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1번 해설

문제

11. (가)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교외 체험 학습 보고서

○ 날짜: 2025년 ○○월 ○○일

○ 장소: 경상북도 안동 태사묘

○ 학습 내용

안동 태사묘는 고창 전투에서 (가)을/를 도와 견훤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워 향직을 수여 받은 권행, 김선평, 장길(장정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사당이다. 이번 체험 학습을 통해 안동이라는 지명이 고창 전투에서 승리한 (가)이/가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시킨 데서 유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① 한양을 남경으로 승격시켰다.

② 주전도감을 설치하여 해동통보를 발행하였다.

③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제를 실시하였다.

④ 청연각과 보문각을 두어 학문 연구를 장려하였다.

⑤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의 규범을 제시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후삼국 시대인 930년 고창 전투에서 후백제가 고려에 대패를 당했다.

(가)에 해당하는 인물은 고려 태조 왕건이다.

 

① 한양을 남경으로 승격시켰다.

고려 문종을 전후한 시기에 북진 정책의 퇴조와 함께 새로이 한양 명당설이 대두하여 이 곳을 남경으로 승격시키고 궁궐을 지어 왕이 머무르기도 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주전도감을 설치하여 해동통보를 발행하였다.

고려 숙종 때 해동통보를 발행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제를 실시하였다.

고려 광종 때 쌍기의 건의로 과거 제도를 시행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청연각과 보문각을 두어 학문 연구를 장려하였다.

고려 예종 때 청연각과 보문각이란 학문 연구소를 두어 유학의 발달을 촉진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의 규범을 제시하였다.

고려 태조 시기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후삼국 통일
  • 왕건은 수군을 이끌고 금성(나주)을 점령하여 광평성 시중의 지위에까지 오름
  • 918년, 태조 왕건은 고구려 계승을 내세워 국호를 고려라 하고, 자신의 세력 근거지였던 송악으로 도읍을 옮김
  • 926년, 발해가 거란에 멸망당했을 때 고구려계 유민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고려로 망명. 태조 왕건은 이들을 우대하여 민족의 완전한 통합을 꾀함.
  • 927년, 견훤이 신라 왕경을 습격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신라를 돕기 위해 출전한 고려를 공산에서 대패시킴(공산 전투). 고려의 신숭겸이 왕건을 대신하여 전사함.
  • 930년, 고창 전투에서 후백제가 고려에 대패 당함
  • 935년, 통일 신라 경순왕, 고려에 항복. 태조 왕건, 경순왕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
  • 935년, 후백제 내분으로 견훤의 아들 신검이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시킴. 견훤이 고려에 귀순.
  • 936년, 후백제의 신검이 일리천 전투에서 고려에 대패당함. 후백제 멸망, 고려 후삼국 통일
고려 태조
  • 흑창

빈민을 구제하고 위한 기구로 흑창 설치(춘궁기에 곡식을 나눠 주고 추수 후에 갚게 했던 빈민 구제 기구)

  • 사성 정책

태조는 지방 호족을 회유하기 위해 호족의 딸과 혼인하고, 왕씨 성을 하사하는 사성 정책 실시

  • 사심관 제도

건국 공신들을 사심에 임명하여, 각 자기 출신 지역의 부호장 이하의 임명을 맡게 하는 제도

  • 기인 제도

향리의 자제를 뽑아 서울에 인질로 삼고, 출신지의 일에 대하여 자문을 맡게 하는 제도

  • <정계>와 <계백료서>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가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

  • 훈요 10조

후대 왕들이 지켜야 할 정책 방향을 제시

  • 북진 정책

북진 정책을 추진하여 평양을 서경으로 삼고,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적극 개발

  • 역분전 지급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게 공훈에 대한 대가로 준 논공행상적 성격의 토지

  • 천수라는 연호 사용

 

  • 만부교 사건

고려 태조는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무도한 나라라고 하여 그 사신들을 섬으로 유배하고 낙타는 모두 만부교 아래에서 굶겨 죽였다.

고려
도교와 풍수지리설
  • 도교

불로장생과 현세의 구복을 추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도교는 여러 가지 신을 모시면서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빌며 나라의 안녕과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였다.

 

    • 초제

고려에서는 도교 행사가 자주 베풀어졌고, 궁중에서는 하늘에 제사 지내는 초제가 성행하였다.

