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48번 기출 해설

문제

48. (가)~(라)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① (가) – 명량에서 적의 함대를 격파하다

② (나) – 우산국을 신라에 복속시키다

③ (다) – 진포에서 왜구를 크게 격퇴하다

④ (라) – 청해진을 중심으로 해상 무역을 전개하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이사부 – 신라 지증왕 때 우산국(울릉도)을 복속시켰다. 신라 법흥왕 때 김해 지역의 금관가야를 정복하였다.

장보고 –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적을 소탕하여 남해와 황해의 해상 무역권을 장악하였다.

최무선 – 고려 말 화통도감에서 화약과 화포를 제작했다. 화포를 이용하여 진포(금강 하구) 해전에서 왜구를 격퇴했다.

이순신 – 조선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 지역에서 이순신이 이끈 수군은 옥포에서 첫 승리를 거둔 이후 남해안 여러 곳에서 연승을 거두어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했다. 한산도 대첩, 명량 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뒀다.

 

① (가) – 명량에서 적의 함대를 격파하다

이순신에 대한 설명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나) – 우산국을 신라에 복속시키다

이사부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다) – 진포에서 왜구를 크게 격퇴하다

최무선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라) – 청해진을 중심으로 해상 무역을 전개하다

장보고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신라
지증왕
  • 국호를 신라로 바꿈
  • 왕의 칭호를 마립간에서 왕으로 고침
  • 512년, 이사부에 명하여 우산국(울릉도)을 복속시킴
  • 소를 경작에 이용하는 우경을 실시
  • 시장 중 하나인 동시의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동시전을 설치
  • 순장을 폐지
신라
법흥왕
  • 병부의 설치, 율령의 반포, 공복의 제정
  • 6세기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법흥왕 때 불교가 국가적으로 공인
  • 골품 제도를 정비
  • 진골 귀족 회의의 대표자인 상대등을 두어 중앙 집권 국가의 모습을 갖춤
  • ‘건원’이라는 연호를 사용
  • 이사부에 명하여 김해 지역의 금관가야를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
  • 17관등제를 완비
통일 신라 경제
  • 민정(촌락) 문서 – 촌락의 토지 크기, 남녀별·연령별의 정확한 인구 수, 소와 말의 수, 토산물 등을 파악하는 문서를 만들고, 조세, 공물, 부역 등을 거두었으며, 변동 사항을 조사하여 3년마다 문서를 다시 작성
  • 상품 생산이 늘어나 이전에 설치된 동시만으로는 상품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서시와 남시를 설치
  • 국제 무역이 발달하면서 이슬람 상인이 울산에까지 와서 무역
  • 당항성, 영암은 국제 무역항으로 발전
  • 장보고는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적을 소탕하여 남해와 황해의 해상 무역권을 장악
  • 산둥 반도와 양쯔 강 하류에 신라인의 거주지인 신라방과 신라촌, 신라인을 다스리는 신라소, 여관인 신라관, 절인 신라원이 만들어짐
고려의
화약 무기 제조
  • 고려 말 왜구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화통도감을 설치하고 최무선을 중심으로 화약과 화포를 제작.
  • 최무선은 화포를 이용하여 진포(금강 하구) 해전에서 왜구를 격퇴
임진왜란
  • 배경

중종 때의 3포 왜란(1510년), 명종 때의 을묘왜변(1555년) 발생

비변사를 설치하여 군사 문제를 전담하게 하는 등 대책 강구

 

  • 임진왜란 발발

일본은 전국 시대의 혼란을 수습한 뒤 철저한 준비 끝에 20만 대군으로 조선을 침략(1592년).

 

  • 이순신과 수군

전라도 지역에서 이순신이 이끈 수군은 옥포에서 첫 승리를 거둔 이후 남해안 여러 곳에서 연승을 거두어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

한산도 대첩, 명량 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둠

 

  • 의병

의병은 경상도에서 곽재우가 처음 일으킨 후 김천일, 조헌, 고경명, 정문부, 유정(사명대사), 서산대사 등이 여러 지방에서 왜군과 전투

 

  • 육군

조⋅명 연합군은 평양성을 탈환(평양성 전투)하였으며, 권율 장군은 관군, 백성과 함께 합심하여 행주산성에서 적의 대규모 공격을 물리쳤다(행주 대첩). 진주에서는 김시민이 이끄는 관민이 일본군을 물리쳤다(진주 대첩, 제1차 진주성 전투).

 

  • 훈련도감

류성룡의 건의에 따라훈련도감을 설치하여 군대의 편제와 훈련 방법을 바꾸었고, 속오법을 실시하여 지방군 편제도 개편하였으며, 화포를 개량하고 조총도 제작하여 무기의 약점을 보완

 

  • 정유재란

3년여에 걸친 명과 일본 사이의 휴전 회담이 결렬되자, 왜군이 다시 침입(1597년).

조⋅명 연합군이 왜군을 직산에서 격퇴하고 이순신이 적선을 명량에서 대파하자(명량 해전), 전세가 불리해진 왜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본국으로 철수

 

  • 임진왜란의 영향

조선 – 토지 대장과 호적의 대부분이 없어져 국가 재정이 궁핍해지고, 식량 부족. 왜군의 약탈과 방화로 불국사, 서적, 실록 등 수많은 문화재가 손실되었고, 수만 명이 일본에 포로로 잡혀감

징비록 – 류성룡이 지은 징비록에는 임진왜란 이전 일본과의 관계,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제해권 장악, 명의 군대 파견 등에 대한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일본 – 일본은 조선에서 활자, 그림, 서적 등을 약탈해 갔고, 성리학자와 우수한 인쇄공 및 도자기 기술자 등을 포로로 잡아가 일본의 성리학과 도자기 문화가 발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

명 – 조선과 명이 일본과 싸우는 동안 북방의 여진족이 급속히 성장하여 동아시아의 정세가 크게 변화

 

기출 문제 키워드

 

2026년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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