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37번 기출 해설

문제

37. 다음 자료를 활용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사람 대우라 함’은 무엇이냐? 호적에서 ‘백정’ 두 글자를 없애고 양반의 자식과 함께 학교에 다닐 자격을 얻으며 …… 백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접의 힘에 의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은 오직 조직에 달렸다. 현재 진주에 본사를 두고 조선 각지에 지사를 두는 것도 조직이기는 하지만, 운동적 결사로 존립하고자 하면 그렇게만 해서는 안 된다.

① 강화도 조약의 내용을 살펴본다.

② 기기창이 설치된 시기를 검색한다.

③ 조선 형평사의 창립 배경을 알아본다.

④ 홍경래의 난이 전개된 과정을 조사한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위 자료는 일제 강점기의 형평 운동(1923년)에 대한 내용이다.

 

① 강화도 조약의 내용을 살펴본다.

1875년 일본의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1876년 조선과 일본은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기기창이 설치된 시기를 검색한다.

개항 이후 조선은 부국강병을 목표로 개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1883년 무기 제조 기관인 기기창을 세웠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조선 형평사의 창립 배경을 알아본다.

1923년 백정 출신들은 경상 남도 진주에서 형평사를 창립하고,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형평 운동을 펼쳐 나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홍경래의 난이 전개된 과정을 조사한다.

1811년 세도 정치에 시달리던 농민들과 부당한 차별 대우에 불만을 품어 오던 평안도 지방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여, 몰락한 양반인 홍경래의 지휘하에 영세 농민, 중소 상인, 광산 노동자 등이 합세하여 봉기를 일으켰다. 이를 홍경래의 난이라고 한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형평 운동

  • 배경

갑오개혁 때 신분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그 동안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백정도 평등한 지위를 얻었으나 백정 출신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냉대는 일제 강점기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총독부는 새 호적을 만들면서 백정 출신을 호적에 ‘도한’으로 써 넣거나 붉은 점을 찍어 차별하였다. 학교 입학 통지서에도 백정 신분을 밝힘으로써 입학이 거부되거나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는 일도 많았다.

 

  • 조선 형평사 창립

백정 출신들은 경상 남도 진주에서 형평사를 창립하고(1923년),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형평 운동을 펼쳐 나갔다.

더 나아가 조선 형평사는 다른 분야의 사회 운동 단체와 협력하면서 파업, 소작 쟁의 등에 참가하는 등 항일 민족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 구호

공평은 사회의 근본, 모욕적 칭호를 폐지하자!

 

  • 기출 자료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
  • 운요호 사건

1875년 일본은 조선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운요호를 강화도에 보냈다.

운요호의 예고 없는 접근에 강화도의 수비대가 포격을 가하자 운요호는 영종도에 상륙하여 살인, 약탈, 방화를 저질렀다.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군대를 보내 조선에 개항을 강요하였다.

운요호

 

  •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

조선 정부는 논의를 거쳐 개항을 결정하고 일본과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을 체결하였다(1876년).

당시 회담 모습

 

  • 성격

강화도 조약은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일본에 유리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 내용

강화도 조약은 첫 번째 조항에서 조선이 자주국임을 규정하고 있다.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은 부산, 원산, 인천 3개 항구를 개항하고 일본에게 조선의 연안에 대한 측량권과 영사 재판권(치외 법권)을 인정하였다.

 

  • 조일 수호 조규 부록(1876년)

이어서 조선과 일본은 강화도 조약의 부속 조약을 체결하였다.

조일 수호 조규 부록에서는 거류지 설정과 개항장에서 일본 화폐의 유통을 허용하였다.

 

  • 조일 무역 규칙(1876년)

조일 무역 규칙에서는 양곡의 수출입 허용, 정부 소속 일본 선박의 항세 면제 등을 규정하였고 이후 수출입 상품에 대한 무관세를 허용하였다.

 

  • 조일 통상 장정(1883년)

관세 규정, 미곡 유출 제한(방곡령 시행 규정), 최혜국 대우 인정.

최혜국(最惠國) 대우

통상, 항해 조약 등에서 한 나라가 가장 유리한 대우를 상대국에도 부여하는 것

조선 후기
홍경래의 난
19세기의 세도 정치하에서 국가 기강이 해이해진 틈을 타 탐관오리의 부정과 탐학은 끝이 없었다.

삼정의 문란으로 극도에 달한 수령의 부정은 중앙 권력과도 연계되어 있어 암행어사의 파견만으로 막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농촌 사회가 피폐하여 가는 가운데 농민의 사회 의식은 오히려 더욱 강해져 갔다.

삼정의 문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수취 제도 문란으로 전정(전세 수취 제도), 군정(군포 징수 제도), 환곡(구휼 제도)의 문란을 말한다.

  • 홍경래의 난(1811년)

홍경래의 난은 세도 정치에 시달리던 농민들과 부당한 차별 대우에 불만을 품어 오던 평안도 지방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여, 몰락한 양반인 홍경래의 지휘하에 영세 농민, 중소 상인, 광산 노동자 등이 합세하여 일으킨 봉기였다.

 

  • 과정

이들은 처음 가산에서 난을 일으켜 선천, 정주 등을 별다른 저항없이 점거하였다.

한때는 청천강 이북 지역을 거의 장악하였으나, 정주성 싸움에서 패하여 5개월 만에 평정되었다.

 

  • 의의와 실패 원인

홍경래의 난은 평안도의 농민이 하나로 뭉쳐 탐관오리의 착취와 지방 차별에 반대한 농민 항쟁이었다.

이 난은 평안도 지역에 한정되어 일어났고, 지도자들이 농민층을 조직적으로 끌어들일 개혁안을 내놓지 못함으로써 실패로 돌아갔다.

 

  • 영향

그러나 정부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그 뒤에 발생한 임술 농민 봉기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렇지만 관리들의 부정과 탐학은 시정되지 않았다.

개화 정책의
추진
  • 통리기무아문 설치

개항 이후, 청과 일본이 조선을 두고 침략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조선 정부는 부국강병을 목표로 개화 정책을 추진하였다.정부에서는 이 정책을 전담할 기구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였다(1880년).

그 아래에 12사를 두어 외교, 군사, 산업 등의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 군사 제도 개편
    • 2영

기존의 5군영을 무위영, 장어영의 2영으로 통합, 개편하였다.

 

    • 별기군 창설

신식 군대의 양성을 위하여 별도로 별기군을 창설하였고, 일본인 교관을 채용하여 근대적 군사 훈련을 시키고, 사관 생도를 양성하였다.

 

  • 근대 시설

기기창(1883년, 무기 제조 기관), 박문국(1883년, 인쇄, 출판 기관, 한성순보 발행), 전환국(1883년, 화폐 발행 기관) 등의 근대 시설을 세웠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6년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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