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학년도 9월 모의평가 한국사 19번 해설 – 4.19 혁명

19번 문제

19. (가)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

① 유상 매입, 유상 분배의 농지 개혁법이 제정되었다.

② 내각 책임제를 골자로 한 개헌이 이루어졌다.

③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가 개최되었다.

④ 3.1 민주 구국 선언이 발표되었다.

⑤ 조선 형평사가 조직되었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위 자료는 이승만 정부 시기인 1960년에 발생한 4.19 혁명에 대한 내용이다.

 

① 유상 매입, 유상 분배의 농지 개혁법이 제정되었다.

제헌 국회는 농민에게 농지를 분배한다는 내용을 제헌 헌법에 담았으며, 1949년 6월에는 농지 개혁법을 제정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내각 책임제를 골자로 한 개헌이 이루어졌다.

4·19 혁명 이후 허정을 중심으로 하는 과도 정부가 구성되었다.

또한 양원제 국회(참의원, 민의원)와 내각 책임제를 중심으로 하는 헌법을 개정하였다(제3차 개헌).

새 헌법에 따라 실시된 총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하여, 새로 구성된 국회에서 윤보선을 대통령으로, 장면을 국무총리로 선출하였다(장면 내각).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가 개최되었다.

1945년 12월에 모스크바에서 미국, 영국, 소련의 3국 외상 회의가 개최되었다.

모스크바의 3국 외상 회의에서는 한국에 조선 민주주의 임시 정부를 수립하기 위하여 미⋅소 공동 위원회를 설치하고, 최고 5년간 미국, 영국, 중국, 소련의 4개국이 신탁 통치를 실시한다고 결정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3.1 민주 구국 선언이 발표되었다.

박정희 정부 시기인 1972년 유신 헌법이 제정되었다.

재야 인사, 학생 종교인 등을 중심으로 한 민주 세력은 권력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개헌 청원 100만 명 서명 운동(1973년), 3·1 민주 구국 선언(1976년) 등을 통해 <유신 헌법> 폐지와 정권 퇴진을 요구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조선 형평사가 조직되었다.

1923년 백정 출신들은 경상 남도 진주에서 조선 형평사를 창립하고,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형평 운동을 펼쳐 나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5학년도(2024) 9월 모의평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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