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0번 기출 해설

문제

40.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1점]

① 잡지 신여성, 여권 신장을 주장하다

② 조선 형평사, 사회적 차별 철폐를 외치다

③ 소설 상록수, 브나로드 운동을 널리 알리다

④ 경성 방직 주식회사, 광목 태극성을 광고하다

⑤ 새마을 운동, 근면·자조·협동을 기치로 내세우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① 잡지 신여성, 여권 신장을 주장하다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를 전후로 <신여성>, <삼천리>, <별건곤> 등의 잡지가 창간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조선 형평사, 사회적 차별 철폐를 외치다

일제 강점기에 백정 출신들은 경상 남도 진주에서 조선 형평사를 창립하고(1923년),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형평 운동을 펼쳐 나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소설 상록수, 브나로드 운동을 널리 알리다

심훈의 <상록수>는 일제 강점기 농촌 계몽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일제 강점기인 1931년 <동아일보>는 ‘배우자, 가르치자, 다 함께 브나로드’라는 구호 아래 학생이 참여하는 농촌 계몽 운동인 브나로드 운동을 벌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경성 방직 주식회사, 광목 태극성을 광고하다

일제 강점기인 1920년 회사령 철폐 이후 경성 방직 주식회사, 평양의 메리야스 공장 등 한국인의 기업 활동이 활발해졌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새마을 운동, 근면·자조·협동을 기치로 내세우다

박정희 정부는 중화학 공업의 육성과 함께 농촌의 근대화와 생활 향상을 위해 새마을 운동을 추진하였다.

근면, 자조, 협동을 기본 정신으로 한 새마을 운동을 계기로 농⋅어민들의 환경 개선과 소득 증대 사업이 이루어져, 농⋅어촌의 생활 수준과 소득도 점차 높아져 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⑤번이다.

 

일제 강점기
종교 문학 예술
  • 종교
    • 천도교

천도교의 지도자들은 3⋅1 운동을 주도한 후 제2의 독립 선언 운동을 계획하였다.

천도교에서는 개벽, 신여성, 어린이 등의 잡지를 발간하여 민족 계몽에 노력하였다.

    • 대종교

단군 신앙을 내세운 민족 종교인 대종교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국권이 침탈된 직후부터 만주로 이동하여 민족 교육 운동을 전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광단과 북로 군정서를 결성하여 항일 무장 투쟁을 벌였다.

    • 원불교

박중빈은 원불교를 창시하고, 개간 사업과 저축 운동을 전개하여 민족의 자립 정신을 키워 갔으며, 남녀 평등, 허례 허식의 폐지 등 새생활 운동을 전개하였다.

    • 개신교

개신교는 국권 피탈 이후 경제, 사회, 문화 각 방면에 걸쳐 민족 운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일제로부터 심한 탄압을 받았다.

일제 말기에는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운동을 벌여 그 지도자들의 일부가 체포, 투옥되기도 하였다.

    • 불교

불교에서는 일제가 한국 불교계를 장악하려는 목적으로 제정한 사찰령을 폐지하려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한용운은 불교 유신론을 주장하여 민족 불교로서의 전통을 이어 갔다.

    • 천주교

천주교는 민중 계몽 운동에 주력하였으며, 일부 신자는 만주에서 무장 항일 운동 단체인 의민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 문학
    • 1910년대

1910년대의 대표적인 작가는 최남선과 이광수이다.

이광수는 그의 소설 무정이 계몽기의 신문학을 총결산할 만한 작품이라 평가될 정도로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였다.

    • 1920년대

3⋅1 운동 이후, 문학계에는 그 이전까지의 계몽주의적 성격과는 다른 새로운 사조가 들어왔고, 이 때 일부 작가들은 동인지를 간행하였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동인지는 창조, 백조, 폐허였다.

그리고 이 즈음에 개벽, 조선지광 등의 잡지가 출간되어 작품 발표의 기회가 많아져 문학 활동이 왕성해졌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의 영향 아래 식민지 현실을 고발하고 계급 의식을 고취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신경향파 문학이 등장하였다.

이와 더불어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식민지 현실과 계급 모순을 적극적으로 비판한 카프(KAPF, 조선플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한용운은 님의 침묵을 통하여 우리 민족에게 자주 독립의 신념을 북돋워 주었다.

    • 1930년대

1930년대 이후 식민 통치에 대한 저항을 극렬히 드러내는 저항 문학이 등장하였다.

이육사의 <광야>, <절정>, 심훈의 <그날이 오면>,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서시>, <쉽게 쓰여진 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대표적이다.

