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20번 기출 해설

문제

20. (가)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① 집현전이 설치되었다.

② 직전법이 실시되었다.

③ 경국대전이 완성되었다.

④ 백두산정계비가 건립되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가)에 해당하는 왕은 조선 세종이다.

 

① 집현전이 설치되었다.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직전법이 실시되었다.

조선 세조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경국대전이 완성되었다.

조선 성종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백두산정계비가 건립되었다.

조선 숙종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조선 세종
  • 집현전 설치 – 집현전 학사는 학문 연구와 아울러 경연에 참여하여 국왕의 통치를 자문하였다. 이 기능은 뒤에 홍문관으로 이어졌다.
  • 의정부 서사제 – 6조에서 올라오는 모든 일을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중심이 되는 의정부에서 논의한 다음, 합의된 사항을 국왕에게 올려 결재를 받는 형식이다.
  • 쓰시마섬 정벌 – 1419년 이종무는, 병선 227척, 병사 1만 7000명을 이끌고 쓰시마 섬을 토벌하여 왜구의 근절을 약속받고 돌아왔다.
  • 4군 6진 – 세종 때 4군과 6진을 설치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오늘날과 같은 국경선을 확정하였다. 최윤덕이 4군을, 김종서가 6진을 개척했다.
  • 계해약조 – 3포 개항 이후 세종 25년(1443년)에 계해약조를 맺어 쓰시마 도주에게 세사미두 200석, 세견선 50척으로 허용해 주었다.
  • 훈민정음 창제 –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1443년)하여 반포하였다(1446년).
  • 지도·지리지 – 세종 때 전국 지도로서 팔도도를 만들었고, 지리지의 편찬도 추진되어 신찬팔도지리지가 편찬되었다.
  • 삼강행실도세종 때 모범이 될 만한 충신, 효자, 열녀 등의 행적을 그림으로 그리고 설명을 붙여 윤리서인 삼강행실도를 편찬하였다.
  • 과학 – 천체 관측기구로 혼천의(혼의)와 간의를 제작하고, 시간 측정 기구로 물시계인 자격루와 해시계인 앙부일구 등을 만들었다. 또한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만들어(1441년) 전국 각지의 강우량을 측정하였고, 토지 측량 기구인 인지의와 규형을 제작하여 토지 측량과 지도 제작에 활용하였다.
  • 칠정산세종 때 만든 칠정산은 중국의 수시력과 아라비아의 회회력을 참고로 하여 만든 역법서로, 우리 나라 역사상 최초로 서울을 기준으로 천체 운동을 정확하게 계산했다.
  • 갑인자 – 세종 때 구리로 갑인자를 주조하였는데, 이는 글자 모습이 아름답고 인쇄에 편리하게 만들어졌다.
  • 총편등록 – 세종 때 화약 무기의 제작과 그 사용법을 정리한 총통등록을 편찬하였다.
  • 농사직설세종 때 정초 등이 편찬한 농사직설은 우리나라에서 편찬된 최초의 농서로서 중국의 농업 기술을 수용하면서 우리의 실정에 맞는 독자적인 농법을 정리하였다.
  • 의학 – 우리 풍토에 알맞은 약재와 치료 방법을 개발, 정리하여 향약집성방을 편찬하고, 의방유취라는 의학 백과 사전을 간행하였다.
조선 세조
  • 계유정난으로 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다.
  • 6조 직계제 실시 – 강력한 왕권 행사
  • 집현전 폐지
  • 직전법 실시(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지급)
  • 간경도감 설치(불서 간행 목적)
  • 진관 체제 실시
조선 성종
  • 경국대전 편찬
  • 관수관급제 실시 – 직전법의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지방 관청에서 그 해의 생산량을 조사하여 거두고, 관리에게 나누어 주는 방식으로 바뀜
  • 홍문관 설치 – 집현전 계승
  •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국조오례의, 악학궤범 간행
  • 금양잡록 – 금양(시흥) 지방을 중심으로 한 경기 지방의 농사법을 정리하여 금양잡록을 편찬
조선 후기
청과의 관계
  • 북벌론 제기

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청에 대하여 표면상 사대 관계를 맺고 사신이 왕래하면서 교역을 활발하게 하였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청에 대한 적개심이 오랫동안 남아 있어서 북벌 정책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효종은 청에 반대하는 입장을 강하게 내세웠던 송시열, 송준길, 이완 등을 높이 등용하여 군대를 양성하고 성곽을 수리하는 등 북벌을 준비하였다.

그 후, 숙종 때에도 청의 정세 변화를 이용하여 윤휴를 중심으로 북벌 움직임이 제기되었으나, 현실적으로 북벌을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였다.

 

  • 북학론 제기

이 시기에 청은 중국 대륙을 장악한 뒤 국력이 크게 신장되고, 중국의 전통 문화를 보호, 장려하고 서양의 문물까지 받아들여 문화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다.

조선 사신은 귀국 후에 기행문이나 보고서를 통하여 변화하는 청의 사정을 전하였고, 새로운 문물을 소개하였다.

이후 학자들 중에도 청을 무조건 배척하지만 말고 우리에게 이로운 것은 적극적으로 배우자는 북학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 백두산 정계비

한편, 청은 중국 대륙을 차지한 후에도 그들의 본거지였던 만주 지방에 관심을 기울여 이 지역을 성역화하였다.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일부가 두만강을 건너 인삼을 캐거나 사냥을 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청과 국경 분쟁이 일어났다.

이에, 조선 숙종 시기 조선과 청의 두 나라 대표가 백두산 일대를 답사하고 국경을 확정하여 정계비를 세웠다(1712년).

이 정계비에서 양국 간의 국경은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을 경계로 한다고 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6년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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