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29. 다음 자료에 나타난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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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하였다.
② 전개 과정에서 홍범 14조가 반포되었다.
③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는 계기가 되었다.
④ 조일 통상 장정이 체결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⑤ 구식 군인에 대한 차별 대우가 발단이 되어 일어났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884년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 급진 개화파는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하여 사대당 요인들을 살해하고 개화당 정부를 수립한 뒤, 14개조의 개혁 정강을 마련하였다(갑신정변).
①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하였다.
개화당 정부의 개혁은 청이 정변을 진압하고 일본군이 약속을 어기고 철수하면서 3일 천하로 끝이 났다.
정변을 주도하였던 급진 개화파는 일본 공사관에 피신했다가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전개 과정에서 홍범 14조가 반포되었다.
1894년 제2차 갑오개혁 추진과정에서 고종은 종묘에 나가 독립 서고문을 바치고, 개혁의 방향을 제시한 홍범 14조를 반포하였다. 이는 최초의 근대적 헌법의 성격을 지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는 계기가 되었다.
개항 후 조선 정부는 개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정부에서는 이 정책을 전담할 기구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였다(1880년).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조일 통상 장정이 체결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조일 통상 장정 이전까지 조선은 일본과 무관세 무역으로 인해 관세 자주권이 침해되었다.
1882년 관세 부과 조항이 포함된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되면서, 일본은 무관세 무역을 더 이상 고집할 수 없게 되었다.
1883년 관세 규정이 포함된 조일 통상 장정이 체결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구식 군인에 대한 차별 대우가 발단이 되어 일어났다.
1882년 임오군란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 갑신정변 |
임오군란 후 청의 내정 간섭과 민씨 정권의 친청 정책으로 급진 개화파의 개화 정책은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였다. 이에 김옥균은 개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에서 차관을 얻으려 하였으나, 차관 교섭이 실패로 끝나면서 급진 개화파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졌다 마침 청은 베트남 문제로 프랑스와 전쟁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자 조선에 주둔한 청군의 절반을 철수하였다. 급진 개화파는 이 틈을 타 민씨 정권을 몰아낼 계획을 세우고 일본의 군사적 지원을 받기로 하였다.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 급진 개화파는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하여 사대당 요인들을 살해하고 개화당 정부를 수립한 뒤, 14개조의 개혁 정강을 마련하였다(1884년).
청과의 의례적 사대 관계를 폐지하고, 입헌 군주제적 정치 구조를 지향하면서,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권과 능력에 따른 인재 등용을 주장하였다. 또, 지조법을 실시하고, 호조로 재정을 일원화하였으며, 혜상공국을 폐지하여 자유로운 상업의 발전을 꾀하였다.
개화당 정부의 개혁은 청이 정변을 진압하고 일본군이 약속을 어기고 철수하면서 3일 천하로 끝이 났다. 정변을 주도하였던 급진 개화파는 일본 공사관에 피신했다가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조선은 일본의 강요로 배상금 지불과 공사관 신축비 부담 등을 내용으로 하는 한성 조약을 체결하였다.
청⋅일 양국은 조선에서 청⋅일 양국군이 철수할 것, 그리고 장차 조선에 파병할 경우 상대국에 미리 알릴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톈진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으로 일본은 청국과 동등하게 조선에 대한 파병권을 얻었다.
갑신정변 실패 이후, 조선에 대한 청국의 내정 간섭이 더욱 강화되었다.
갑신정변은 근대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최초의 정치 개혁 운동이었다.
갑신정변 이후, 조선 정부는 청의 지나친 내정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러시아와 외교 관계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이때 조러 비밀 협약을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세력 확장에 불안을 느낀 영국은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였다(1885년).
이렇듯 열강의 조선 침략이 격화되자, 조선 주재 독일 외교관인 부들러나 개화파 지식인 유길준 등은 조선을 중립국으로 하자는 논의를 구상하기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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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갑오개혁 |
일본이 청⋅일 전쟁에서 유리해지자 조선의 내정에 적극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일본에서 망명 중이던 박영효를 불러들였다. 1894년 김홍집·박영효 연립 내각을 구성하여 군국기무처를 폐지하고 제2차 갑오개혁을 추진하였다.
고종은 종묘에 나가 독립 서고문을 바치고, 개혁의 방향을 제시한 홍범 14조를 반포하였다. 이는 최초의 근대적 헌법의 성격을 지녔다.