심훈의 <상록수>는 농촌 계몽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 예술
    • 음악

음악계에서는 홍난파와 현제명 등의 작품이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잘 어울려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편, 국외에서 활동하던 안익태는 애국가 합창을 넣은 ‘한국 환상곡’을 작곡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표현하였다.

이애리수, 황성옛터 고려의 옛 궁터 만월대의 텅 빈 밤과 서정
윤심덕, 사의 찬미 비극적인 삶으로 빚어낸 염세와 허무
고복수, 타향살이 고향을 떠나 살게 된 이들의 짙은 향수
이난영, 목포의 눈물 항구를 배경으로 그리는 이별과 눈물의 정서

 

    • 미술

미술에서는 이중섭의 활동이 특히 두드러졌다.

    • 연극

3·1 운동 이후 토월회가 민중 계몽을 주장하며 신극 운동을 전개하였다.

    • 영화

영화계에서는 나운규가 강렬한 민족 의식을 반영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아리랑(1926)은 일제 강점기 민족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다.

 

  • 기타

우리 나라 최초의 비행사인 안창남은 1922년 12월에 여의도 상공에서 수만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국 방문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쳐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1927년 경성방송국이 개국을 하여 라디오 방송을 송출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하였다.

일제강점기 시기 경성과 평양을 대표하는 경성 축구단과 평양 축구단이 장소를 번갈아 가면서 경평 축구 대회를 벌였다.

일제의
민족 말살 통치

  • 1937년(중일전쟁) ~ 1945년

 

  • 배경

1920년대 후반에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경제 공황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일제는 일본 본토와 식민지를 하나로 묶는 경제 블록을 형성하였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노동력과 자원은 일제에게 보다 철저히 수탈당하였다.

그 후 일제는 1931년 만주를 점령하고(만주사변), 더 나아가 1937년 중⋅일 전쟁을 도발하여 본격적인 대륙 침략을 강행하면서 한국을 대륙 침략의 병참 기지로 삼았다.

그리고는 식민 정책을 강화하여 우리 민족을 더욱 탄압하였고, 모든 방면에 걸쳐 식민지 수탈 정책을 강화하였다.

일제는 침략 전쟁을 확대하면서 한국인의 정신을 말살하고 일본 국왕에 대한 숭배 사상을 주입하는 민족 말살 통치를 실시하였다. 이는 한국인을 침략 전쟁에 효율적으로 동원하려는 의도였다.

 

  • 병참 기지화 정책
    • 조선 공업화 정책

일제는 만주 점령 이후 만주를 농업 원료 지대로, 한국을 중화학 공업 지대로 설정하고 조선 공업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 남면 북양 정책

일제는 일본에 필요한 공업 제품의 원료를 생산하기 위해 면화의 재배와 면양의 사육을 시도하는, 이른바 남면 북양 정책을 수립하였다.

 

  • 국가 총동원법(1938년)

일제는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여 본격적으로 인력과 물자의 수탈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일제는 강제 징용으로 한국인 노동력을 착취하였고, 학도 지원병 제도, 징병 제도 등을 실시하여 수많은 우리 젊은이를 전쟁에 동원하였다.

 

  • 황국 신민화 정책

일제는 우리의 민족 정신을 뿌리뽑기 위해 이른바 일⋅선 동조론을 주장하였고, 내선 일체의 구호를 내세워 우리 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성과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고쳐 쓰도록 하고(창씨개명), 황국 신민 서사 암송(1937년), 궁성 요배, 신사 참배 등을 강요하였다.

그리고 1941년 소학교의 명칭을 ‘황국 신민 학교’라는 뜻의 국민학교로 바꾸었다.

 

  • 제3차 조선 교육령(1938년)

일제는 제3차 조선 교육령을 공포하여 조선어 교육을 사실상 폐지(선택 과목)하여, 일본어만 사용하도록 하였다.

 

  • 제4차 조선 교육령(1943년)

일제는 조선어 과목을 완전히 폐지했다.

 

  • 언론 폐간

1940년에는 한글을 사용하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신문을 폐간하였다.

 

  • 일상생활·사상 통제

1930년대부터 일제는 직접적으로 저항하는 행동은 물론이고 사상까지 통제하고 감시하였다.

일제의 민족 말살 통치 시기, 중일전쟁 후 일제는 한국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침략 전쟁에서 한국인의 협력을 강요하기 위해 국민정신 총동원 운동 조선 연맹을 조직하였다. 연맹의 가장 하부에는 애국반을 조직하였고, 반상회를 통해 일본어 사용, 전쟁을 위한 애국 저금 등의 정책을 홍보하였다.

1940년 초 일제가 강점기 막바지에 여성의 노동력을 얻기 위해 몸뻬를 고안해 냈다.

