로 향하자, 경찰이 시위대에 발포하여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4·19 혁명).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민립 대학 설립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교육에 대한 한국인들의 요구가 높아졌고, 제2차 조선 교육령에 따라 대학 설립이 가능해지자 실력 양성 운동 차원에서 한국인의 힘으로 고등 교육 기관을 설립하자는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이 일어났다.

이상재 등이 중심이 된 조선 교육회의 제안으로 서울에서 조선 민립 대학 기성 준비회가 만들어졌다(1922년 11월).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전태일 분신 사건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1970년 11월에 서울 청계천 평화 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자기 몸을 불살라 암울한 노동 현실을 사회에 고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가 주도하였다.

1948년 9월, 제헌 국회에서는 민족적 과제인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 정기를 바로잡기 위해 반민족 행위 처벌법을 제정하였다.

또한 이 법을 근거로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반민특위)와 특별 재판부가 조직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1학년도(2020) 9월 모의평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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