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28번 기출 해설

문제

28. 다음 가상 대화가 이루어진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① 주자감에서 공부하는 학생

② 삼별초에 소속되어 훈련받는 군인

③ 암태도 소작 쟁의에 참여하는 농민

④ 척화비를 세우기 위해 돌을 다듬는 석공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조선 후기 흥선 대원군의 개혁 정치의 일환으로 서원 철폐를 단행했다.

 

① 주자감에서 공부하는 학생

주자감은 발해의 최고 교육 기관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삼별초에 소속되어 훈련받는 군인

삼별초는 고려 시대 최씨 무신 정권을 군사 조직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암태도 소작 쟁의에 참여하는 농민

일제 강점기 때 발생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척화비를 세우기 위해 돌을 다듬는 석공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흥선 대원군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건립했다(1871년).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④번이다.

 

흥선 대원군의
개혁 정치
안동 김씨 축출 –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안동 김씨를 비롯한 세도 가문의 중심 인물들을 몰아내고 당파와 관계없이 인재를 고루 등용하였다.

비변사 기능 축소·폐지 – 세도 정권의 핵심 권력 기구로 왕권을 제약하였던 비변사를 축소하여 사실상 폐지하였다.

의정부와 삼군부 –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을 부활하여 행정권과 군사권을 나누어 맡도록 함으로써 권력 독점을 견제하였다.

<대전회통>, <육전조례> 등 법전을 편찬하여 통치 체제를 재정비하였다.

경복궁 중건 –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을 중건하였다.

원납전 – 경복궁 중건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원납전이라는 기부금을 강제로 거두었다.

당백전 – 고액 화폐인 당백전을 발행하였다. 당백전을 발행하면서 물가가 크게 오르기도 하였다. 무리한 경복궁의 중건은 양반과 백성의 불만을 샀다.

서원 철폐 – 흥선 대원군은 전국의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철폐하였다. 이에 지방 유생들과 양반들은 강력히 반발하였다. 만동묘가 이때 철폐되었다.

호포제 – 군역 면제 대상인 양반을 포함하여 모든 가구에 군포를 동등하게 부과하게 하였다.

사창제 – 환곡을 개혁하기 위해 사창제를 실시하였다.

척화비 건립
  • 척화비 건립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흥선 대원군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건립했다(1871년).

이러한 흥선 대원군의 대외 정책은 서양 세력의 침략을 일시적으로 막았으나, 한편으로는 조선의 근대화를 지연하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척화비

발해 통치 체제
  • 중앙 정치 조직 – 3성 6부, 당의 제도를 수용하였지만, 그 명칭과 운영은 발해의 독자성을 유지
  • 중앙의 최고 교육 기관으로 주자감 설치
  • 지방 행정 조직은 5경 15부 62주로 조직
  • 군사 조직은 중앙군으로 10위를 둠
고려
몽골의 침입
13세기 초, 몽골 초원에서 칭기즈칸이 몽골 제국을 건설하여 금을 공격하면서 동아시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

고려에 왔다가 귀국하던 몽골 사신이 피살되는 사건(저고여 피살 사건)이 일어나자, 고려와 몽골의 외교관계는 단절

몽골의 1차 침입 – 1231년, 몽골의 침입으로 무신 정권은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강화 천도), 주민을 산성과 섬으로 피난시킨 뒤 항전과 외교를 병행하면서 저항. 귀주성에서는 박서의 지휘 아래 몽골군에 맞서 끝까지 성을 지킴

몽골의 2차 침입 – 1232년, 처인성 전투에서는 김윤후와 처인 부곡민이 몽골군 사령관 살리타를 사살

몽골의 5차 침입 – 1253년 몽골의 5차 침입 때 김윤후가 충주성에서 관민을 이끌고 몽골군을 격퇴.

피해 – 대구 부인사에 보관하고 있던 대장경의 판목과 경주의 황룡사 9층 목탑 등이 몽골군에 의해 소실

개경 환도 – 몽골과 강화를 맺자는 주화파가 득세하고, 최씨 정권이 무너지면서 전쟁 종결. 1270년, 무신의 마지막 권력자인 임유무가 피살되자 고려 정부는 개경으로 환도

삼별초의 항쟁 – 고려 정부가 개경으로 환도하자, 대몽 항쟁에 앞장섰던 삼별초는 배중손의 지휘 아래 반기를 듦. 진도와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여⋅몽 연합군과 전투

삼별초

최우가 야간 경비를 위해 설치한 야별초가 확대된 것으로 좌별초, 우별초, 그리고 몽골의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한 군사들로 조직된 신의군으로 구성

농민 운동
  • 배경

일제의 토지 조사 사업과 산미 증식 계획으로 농민들의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농민들은 수확량의 절반이 넘는 소작료와 세금 등을 부담하였기 때문에 식량 부족과 경제적 궁핍에 시달렸다.

결국 많은 농민이 자작농에서 자소작농으로, 자소작농에서 토목 공사장이나 광산 노동자로 몰락하였다

 

  • 1920년대 농민 운동

1920년대 들면서 농민들은 생존권을 요구하는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 암태도 소작 쟁의

1923년 전라도 암태도에서 소작인들이 친일 지주 문재철의 횡포와 일본 경찰의 탄압에 맞서 암태도 소작 쟁의를 벌였다.

 

    • 조선 농민 총동맹

1927년 전국적인 농민 운동 단체인 조선 농민 총동맹이 결성되어 농민 운동의 규모와 조직이 한층 발전하였다.

 

  • 1930년대 농민 운동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공황의 영향으로 농민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고, 농민 운동은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하는 비합법적이고 혁명적인 농민 조합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또한 이 시기 농민 운동은 반제국주의 항일 운동의 모습을 보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6년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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