1936년 제정된 <조선 사상범 보호 관찰령>은 <치안 유지법> 위반자 중 집행 유예, 형 집행 종료 또는 가출옥한 사람을 대상으로 2년간 보호 관찰을 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었다.

1941년 제정된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은 이에 더 나아가서 <치안 유지법>을 위반하여 형에 처해진 경력이 있는 자를 그 집행을 마치고 석방된 이후에도 필요한 경우 검경이 법원의 영장 없이도 자의적으로 계속하여 구금하거나 일정하게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반인권적 조치였다.

문맹 퇴치 운동
  • 배경

일제의 차별적인 교육 정책으로 한국인 중 상당수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이에 실력 양성 운동 차원에서 한글을 보급하여 민중을 깨우치고 생활을 개선하고자 하는 문맹 퇴치 운동이 일어났다.

 

  • 야학 설립

1920년대에는 각지에 야학이 설립되었는데, 이들 야학은 민족주의 색채가 강하여 가르치는 교과목도 조선어 중심이었다.

이에 일제는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야학을 탄압하여 문을 닫게 하였다.

 

  • 문자 보급 운동

1929년 <조선일보>는 1929년부터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라는 구호 아래 문자 보급 운동을 펼쳤다.

조선일보는 이 과정에서 <한글원본>이라는 한글 교재를 발간하여 농촌에 배부하였다.

 

  • 브나로드 운동

1931년 <동아일보>는 ‘배우자, 가르치자, 다 함께 브나로드’라는 구호 아래 학생이 참여하는 농촌 계몽 운동인 브나로드 운동을 벌였다.

  • 구호

아는것이 힘, 배워야 산다.

 

  • 조선어 학회

조선어 학회는 강습회를 열고 한글 교재를 발행하는 등 한글 보급에 나섰다.

형평 운동

  • 배경

갑오개혁 때 신분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그 동안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백정도 평등한 지위를 얻었으나 백정 출신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냉대는 일제 강점기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총독부는 새 호적을 만들면서 백정 출신을 호적에 ‘도한’으로 써 넣거나 붉은 점을 찍어 차별하였다. 학교 입학 통지서에도 백정 신분을 밝힘으로써 입학이 거부되거나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는 일도 많았다.

 

  • 조선 형평사 창립

백정 출신들은 경상 남도 진주에서 조선 형평사를 창립하고(1923년),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형평 운동을 펼쳐 나갔다.

더 나아가 조선 형평사는 다른 분야의 사회 운동 단체와 협력하면서 파업, 소작 쟁의 등에 참가하는 등 항일 민족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 구호

공평은 사회의 근본, 모욕적 칭호를 폐지하자!

 

  • 기출 자료
실력 양성 운동의
대두
  • 배경

3·1 운동 이후 일부 지식인들은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먼저 민족의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력 양성 운동을 전개했다.

 

  • 내용

실력 양성 운동은 적자생존의 원리를 내세운 사회 진화론에 기반한 것으로, 이미 1900년대 애국 계몽 운동 당시 국권 회복의 방법으로 제기된 바 있었다.

실력 양성 운동은 크게 민족 기업 설립과 물산 장려 운동 등을 통한 경제적 실력 양성 운동, 민립 대학 설립 운동과 문맹 퇴치 운동 등을 통한 교육·문화 운동으로 이루어졌다.

 

  • 민족 기업 육성

회사령 철폐 이후 경성 방직 주식회사, 평양의 메리야스 공장 등 한국인의 기업 활동이 활발해졌다.

 

  • 한계

그러나 실력 양성 운동은 일제의 탄압에 쉽게 무너지는 경향을 보였고, ‘선 실력 양성, 후 독립’을 내세웠지만 점차 실력 양성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갔다.

한편, 실력 양성 운동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이광수, 최린, 김성수 등은 일제의 이른바 ‘문화 통치’에 기대를 걸면서 조선 총독부 아래에 자치 정부나 자치 의회를 만들게 해 달라는 자치 운동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 운동은 아무런 성과도 없이 민족주의 세력의 분열을 초래하였고, 일제의 민족 분열 정책에 이용당하였다.

현대 사회와 문화

  • 인구의 변화

1955~1960년 사이 평균 출산율은 6.3명에 달한 반면, 사망률은 점차 낮아져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960년대에 들어와 정부는 가족 계획 사업을 시작하여 출산율을 낮추려 노력하였다. 여기에 여성의 혼인 연령 상승, 자녀 교육비 증가, 자식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피임 확산 등으로 출산율은 점점 낮아졌다.

 

  • 산업화

1960년대에 들어와 경제 개발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우리 나라는 전통적인 농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빠르게 바뀌어 갔다.

 

  • 도시화

정부는 주택 문제를 해결하려 대규모 도시 정비 사업을 진행하였다.

