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29. (가)~(마)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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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가) – 북학 사상을 바탕으로 통상 개화론을 주장하다
② (나) – 영남 만인소를 주도해 개항과 통상에 반대하다
③ (다) – 보빙사로 미국에 다녀와 개화 정책을 추진하다
④ (라) – 서유견문을 집필하여 서양 근대 문명을 소개하다
⑤ (마) – 백정 출신으로 관민 공동회에서 연설하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① (가) – 북학 사상을 바탕으로 통상 개화론을 주장하다
통상 개화론은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이 중심이 되었고, 북학파 실학자들의 사상을 이어받았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나) – 영남 만인소를 주도해 개항과 통상에 반대하다
1880년대 들어 개화 정책이 실시되고 <조선책략>이 퍼지자, 이만손을 중심으로 한 영남 유생들은 만인소를 올려 정부의 개화 정책 및 미국과의 수교에 반대하였다. 이러한 개화 반대 운동은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다) – 보빙사로 미국에 다녀와 개화 정책을 추진하다
정부는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후 미국과 수교한 이후 미국에 답례 사절단인 보빙사를 파견하여 근대 시설을 살펴보게 하였다(1883년).
민영익, 유길준, 홍영식 등이 파견되었다. 유길준은 귀국 후에 <서유견문>을 썼다.
김홍집은 수신사 일행이 되어 일본에 파견되었다. 이때 김홍집은 <조선책략>을 가지고 들어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라) – 서유견문을 집필하여 서양 근대 문명을 소개하다
유길준은 미국에 보빙사로 파견되었고, 귀국 후에 <서유견문>을 썼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마) – 백정 출신으로 관민 공동회에서 연설하다
1898년 독립 협회는 만민 공동회에 정부 대신들을 합석시켜 관민 공동회를 열었다.
여기에서 백정 출신인 박성춘이 연사로 나서기도 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③번이다.
| 통상 개화론의 대두 |
1873년 최익현의 상소로 흥선 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의 친정 체제가 시작됐다.
청에서 양무운동이 전개되고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이 일어날 무렵 조선에서도 문호를 개방하고 서양과 통상해야 한다는 통상 개화론이 대두하였다. 통상 개화론은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이 중심이 되었고, 이들은 북학파 실학자들의 사상을 이어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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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정척사 운동 |
정부의 개화 정책 추진에 대해 전통적인 유생층은 성리학적 전통 질서를 지키고 외세를 배척하자는 위정척사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개항과 개화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정부의 정책에 반발하였다.
1860년대 천주교가 퍼지고 서구 열강이 무력을 앞세워 통상을 요구하자 유생들은 통상에 반대하였다. 이항로, 기정진 등은 척화 주전론을 내세우며 흥선 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지지하였다.
1870년대 강화도 조약의 체결 무렵에는 최익현 등이 왜양일체론을 내세우며 일본의 개항 요구에 반대하였다(개항 반대 운동).
1880년대 들어 개화 정책이 실시되고 <조선책략>이 퍼지자, 이만손을 중심으로 한 영남 유생들은 만인소를 올려 정부의 개화 정책 및 미국과의 수교에 반대하였다. 이러한 개화 반대 운동은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반외세·반침략의 성격을 띤 위정척사 운동은 항일 의병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양반 중심의 성리학적 질서를 유지하려 했다는 한계를 지녔다. 유인석은 을미의병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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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 사절과 시찰단 파견 |
강화도 조약 체결 직후 정부는 일본에 수신사를 파견하여 근대화에 필요한 기술과 정보를 조사하였다.
1차 수신사 김기수 일행은 일본의 근대 시설을 시찰하였다(1876년).
일본과의 조약 개정을 위해 파견된 2차 수신사 김홍집 일행은 목적을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일본의 발전상을 살펴보고 돌아왔다(1880년). 이때 김홍집은 <조선책략>을 가지고 들어왔다.
박영효가 일본에 파견되었다.
정부는 1881년에 박정양, 어윤중, 홍영식, 유길준 등을 비밀리에 조사 시찰단으로 일본에 파견하였다. 이들은 일본의 제도와 법률, 공장 등을 조사하고 국왕에게 보고서를 올려 개화 정책의 자료로 삼게 하였다.
