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30번 기출 해설

문제

30. 밑줄 그은 ‘개혁’의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① 비변사를 혁파하였다.

② 공사 노비법을 폐지하였다.

③ 대한국 국제를 반포하였다.

④ 5군영을 2영으로 통합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위 자료의 내용은 제1차 갑오개혁에 대한 내용이다.

 

① 비변사를 혁파하였다.

비변사 혁파는 흥선 대원군의 집권 시기 이뤄졌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공사 노비법을 폐지하였다.

제1차 갑오개혁 때 이뤄졌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대한국 국제를 반포하였다.

대한제국 시기 이뤄졌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5군영을 2영으로 통합하였다.

강화도 조약 이후 개화 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이뤄졌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제1차
갑오개혁
제1차 동학 농민 봉기 후, 농민의 불만과 개혁 요구로 조선 정부는 이를 반영한 개혁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는 교정청을 설치하고 자주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려 하였다.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을 통해 경제적 이권 탈취와 함께 침략의 기반을 닦기 위해, 일본은 조선에 대하여 내정 개혁을 요청하였으나, 조선은 일본군이 먼저 철수할 것을 요구하였다.

결국 일본은 군대를 동원하여 경복궁을 점령하고 청⋅일 전쟁을 일으켰다(1894년). 그리고 일본은 친일 내각을 수립하여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을 했다.

교정청

조선 정부가 독자적으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로 주로 조세 개혁을 결정하였다.

  • 제1차 갑오개혁

일본은 흥선 대원군을 섭정으로 하는 제1차 김홍집 내각을 수립했다.

김홍집 내각은 농민의 불만과 개혁 요구를 반영하고자 군국기무처를 설치하고 정치, 경제, 사회 등 국가의 주요 정책에 대한 개혁을 추진하였다(제1차 갑오개혁, 1894년 7월).

일본은 청⋅일 전쟁 중이라 조선에 내정 간섭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비교적 자주적인 개혁이 가능했다.

군국기무처

입법권을 가진 초정부적인 개혁 추진 기구이다

  • 주요 개혁 내용
    • 정치
      • 개국 기원 사용
      • 기존 6조에서 8아문으로 개편
      • 궁내부를 신설하여 왕실 사무와 행정 사무 분리
      • 과거제 폐지
    • 경제
      • 탁지아문으로 재정의 일원화
      • 조세의 금납화
      • 도량형의 개정 통일
      • 은본위 화폐 제도를 채택
    • 사회
      • 공·사노비 제도를 혁파하고 신분제 폐지
      • 과부의 재혼 허용
      • 조혼 금지
흥선 대원군의
개혁 정치
안동 김씨 축출 –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안동 김씨를 비롯한 세도 가문의 중심 인물들을 몰아내고 당파와 관계없이 인재를 고루 등용하였다.

비변사 기능 축소·폐지 – 세도 정권의 핵심 권력 기구로 왕권을 제약하였던 비변사를 축소하여 사실상 폐지하였다.

의정부와 삼군부 –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을 부활하여 행정권과 군사권을 나누어 맡도록 함으로써 권력 독점을 견제하였다.

<대전회통>, <육전조례> 등 법전을 편찬하여 통치 체제를 재정비하였다.

경복궁 중건 –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을 중건하였다.

원납전 – 경복궁 중건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원납전이라는 기부금을 강제로 거두었다.

당백전 – 고액 화폐인 당백전을 발행하였다. 당백전을 발행하면서 물가가 크게 오르기도 하였다. 무리한 경복궁의 중건은 양반과 백성의 불만을 샀다.

서원 철폐 – 흥선 대원군은 전국의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철폐하였다. 이에 지방 유생들과 양반들은 강력히 반발하였다. 만동묘가 이때 철폐되었다.

호포제 – 군역 면제 대상인 양반을 포함하여 모든 가구에 군포를 동등하게 부과하게 하였다.

