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학년도 9월 모의평가 한국사 15번 해설 – 한국 광복군

15번 문제

15. (가) 군사 조직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①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였다.

② 인도.미얀마 전선에 투입되었다.

③ 고종의 밀명을 받아 조직되었다.

④ 대마도(쓰시마섬)를 정벌하였다.

⑤ 영릉가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1940년 중국 충칭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총사령관을 지청천, 참모장을 이범석으로 하는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다.

1944년 한국광복군은 미국 전략 정보국(OSS)와 함께 국내 진공 작전(작전명 독수리 작전)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일제가 일찍 항복하면서 작전은 무산되었다.

 

①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였다.

1920년 10월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 군정서와 홍범도의 대한 독립군을 중심으로 한 독립군 연합 부대는 청산리 일대 백운평, 완루구, 어랑촌, 고동하 등지에서 6일 동안 10여 차례의 전투 끝에 일본군을 격파하였다. 이것이 청산리 전투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인도.미얀마 전선에 투입되었다.

1943년 영국군의 요청에 따라 한국광복군은 미얀마·인도 전선에 참가하여, 주로 일본군을 상대로 한 포로 심문, 정보 수집, 선전 활동 등을 수행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고종의 밀명을 받아 조직되었다.

1912년 임병찬 등은 고종의 밀지를 받고 국내에서 전국 각지의 유생들을 모아 독립 의군부를 조직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대마도(쓰시마섬)를 정벌하였다.

조선 세종 때인 1419년 이종무는 병선 227척, 병사 1만 7000명을 이끌고 쓰시마 섬을 토벌하여 왜구의 근절을 약속받고 돌아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영릉가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1930년대 양세봉이 이끄는 조선 혁명군은 중국 의용군과 함께 영릉가 전투, 흥경성 전투, 신개령 전투, 통화현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5학년도(2024) 9월 모의평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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