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15. 다음 자료에 나타난 시기의 사회 모습으로 적절한 것은? [2점]
![]() |
① 서얼이 통청 운동을 전개하였다.
② 사창절목에 따라 사창제가 시행되었다.
③ 왕조 교체를 예언하는 정감록이 유포되었다.
④ 병자에게 약을 지급하는 혜민국이 설치되었다.
⑤ 국산 약재와 치료 방법을 정리한 향약집성방이 간행되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고려 예종 때에는 국자감을 재정비하여 7재라는 전문 강좌를 설치하고, 양현고라는 장학 재단을 두어 관학의 경제 기반을 강화하였다.
① 서얼이 통청 운동을 전개하였다.
조선 영⋅정조 때에 서얼을 어느 정도 등용되자, 이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신분 상승을 시도하였다. 그들은 수 차례에 걸쳐 집단으로 상소하여 관직 진출의 제한을 없애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정조 때에는 유득공, 이덕무, 박제가 등 서얼 출신이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되어 제각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사창절목에 따라 사창제가 시행되었다.
조선 후기 흥선 대원군의 집권 시기 환곡을 개혁하기 위해 사창제를 실시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왕조 교체를 예언하는 정감록이 유포되었다.
조선 후기 사회가 변화하면서 유교적 명분론이 설득력을 잃어가자, 비기, 도참 등을 이용한 예언 사상이 유행하였다. 말세의 도래, 왕조의 교체, 변란의 예고 등 근거없는 낭설이 횡행하여 민심을 혼란시켰다.
정감록은 이 때에 널리 유행한 비기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병자에게 약을 지급하는 혜민국이 설치되었다.
고려 시대 혜민국을 두어 의약을 전담하게 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국산 약재와 치료 방법을 정리한 향약집성방이 간행되었다.
조선 세종 시기 우리 풍토에 알맞은 약재와 치료 방법을 개발, 정리하여 향약집성방을 편찬하고, 의방유취라는 의학 백과 사전을 간행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 고려 교육 기관 |
중앙에는 국립 대학인 국자감(국학)이 설치되었다. 국자감에는 국자학, 태학, 사문학과 같은 유학부와 율학, 서학, 산학 등의 기술학부가 있었다. 유학부에는 문무관 7품 이상 관리의 자제가 입학하고, 기술학부에는 8품 이하 관리나 서민의 자제가 입학하였다.
지방에는 향교가 설치되어 지방 관리와 서민 자제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최충의 문헌공도를 비롯한 사학 12도가 융성하였다.
문종 때 최충이 세운 9재 학당으로, 12도 중에서 가장 번성하여 명성이 높았다. 최충이 사망한 후 그의 시호인 문헌을 이름으로 붙였다.
사학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이 과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국자감의 관학 교육은 위축되었다. 이에 정부는 관학 진흥을 위한 여러 시책을 추진하였다.
숙종 때 국자감을 강화하고자 서적포를 두어 도서 출판을 활발히 하였다.
예종 때에는 국자감을 재정비하여 7재라는 전문 강좌를 설치하고, 양현고라는 장학 재단을 두어 관학의 경제 기반을 강화하였다. 또, 청연각과 보문각이란 학문 연구소를 두어 유학의 발달을 촉진하기도 하였다.
충선왕 때에 국학을 성균관으로 개칭하고, 공자 사당인 문묘를 새로 건립하여 유교 교육의 진흥에 나섰다.
공민왕은 성균관을 순수한 유교 교육 기관으로 개편하고 유교 교육을 강화하였다. |
|
| 조선 후기 중간 계층의 신분 상승 운동 |
조선 후기에 이르러 사회 변동이 심화되는 가운데 서얼과 중인 등 중간 계층의 역할도 커졌다.