정부는 김윤식을 영선사로 임명하여 중인 자제들을 이끌고 청에 가서 무기 화약 기계 제조법을 배우게 하였다. 정부의 재정 부족으로 인원이 줄고 임오군란이 일어나면서 이들은 일찍 돌아오게 되었으나 이를 계기로 기기창이 설치되었다.
정부는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후 미국과 수교한 이후 미국에 답례 사절단인 보빙사를 파견하여 근대 시설을 살펴보게 하였다(1883년). 민영익, 유길준, 홍영식 등이 파견되었다. 유길준은 귀국 후에 <서유견문>을 집필하여 서양 근대 문명을 소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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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 협회 |
명성 황후 시해사건으로 일본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 고종은 러시아의 도움으로 일본의 위협을 피할 수 있다고 믿고, 처소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겼다. 이를 아관 파천이라고 한다.
국왕이 러시아 공사관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국가의 자주성은 손상되었고,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의 이권 침탈은 더욱 심해졌으며, 집권층은 친러적인 성향을 드러내었다. 외세의 침투가 계속되어 나라의 자주권이 크게 위협을 당하면서 국민들 사이에 나라의 자주 독립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갑신정변의 주동자로 미국에 망명해 있던 서재필이 귀국하였다. 그는 자유 민주주의적 개혁 사상을 민중에 보급하고, 국민의 힘으로 완전한 자주 독립 국가를 수립하고자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 협회를 창립하였다(1896년).
독립 협회는 첫 사업으로서 국민의 성금을 모아 영은문 자리에 자주 독립의 상징인 독립문을 세우고, 모화관을 독립관으로 개수하는 등 국민의 자주 독립 의식을 고취시켰다. 또한 독립 협회는 독립관에서 교육과 산업 진흥, 자주독립 등의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민중을 계몽하였다.
이 무렵, 러시아의 침략적 간섭은 여전하였다. 러시아는 재정 고문을 파견하고, 한러 은행 설립, 절영도 조차 등 이권 침탈을 시도하였다. 또한 열강의 이권 침탈은 더욱 심해져 갔다. 이에 독립 협회 회원들은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적 민중 대회인 만민 공동회를 열었다(1898년). 만여 명의 시민,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종로 광장에서 열린 만민 공동회에서는 러시아의 침략 정책을 규탄하고, 대한의 자주 독립권을 지키자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하여 이를 정부에 건의하였다. 이후, 독립 협회는 수시로 만민 공동회를 열고, 외국의 내정 간섭과 이권 요구 및 토지 조차 요구 등에 대항하여 국권과 국익을 수호하려는 자주 국권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결국 러시아는 재정 고문을 철수시키고, 절영도 조차 요구를 철회하였다.
자주 국권 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민중의 힘이 증대되고 민권 의식이 고양되어 자유 민권 운동도 전개되었다. 나아가, 민의를 국정에 반영하여 근대 개혁을 추진하려는 국민 참정권 운동도 전개하였다. 그 후, 독립 협회는 전국 각지에 지회를 설치하고, 4천여 명의 회원을 가진 민중의 대표 기관으로 성장하여, 의회 설립에 의한 국민 참정 운동과 국정 개혁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독립 협회는 이 같은 활동을 통하여 보수적 내각을 퇴진시키고, 박정양의 진보적 내각을 수립하게 하는 데 성공하였다.
1898년 독립 협회는 만민 공동회에 정부 대신들을 합석시켜 관민 공동회를 열었다. 여기에서 백정 출신인 박성춘이 연사로 나서기도 했다. 독립 협회는 국권 수호와 민권 보장, 열강의 이권침탈 방지를 내용으로 하는 헌의 6조를 결의하였다.
독립 협회는 국권 수호와 민권 보장 및 정치 개혁을 내용으로 하는 헌의 6조를 결의하여 국왕의 재가를 받았다.
독립 협회는 정부와 협상을 벌여 관선 의원과 민선 의원을 같은 수로 하는 의회식 중추원 관제를 반포하게 하여, 우리 나라 역사상 최초로 국회가 설립될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위기를 느낀 보수 세력은 고종에게 독립 협회가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실시하려 한다고 모함하여, 박정양 내각을 무너뜨리고 독립 협회도 해산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정부는 황국 협회를 이용하여 만민 공동회를 탄압하였고, 결국은 병력을 동원하여 민중들의 정치 활동을 봉쇄하였다.
독립 협회의 활동은 민중을 개화 운동과 결합시켜 근대적 민중 운동을 일으켰고, 민중에 의한 자주적인 근대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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