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44번 기출 해설

문제

44. 밑줄 그은 ‘이 전쟁’ 중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① 닉슨 독트린이 발표되었다.

② 브라운 각서가 체결되었다.

③ 인천 상륙 작전이 전개되었다.

④ 조선 건국 동맹이 결성되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이 전쟁’은 1950년에 발생한 ‘6.25 전쟁’이다.

 

① 닉슨 독트린이 발표되었다.

1969년 미국 대통령 닉슨은 공산 국가에 대하여 융통성 있게 대처한다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였다.

이어서 닉슨은 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공산 중국의 유엔 가입을 승인하였다. 또, 그는 공산 중국을 방문하여 냉전 체제의 완화에 이바지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브라운 각서가 체결되었다.

1966년 박정희 정부는 파병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한국군의 현대화를 위한 장비, 경제 개발에 필요한 기술 및 차관을 지원받기로 하였다.

이때 브라운 각서가 체결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인천 상륙 작전이 전개되었다.

6.25 전쟁 중인 1950년 9월 15일, 유엔군과 국군은 인천 상륙 작전에 성공하여, 서울을 수복한 후 38선을 넘어 압록강까지 북진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조선 건국 동맹이 결성되었다.

1944년 여운형, 안재홍 등 좌·우익 세력이 합작하여 조선 건국 동맹을 조직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6⋅25 전쟁
  • 배경
    • 미국·소련 군대 철수

냉전이 심화하는 가운데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 38도선 무력 충돌

이 무렵 남한과 북한은 서로의 체제를 비난하면서 38도선 부근에서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을 벌였다.

 

    • 중국의 공산화 및 중·소의 북한 지원

1949년 10월, 국공 내전에서 승리한 중국 공산당은 중화 인민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국공 내전에 참여하였던 조선 의용군이 북한에 편입되어 북한의 군사력이 강화되었다.

북한은 중국은 물론 소련에서도 군사 지원을 받았다.

소련은 북한의 남침 계획에 동의하였으며, 중국도 필요한 경우 참전할 것을 약속하였다.

 

    • 애치슨 선언

1950년 1월, 미국은 태평양 방위선에서 한반도와 타이완을 제외한다는 애치슨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에 북한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져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였다.

 

  • 6⋅25 전쟁 전개
    • 북한군의 기습 남침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6·25 전쟁이 시작되었다.

 

    • 유엔군의 참전

유엔은 전쟁이 나자 안전 보장 이사회를 소집하여 북한의 남침을 침략 행위로 규정하였고, 이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16개국이 유엔군을 파견하였다.

 

    • 인천 상륙 작전

1950년 9월 15일, 유엔군과 국군은 인천 상륙 작전에 성공하여, 서울을 수복한 후 38선을 넘어 압록강까지 북진하였다.

1950년 11월 1일, 국군∙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최대로 북진하였다.

 

    • 중공군 참전

1950년 10월, 중국군의 개입으로 국군과 연합군은 남쪽으로 후퇴하였으며, 이 가운데 흥남 철수 작전도 이뤄졌다.

 

    • 1·4후퇴

1951년 1월 4일에는 다시 서울이 함락되었다.

이후 전세는 휴전선 일대에서 교착 상태에 들어갔다.

 

    • 정전 협정
      • 소련의 정전 제안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소련은 국제 연합(UN)에 정전을 제안하였다.

 

      • 정전 회담 쟁점

정전 회담의 주요 쟁점은 군사 분계선 설정과 포로 송환 문제였다.

유엔군 측은 포로의 자유송환을, 공산군 측은 강제송환을 주장했다.

 

      • 반공 포로 석방

정전을 반대하는 이승만 정부는 27,000여 명에 이르는 반공 포로를 석방하여 정전 회담은 큰 위기를 맞기도 했다.

 

      • 정전 협정 체결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 협정이 조인됨으로써 3년여 만에 6·25 전쟁은 정전으로 매듭지어졌다.

휴전협정에 서명한 나라는 미국, 북한, 중국이다.

휴전협정으로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시위원단이 설치되었다.

 

  • 한미 상호 방위 조약

전쟁이 끝난 이후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이 체결되었다(1953년). 이에 따라 미군이 한국에 계속 주둔하였고, 미국의 영향력은 한국과 동아시아에서 강화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 변화
  • 국제 연합(UN)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국제 사회는 전쟁을 방지하고 세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국제기구의 필요성에 공감하여 국제 연합(UN)을 창설하였다.

 

  • 냉전 체제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전후 국제 질서가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 진영이 이념과 체제의 우위를 경쟁하는 냉전 체제가 형성되었다.

 

  • 트루먼 독트린(1947년)

미국은 소련이 지원하는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트루먼 독트린을 발표하였다.

트루먼 독트린

1947년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공산주의 세력에 위협을 받던 그리스와 터키 등에 경제적·군사적 지원을 약속한 선언이다.

 

  • 닉슨 독트린(1969년)

그 후 미국 대통령 닉슨은 공산 국가에 대하여 융통성 있게 대처한다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였다.

이어서 닉슨은 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공산 중국의 유엔 가입을 승인하였다. 또, 그는 공산 중국을 방문하여 냉전 체제의 완화에 이바지하였다.

 

  • 소련의 개혁·개방

1980년대에 소련의 실권자인 고르바초프는 개방과 개혁을 내세우고 공산주의 체제의 변혁을 추구하였다.