서얼에 대한 차별은 임진왜란 이후 완화되기 시작하였다. 전란으로 재정적 타격을 받은 정부가 납속책을 실시하고 공명첩을 발급하자, 서얼은 이를 이용하여 관직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영⋅정조 때에 서얼을 어느 정도 등용되자, 이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신분 상승을 시도하였다. 그들은 수 차례에 걸쳐 집단으로 상소하여 관직 진출의 제한을 없애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정조 때에는 유득공, 이덕무, 박제가 등 서얼 출신이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되어 제각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기술직 중인들은 주로 기술직에 종사하며 축적한 재산과 탄탄한 실무 경력을 바탕으로 신분 상승을 추구하였다. 이들은 대규모 소청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중인 중에서도 역관들은 청과의 외교 업무에 종사하면서 서학을 비롯한 외래 문화 수용에 있어서 선구적 역할을 수행하여, 성리학적 가치 체계에 도전하는 새로운 사회의 수립을 추구하였다. |
|
| 흥선 대원군의 개혁 정치 |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안동 김씨를 비롯한 세도 가문의 중심 인물들을 몰아내고 당파와 관계없이 인재를 고루 등용하였다.
세도 정권의 핵심 권력 기구로 왕권을 제약하였던 비변사를 축소하여 사실상 폐지하였다.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을 부활하여 행정권과 군사권을 나누어 맡도록 함으로써 권력 독점을 견제하였다.
<대전회통>, <육전조례> 등 법전을 편찬하여 통치 체제를 재정비하였다.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을 중건하였다.
경복궁 중건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원납전이라는 기부금을 강제로 거두었다.
고액 화폐인 당백전을 발행하였다. 당백전을 발행하면서 물가가 크게 오르기도 하였다. 무리한 경복궁의 중건은 양반과 백성의 불만을 샀다.
흥선 대원군은 전국의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철폐하였다. 이에 지방 유생들과 양반들은 강력히 반발하였다. 만동묘가 이때 철폐되었다.
군역 면제 대상인 양반을 포함하여 모든 가구에 군포를 동등하게 부과하게 하였다.
환곡을 개혁하기 위해 사창제를 실시하였다. |
|
| 조선 후기 사회 불안의 심화 |
탐관오리의 탐학과 횡포는 날로 심해 갔다. 또한 재난과 질병이 거듭되었다. 특히, 19세기에 들어와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져 농민의 생활은 그만큼 더 어려워져 갔다. 1820년의 전국적인 수해와 이듬해 콜레라의 만연으로 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는 비참한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피해는 그 뒤 수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이에 따라 굶주려 떠도는 백성이 거리를 메울 지경이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서양의 이양선까지 연해에 출몰하자, 민심은 극도로 흉흉해져 갔다.
사회 불안이 점점 더해 감에 따라 각처에서는 도적이 크게 일어났다. 화적은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지방의 토호나 부상을 공격하였고, 수적은 배를 타고 강이나 바다를 무대로 조운선이나 상선을 약탈하였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유교적 명분론이 설득력을 잃어가자, 비기, 도참 등을 이용한 예언 사상이 유행하였다. 말세의 도래, 왕조의 교체, 변란의 예고 등 근거없는 낭설이 횡행하여 민심을 혼란시켰다. 여기에 무격 신앙이나 미륵 신앙도 점차 확장되어 갔다. 현세에서 얻지 못하는 행복을 미륵 신앙에서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며, 심지어 살아 있는 미륵불을 자처하면서 서민을 현혹시켜 끌어모으는 무리도 나타났다.
왕조 교체를 예언한 정감록은 이 때에 널리 유행한 비기였다. |
|
| 고려 백성의 생활 모습 |
농민은 일상 의례와 공동 노동 등을 통하여 공동체 의식을 다졌다. 공동체 조직의 대표적인 것이 불교의 신앙 조직이었던 향도였다.
평시에 곡물을 비치하였다가 흉년에 빈민을 구제하는 의창이 있었다. 이는 고구려의 진대법과 유사한 것이었다.
개경과 서경 및 각 12목에는 상평창을 두었다. 풍년에는 곡물을 사들이고 흉년에는 곡물을 풀어 물가의 안정을 꾀하여 백성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가난한 백성이 의료 혜택을 받도록 개경에 동⋅서 대비원을 설치하여 환자 진료 및 빈민 구휼을 담당하게 하였다.
혜민국을 두어 의약을 전담하게 하였다.
각종 재해가 발생하였을 때, 구제도감이나 구급도감을 임시 기관으로 설치하여 백성의 구제에 힘썼다.