사창제 – 환곡을 개혁하기 위해 사창제를 실시하였다.

개화 정책의
추진
  • 통리기무아문 설치

개항 이후, 청과 일본이 조선을 두고 침략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조선 정부는 부국강병을 목표로 개화 정책을 추진하였다.정부에서는 이 정책을 전담할 기구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였다(1880년).

그 아래에 12사를 두어 외교, 군사, 산업 등의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 군사 제도 개편
    • 2영

기존의 5군영을 무위영, 장어영의 2영으로 통합, 개편하였다.

 

    • 별기군 창설

신식 군대의 양성을 위하여 별도로 별기군을 창설하였고, 일본인 교관을 채용하여 근대적 군사 훈련을 시키고, 사관 생도를 양성하였다.

 

  • 근대 시설

기기창(1883년, 무기 제조 기관), 박문국(1883년, 인쇄, 출판 기관, 한성순보 발행), 전환국(1883년, 화폐 발행 기관) 등의 근대 시설을 세웠다.

대한 제국과 광무개혁
  • 배경

아관파천 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러 있던 고종의 환궁을 요구하는 국민의 여론이 강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고종은 1년 만에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하였다(1897년).

 

  • 대한 제국 선포

고종은 그 동안 떨어진 나라의 위신을 높이기 위해 국호를 대한 제국으로, 연호를 광무라 고친 다음, 왕을 황제라 칭하여 자주 국가임을 내외에 선포하고 환구단에서 황제로 즉위했다(1897년).

환구단(원구단)

 

  • 광무개혁

대한제국의 개혁 방향은 “옛 제도를 근본으로 하고 새로운 제도를 참작한다.”는 구본신참(舊本新參)에 있었다.

 

  • 정치 개혁

대한제국은 1899년 <대한국 국제(大韓國國制)>를 반포하였다.

이를 통해 대한 제국이 전제 정치 국가이며, 황제권의 무한함을 강조하고, 통수권,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 외교권 등을 모두 황제의 대권으로 규정하여 전제 군주 체제를 더욱 강화하였다.

 

  • 경제 개혁
    • 양전 사업

대한 제국은 1898년부터 양전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양지아문과 지계아문을 설치했다.

그리고 전국 토지를 측량한 후 토지 소유권을 입증하는 지계를 발급하였다. 이를 통해 토지 소유권을 국가가 파악하여 조세 수입을 증대하려 하였다.

    • 식산흥업 정책

상공업 진흥책이 실시되어, 섬유, 철도, 운수, 광업, 금융 분야에서 근대적인 공장과 회사들이 설립되었다.

    • 금본위 지폐 시도

일본 제일 은행이 한국에서 제일 은행권을 발행하자 정부는 유통 반대 운동을 벌이고 중앙은행을 설립하여 금본위 지폐를 발행하려 하였다.

    • 내장원

대한 제국은 황실 기구인 궁내부의 재정 기관인 내장원은 정부가 관할하던 홍삼 전매권, 상업세 등 많은 재원을 흡수하였다.

    • 전환국

대한 제국은 화폐 주조 기관인 전환국을 황제 직속으로 옮기고 백동화를 대량 발행하여 근대화 정책의 재원으로 삼았다

 

  • 사회 개혁
    • 실업 교육

실업 교육이 강조되었고, 근대 산업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외국에 유학생이 파견되었으며, 각종의 실업 학교, 상공 학교와 기술 교육 기관도 설립되었다.

 

  • 군사 개혁

대한 제국은 전제 군주정을 확고히 하기 위해 원수부를 설치하고 황제가 대원수로서 군 통수권을 직접 장악하였다.

또한 친위대와 진위대의 병력을 크게 늘렸고, 무관 학교를 설치하여 장교 양성에도 힘썼다.

 

  • 외교 활동

대한제국은 <대한국 국제>를 근간으로 청과 대등한 입장에서 한·청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6년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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