당시 일본이 삼국 간섭에 의해 세력이 약화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조선의 내각 대신들, 특히 내무 대신 박영효의 주도하에 단행되었다. 그러나 민비 폐위 음모 사건에 연루된 박영효가 민씨 일파에 의해 실각됨에 따라 개혁은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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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화 정책의 추진 |
개항 이후, 청과 일본이 조선을 두고 침략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조선 정부는 부국강병을 목표로 개화 정책을 추진하였다.정부에서는 이 정책을 전담할 기구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였다(1880년). 그 아래에 12사를 두어 외교, 군사, 산업 등의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하지만 임오군란으로 대원군이 집권하면서 통리기무아문은 폐지되었다(1882년).
기존의 5군영을 무위영, 장어영의 2영으로 통합, 개편하였다.
신식 군대의 양성을 위하여 별도로 별기군을 창설하였고, 일본인 교관을 채용하여 근대적 군사 훈련을 시키고, 사관 생도를 양성하였다.
기기창(1883년, 무기 제조 기관), 박문국(1883년, 인쇄, 출판 기관, 한성순보 발행), 전환국(1883년, 화폐 발행 기관) 등의 근대 시설을 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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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 |
1875년 일본은 조선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운요호를 강화도에 보냈다. 운요호의 예고 없는 접근에 강화도의 수비대가 포격을 가하자 운요호는 영종도에 상륙하여 살인, 약탈, 방화를 저질렀다.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군대를 보내 조선에 개항을 강요하였다.
조선 정부는 논의를 거쳐 개항을 결정하고 일본과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을 체결하였다(1876년).
강화도 조약은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일본에 유리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강화도 조약은 첫 번째 조항에서 조선이 자주국임을 규정하고 있다.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은 부산, 원산, 인천 3개 항구를 개항하고 일본에게 조선의 연안에 대한 측량권과 영사 재판권(치외 법권)을 인정하였다.
이어서 조선과 일본은 강화도 조약의 부속 조약을 체결하였다. 조일 수호 조규 부록에서는 거류지 설정과 개항장에서 일본 화폐의 유통을 허용하였다.
조일 무역 규칙에서는 양곡의 수출입 허용, 정부 소속 일본 선박의 항세 면제 등을 규정하였고 이후 수출입 상품에 대한 무관세를 허용하였다.
관세 규정, 미곡 유출 제한(방곡령 시행 규정), 최혜국 대우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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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오군란 |
구식 군대는 군제 개혁 후에 설립된 신식 군대(별기군)에 비해 낮은 대우를 받았다.
13개월 만에 급료로 지급된 쌀에 겨와 모래가 섞여 있자, 이에 분노한 구식 군대의 군인들이 임오군란을 일으켰다(1882년). 이들은 별기군의 일본인 교관을 죽이고 일본 공사관을 공격하였다. 한성 주변의 도시 하층민까지 합세하면서 군란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군란 세력은 경복궁까지 쳐들어가 민겸호 등 민씨 일파를 처단하고 민씨 일파의 배후 인물로 지목된 왕비를 찾았으나 왕비는 이미 피신한 상황이었다. 흥선 대원군 재집권고종이 흥선 대원군에게 군란의 수습을 맡기면서 흥선 대원군이 권력을 장악하였고 개화 정책은 중단되었다.
민씨 세력의 요청으로 군대를 파견한 청이 흥선 대원군을 군란의 책임자로 지목하여 강제로 데려갔다
민씨 세력은 다시 권력을 잡았다. 다시 집권하게 된 민씨 일파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친청 정책으로 기울어졌다.
일본은 조선 내의 거류민 보호를 내세워 군대 파견을 했으며, 조선은 일본과 제물포 조약을 체결하여 배상금을 물고, 일본 공사관의 경비병 주둔을 인정하였다(1882년).
청은 이후 조선의 내정에 적극적으로 간섭하였다. 곧, 위안 스카이 등이 지휘하는 군대를 상주시켜 조선 군대를 훈련시키고, 마젠창과 묄렌도르프를 고문으로 파견하여 조선의 내정과 외교 문제에 깊이 간여하였다.
또, 조선은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의 체결로 청나라 상인의 통상 특권을 허용하게 되고, 경제적 침략을 받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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