기금을 마련한 뒤 이자로 빈민을 구제하는 제위보를 설치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여자는 18세 전후, 남자는 20세 전후에 혼인을 하였다. 고려 초에 왕실에서는 친족 간의 혼인이 성행하였다. 중기 이후 여러 번의 금령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풍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혼인 형태는 일부일처제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부모의 유산은 자녀에게 골고루 분배되었으며, 태어난 차례대로 호적에 기재하여 남녀 차별을 하지 않았다. 아들이 없을 때에는 양자를 들이지 않고 딸이 제사를 지냈으며, 상복 제도에서도 친가와 외가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사위가 처가의 호적에 입적하여 처가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며, 사위와 외손자에게까지 음서의 혜택이 있었다. 공을 세운 사람의 부모는 물론, 장인과 장모도 함께 상을 받았다. 여성의 재가는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졌고, 그 소생 자식의 사회적 진출에도 차별을 두지 않았다. |
|
| 조선 세종 |
집현전 학사는 학문 연구와 아울러 경연에 참여하여 국왕의 통치를 자문하였다. 이 기능은 뒤에 홍문관으로 이어졌다.
6조에서 올라오는 모든 일을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중심이 되는 의정부에서 논의한 다음, 합의된 사항을 국왕에게 올려 결재를 받는 형식이다.
1419년 이종무는, 병선 227척, 병사 1만 7000명을 이끌고 쓰시마 섬을 토벌하여 왜구의 근절을 약속받고 돌아왔다.
세종 때 4군과 6진을 설치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오늘날과 같은 국경선을 확정하였다. 최윤덕이 4군을, 김종서가 6진을 개척했다.
3포 개항 이후 세종 25년(1443년)에 계해약조를 맺어 쓰시마 도주에게 세사미두 200석, 세견선 50척으로 허용해 주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1443년)하여 반포하였다(1446년).
세종 때 전국 지도로서 팔도도를 만들었고, 지리지의 편찬도 추진되어 신찬팔도지리지가 편찬되었다.
세종 때 모범이 될 만한 충신, 효자, 열녀 등의 행적을 그림으로 그리고 설명을 붙여 윤리서인 삼강행실도를 편찬하였다.
천체 관측기구로 혼천의(혼의)와 간의를 제작하고, 시간 측정 기구로 물시계인 자격루와 해시계인 앙부일구 등을 만들었다. 또한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만들어(1441년) 전국 각지의 강우량을 측정하였고, 토지 측량 기구인 인지의와 규형을 제작하여 토지 측량과 지도 제작에 활용하였다.
세종 때 만든 칠정산은 중국의 수시력과 아라비아의 회회력을 참고로 하여 만든 역법서로, 우리 나라 역사상 최초로 서울을 기준으로 천체 운동을 정확하게 계산했다.
세종 때 구리로 갑인자를 주조하였는데, 이는 글자 모습이 아름답고 인쇄에 편리하게 만들어졌다.
세종 때 화약 무기의 제작과 그 사용법을 정리한 총통등록을 편찬하였다.
세종 때 정초 등이 편찬한 농사직설은 우리나라에서 편찬된 최초의 농서로서 중국의 농업 기술을 수용하면서 우리의 실정에 맞는 독자적인 농법을 정리하였다.
우리 풍토에 알맞은 약재와 치료 방법을 개발, 정리하여 향약집성방을 편찬하고, 의방유취라는 의학 백과 사전을 간행하였다.
하급 서리나 일반 백성들이 경외의 상급 관리들에 대해 고소를 금지하는 부민고소금지법을 시행하였다. |
기출 문제 키워드
2025년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5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6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7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8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9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0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1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2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3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4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5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6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7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8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9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0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1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2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3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4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5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6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7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8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9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0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1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2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3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4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5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6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7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8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9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0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1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2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3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4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5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6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7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8번 기출 해설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9번 기출 해설 – 통일 노력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50번 기출 해설 – 관리 선발
-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50번 기출 해설
한국사 시험 모음
- 연표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3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3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2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1점 문제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고급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중급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초급
- 한국사 공무원 시험
- 한국사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연표
- 선사 ~ 고조선 역사 연표
- 삼국 시대 역사 연표
- 통일 신라 발해 남북국 시대 역사 연표
- 후삼국·고려 시대 역사 연표
- 조선 전기 역사 연표
- 조선 후기 역사 연표
- 근대 개항 및 국권 피탈 역사 연표
- 일제 강점기 역사 연표
- 현대사 연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