 

  • 반둥 회의(1955년)

아시아, 아프리카의 신생 독립국들은 인도네시아의 반둥에서 회의를 개최하고, 비동맹 중립 노선의 제3세계 또는 제3세력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반둥 회의에서는 반식민주의, 민족주의, 평화 공존 등의 평화 10원칙을 채택하였다.

 

  • 유럽 연합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서 나타난 중요한 흐름은 유럽 통합의 움직임이었다. 이는 1960년대에 이르러 유럽 공동체로 발전하였다.

그 후, 유럽 공동체는 영국, 덴마크 등의 가입으로 그 규모가 확대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유럽 연합으로 발전했다.

 

  • 중화 인민 공화국(194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중국에서는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다(국공 내전).

4년 동안 이어진 내전은 결국 공산당의 승리로 끝나고, 마오쩌둥은 중화 인민 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하였다.

 

  •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1951년)

중국이 공산화되고 한반도에서 6·25 전쟁이 일어나는 등 동아시아에서 공산 세력이 강화되자, 미국은 일본을 아시아의 반공 기지로 만들려고 하였다.

이에 미국은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체결을 주도하여 일본이 주권을 회복하고 경제를 부흥하도록 도왔다.

베트남 전쟁
파병
  • 베트남 전쟁 파병

박정희 정부는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베트남 전쟁에 국군을 파병하였다.

파병 규모는 1964년부터 1973년까지 32만여 명에 달하였다.

 

  • 브라운 각서(1966년)

박정희 정부는 파병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한국군의 현대화를 위한 장비, 경제 개발에 필요한 기술 및 차관을 지원받기로 하였다.

 

  • 베트남 특수

한국은 베트남에 파병된 군인의 송금, 베트남으로의 군수 물자 수출과 건설 사업 참여 등으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었다.

건국 준비와
한국 독립의 약속

  • 대한민국 임시 정부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윤봉길 의거 이후 큰 활력을 얻었다. 그러나 더 강화된 일제의 감시와 탄압 때문에 상하이를 떠나야만 하였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여러 차례 이동을 거듭한 끝에 충칭에 정착하였다.

 

  • 한국 독립당 재창당

1940년 김구의 한국 국민당, 조소앙의 한국 독립당, 지청천의 조선 혁명당 3당은 한국 독립당을 결성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이끌었다.

 

  • 한국광복군과 김구 주석

1940년 임시 정부는 중국 충칭에 정착하여, 총사령관을 지청천, 참모장을 이범석으로 하는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다.

임시 정부는 주석 중심의 단일 지도 체제로 헌법을 개정하고, 김구를 주석으로 선출하였다.

김구 주석

 

  • 건국 강령 제정

1941년 임시 정부는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기초로 하여 대한민국 건국 강령을 발표하였다.

이 강령에는 보통 선거를 통한 민주 공화정 수립, 토지와 대기업 국유화, 의무 교육 제도 시행, 노동권 보장 등이 내용은 담았다.

 

  • 조선 의용대 합류

1942년 화북 지방으로 이동하지 않은 조선 민족 전선 연맹(민족 혁명당 후신)의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 의용대 일부가 한국광복군에 합류하였다.

 

  • 대일 선전 포고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정식으로 일제에 대일 선전 포고를 하였다.

1944년 한국광복군은 미국 전략 정보국(OSS)와 함께 국내 진공 작전(작전명 독수리 작전)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일제가 일찍 항복하면서 작전은 무산되었다.

 

  •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개헌 변천과정
구분 연도 정부 형태
제1차 개정헌법 1919년 대통령중심제
제2차 개정헌법 1925년 국무령 중심의 내각 책임제
제3차 개정헌법 1927년 국무위원 중심의 집단지도체제
제4차 개정헌법 1940년 주석 중심의 단일지도체제
제5차 개정헌법 1944년 주석·부주석 체제

 

  • 조선 독립 동맹

화북 지방으로 이동한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는 일본군의 공세에 맞서 호가장 전투 등이 참가하여 큰 전과를 거두었다.

1942년 중국 화북 지역에서 김두봉이 주도하고 한국인 사회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 독립 동맹을 결성하였다.

조선 독립 동맹은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를 조선 의용군으로 개편하였다. 조선 의용군은 중국 공산당의 팔로군 등과 함께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 조선 건국 동맹

국내에서도 건국 준비 활동이 시작되었다.

1944년 여운형, 안재홍 등 좌·우익 세력이 합작하여 조선 건국 동맹이 만들어졌다.

일제의 패망을 확신한 여운형은 독립 선언서를 준비하고, 무장 세력도 조직하면서 해외 독립운동 세력과의 연계를 시도하였다.

조선 건국 동맹은 일제 타도를 위한 대동단결, 민주주의 원칙에 바탕을 둔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강령을 발표하였다.

 

  • 국제 사회의 한국 독립 약속
    • 카이로 선언

1943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개최된 카이로 회담에 미국, 중국, 영국의 3국 정상이 참석하였다.

3국 대표는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독립시킬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카이로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는 최초로 한국의 독립이 약속된 것이다.

 

    • 얄타 회담

1945년 미국, 중국, 영국의 3국 정상이 얄타에서 회담을 열었다.

이 회담에서 소련이 일본과의 전쟁에 참여한다는 내용의 협정이 체결되었다.

 

    • 포츠담 선언

1945년 미국, 중국, 영국의 3국 정상이 독일 포츠담에서 회담을 열었다.

이 회담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카이로 선언에서 결정된 한국의 독립을 재확인한다는 포츠담 선언이 발표되었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6년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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