빈민들은 강제로 다른 지역으로 쫓겨났으며, 빈민촌이 있던 곳에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와우아파트 붕괴 참사, 광주 대단지 사건 등이 일어났다.

광주 대단지 사건

1971년 정부와 서울시가 서울의 판자촌 주민들을 경기도 광주(성남)로 강제 이주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무계획적인 도시정책과 졸속행정에 반발하며 도시를 점거했던 사건이다.

 

    • 개발 제한 구역 설정

개발 제한 구역은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 방지와 자연환경의 보전을 위하여 도시개발을 제한하도록 지정한 구역을 말한다.

박정희 정부 시기인 1971년에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가 지정되었다.

 

  • 농촌 사회

1970년대 중반에 다수확 품종의 개발로 쌀의 자급자족이 가능해졌고, 농민은 원예, 축산 등 영농의 다각화를 시작하였다.

 

    • 새마을 운동

중화학 공업의 육성과 함께 정부는 농촌의 근대화와 생활 향상을 위해 새마을 운동을 추진하였다.

근면, 자조, 협동을 기본 정신으로 한 새마을 운동을 계기로 농⋅어민들의 환경 개선과 소득 증대 사업이 이루어져, 농⋅어촌의 생활 수준과 소득도 점차 높아져 갔다.

      • 기출 자료
○ 1970년대 초 농촌에서 일어난 운동이다.

○ 가난을 몰아 내고 농민을 잘살게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 함평 고구마 피해 보상 운동

1976~1978년 함평 고구마 피해 보상 운동이 전개되었다.

 

  • 노동 운동
    • 전태일 분신 사건

1970년 11월에 서울 청계천 평화 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자기 몸을 불살라 암울한 노동 현실을 사회에 고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학생, 지식인, 종교계 등에 큰 충격을 주었다.

 

    • YH 무역 사건

박정희 정부는 노동자의 노동 3권을 크게 제한하여 노동 운동을 탄압하였다.

1979년 YH 무역 노동자들이 부당한 공장 폐쇄에 맞서 야당인 신민당 당사에서 시위를 벌였다. 박정희 정부는 이를 강제로 진압하였고, 이에 항의하던 신민당 총재 김영삼을 국회의원에서 제명하였다.

YH 무역 여성 노동자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가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 최저 임금 위원회

1987년 최저 임금을 결정하는 최저 임금 위원회가 설치되었다.

 

    • 국제 노동 기구(ILO)

1991년 정부는 국제 노동 기구(ILO)에 가입하여 국제 수준의 노동 규칙을 따르고자 하였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19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창립되었다.

 

    • 노사정 위원회

1997년 외환 위기로 국제 통화 기금(IMF)의 관리를 받게 되면서 노동자의 대량 실직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에, 김대중 정부는 노사정 위원회를 구성하여 구조 조정에 따른 실업이나 노사 문제 등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 사회 제도의 변화
1977년 의료 보험법 제정
1986년 최저 임금법 제정
1987년 남녀 고용 평등법 제정
1988년 국민연금 제도 시행
1995년 사회 보장 기본법 제정
1999년 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 제정
2008년 호주제 폐지, 가족 관계 등록부

 

  • 교육 제도의 변화
    • 6⋅3⋅3 학제

광복 이후 미국식 교육 제도의 영향으로 6⋅3⋅3 학제가 도입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 국민 교육 헌장(1966년)

박정희 정부는 국민 교육 헌장을 제정하여 학생들에게 암송하도록 강요하였다.

 

    • 중학교 무시험 제도

1969년 정부는 중학교 무시험 진학 제도를 시행하였다.

 

    • 고교 평준화 제도

1974년 정부는 고교 평준화 제도를 시행하였다.

 

    • 과외 전면 금지

1981년 정부는 과외 전면 금지를 시행하여 높은 교육열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고자 하였다.

 

  • 언론 활동
    • 경향신문 폐간

이승만 정부는 언론 탄압을 강화하면서 정부에 비판적인 경향신문을 폐간하였다.

 

    •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

박정희 정부는 언론계에 자유 언론 실천 운동이 확산되자 유신 체제는 광고주에게 압력을 가하여 <동아일보>에 광고를 싣지 못하도록 하는 광고 탄압을 자행하였다.

 

    • 보도지침

전두환 정부의 문화공보부는 언론사 기사 통제를 위해 보도지침을 작성하여 각 언론사에 배포했다.

 

  • 문화

1970년대 퇴폐풍조 추방 운동의 하나로 장발 단속을 했다.

1970년대 초반 대학생 층을 중심으로 서구의 라이프 스타일과 대중문화를 추종하는 청년 문화가 유행하였다.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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