 

  • 민간 신앙

도교에는 불교적인 요소와 도참 사상도 수용되어 일관된 체계를 보이지 못하였으며, 교단도 성립하지 못한 채 민간 신앙으로 전개되었다.

 

  • 팔관회

국가적으로 이름난 명산대천에 제사 지내는 팔관회는 도교와 민간 신앙 및 불교가 어우러진 행사였다.

 

  • 풍수지리설

풍수지리설은 미래의 길흉화복을 예언하는 도참 사상이 더해져 고려 시대에 크게 유행하였다. 고려 초기에는 개경과 서경이 명당이라는 설이 유포되어 서경 천도와 북진 정책 추진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 길지설

길지설은 개경 세력과 서경 세력의 정치적 투쟁에 이용되어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의 이론적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 한양 명당설

문종을 전후한 시기에는 북진 정책의 퇴조와 함께 새로이 한양 명당설이 대두하여 이 곳을 남경으로 승격시키고 궁궐을 지어 왕이 머무르기도 하였다.

 

    • 도선의 풍수지리 사상

도선은 선종 계통의 승려로서, 전 국토의 자연 환경을 유기적으로 파악하는 인문 지리적 지식에다 경주 중앙 귀족의 부패와 무능, 지방 호족의 대두, 오랜 전란에 지쳐서 통일의 안정된 사회를 염원하는 일반 백성의 인식을 종합하여 체계적인 풍수 도참설을 만들었다.

고려 경제 활동 고려 말, 논농사는 직파법 대신에 이앙법(모내기)이 남부 지방 일부에 보급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가 일반화

고려 후기, 이암이 중국 원나라의 농서인 농상집요를 소개

문익점은 목화씨를 가져와 목화 재배가 이루어짐

개경에 경시서를 두어 상행위를 감독

소금 전매제 시행

개경, 서경(평양), 동경(경주) 등 대도시에 주점, 다점 등 관영 상점을 둠

성종 때 건원중보, 숙종 때 삼한통보, 해동통보, 해동중보 등 동전과 활구(은병)라는 은전을 만듦

건원중보

삼한통보

해동통보

활구(은병)

 

예성강 어귀의 벽란도는 대외 무역의 발전과 함께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

고려 광종
  • 노비안검법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여 호족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국가의 수입 기반을 확대

  • 과거 제도

쌍기의 건의로 과거 제도를 시행하여, 유학을 익힌 신진 인사를 등용하고 신구 세력의 교체

  • 공복 제정

지배층의 위계 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백관의 공복 제정

  • 칭제 건원

국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황제를 칭하고(외왕내제), 광덕, 준풍 등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

  • 제위보

기금을 마련한 뒤 이자로 빈민을 구제하는 제위보를 설치

고려
교육 기관
  • 관학
    • 국자감(국학)

중앙에는 국립 대학인 국자감(국학)이 설치되었다.

국자감에는 국자학, 태학, 사문학과 같은 유학부와 율학, 서학, 산학 등의 기술학부가 있었다.

유학부에는 문무관 7품 이상 관리의 자제가 입학하고, 기술학부에는 8품 이하 관리나 서민의 자제가 입학하였다.

 

    • 향교

지방에는 향교가 설치되어 지방 관리와 서민 자제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 사학
    • 사학 12도

최충의 문헌공도를 비롯한 사학 12도가 융성하였다.

      • 문헌공도(文憲公徒)

문종 때 최충이 세운 9재 학당으로, 12도 중에서 가장 번성하여 명성이 높았다. 최충이 사망한 후 그의 시호인 문헌을 이름으로 붙였다.

 

  • 관학 진흥 시책

사학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이 과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국자감의 관학 교육은 위축되었다. 이에 정부는 관학 진흥을 위한 여러 시책을 추진하였다.

    • 서적포

숙종 때 국자감을 강화하고자 서적포를 두어 도서 출판을 활발히 하였다.

    • 7재

예종 때에는 국자감을 재정비하여 7재라는 전문 강좌를 설치하고, 양현고라는 장학 재단을 두어 관학의 경제 기반을 강화하였다. 또, 청연각과 보문각이란 학문 연구소를 두어 유학의 발달을 촉진하기도 하였다.

    • 충선왕

충선왕 때에 국학을 성균관으로 개칭하고, 공자 사당인 문묘를 새로 건립하여 유교 교육의 진흥에 나섰다.

    • 공민왕

공민왕은 성균관을 순수한 유교 교육 기관으로 개편하고 유교 교육을 강화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5년 제7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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