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7번 해설

문제

17. (가) 왕의 재위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① 대각국사 의천이 천태종을 개창하였다.

② 신돈을 중심으로 전민변정도감 사업이 추진되었다.

③ 만적이 개경에서 노비를 모아 반란을 모의하였다.

④ 최충이 문헌공도를 설립하여 유학 교육에 힘썼다.

⑤ 이규보가 고구려 계승 의식을 강조한 동명왕편을 지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고려 공민왕은 즉위 후 기철로 대표되던 친원 세력을 숙청하였다. 또한 원에게 빼앗겼던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의 땅을 수복하였다.

 

① 대각국사 의천이 천태종을 개창하였다.

의천은 고려 문종의 왕자로서 승려가 되었다. 이때는 고려가 몽골의 침입을 받기 전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신돈을 중심으로 전민변정도감 사업이 추진되었다.

공민왕은 승려 신돈을 등용하여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했다.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를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고, 강제로 노비가 된 사람을 양민으로 해방시켰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만적이 개경에서 노비를 모아 반란을 모의하였다.

1198년, 개경에서 무신 집권자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이 중심이 되어 신분 해방 운동을 시도했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최충이 문헌공도를 설립하여 유학 교육에 힘썼다.

문헌공도는 고려 문종 때 최충이 세운 9재 학당으로, 12도 중에서 가장 번성하여 명성이 높았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이규보가 고구려 계승 의식을 강조한 동명왕편을 지었다.

몽골의 침입 전인 고려 명종 때 이규보가 고구려 계승 의식을 강조한 동명왕편을 지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고려
공민왕
  • 기철로 대표되던 친원 세력을 숙청
  • 원의 간섭으로 바뀌었던 관제를 복구며, 몽골 풍속을 금지
  •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 쌍성총관부 공격, 철령 이북의 땅 수복
  • 정방 폐지
  • 승려 신돈 등용
  • 전민변정도감 설치 –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를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고, 강제로 노비가 된 사람을 양민으로 해방
  • 성균관 개편
  • 홍건적이 개경까지 침입해 오자 공민왕은 멀리 안동(복주)까지 피란
  • 왜구에게 강화도까지 약탈당하고, 개경이 위협 받음
고려
불교 통합 운동과
천태종
의천 – 천태종, 교관겸수

  • 문종의 왕자로서 승려가 됨
  • 교단 통합 운동
  • 흥왕사를 근거지로 삼아 화엄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통합 노력
  • 선종을 통합하기 위하여 국청사를 창건하여 천태종을 창시
  • 이론의 연마와 실천을 아울러 강조하는 교관겸수 제창
  • 원효의 화쟁 사상을 토대로 하여 불교 사상을 통합 노력
  • 개경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설치하고 교장 간행
  • 주전도감을 설치하고 화폐를 만들어 유통시킬 것을 주장
교관겸수(敎觀兼修)

교학과 선을 함께 수행하되, 교학의 수련을 중심으로 선을 포용하려는 통합 이론

고려
무신정권기
  • 무신정변

1170년, 의종이 개경 부근의 보현원에서 놀이를 즐길 때를 이용하여 정중부, 이의방 등의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킴

문신들을 제거하고 의종을 귀양 보낸 다음 명종을 세워 정권을 장악

무신 간 내분으로 정중부가 피살되고, 경대승, 이의민이 차례로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됨.

중방 – 최고위 무신들로 구성된 회의 기구. 무신정변 직후부터 최충헌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최고 권력 기구

무신 집권자의 변화: 이의방 →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 최충헌

최씨 정권의 성립 – 1196년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이후 4대 60여년간 최씨 정권이 지속됨

최충헌 – 봉사 10조와 같은 사회 개혁책을 제시

교정도감 – 최씨 정권 최고 권력 기구

최고 집권자는 교정별감이 되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

사병 기관인 도방을 설치하여 신변을 경호

도방은 삼별초와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 최우

아버지인 최충헌의 뒤를 이어 교정도감을 통하여 정치 권력을 행사,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하여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

서방을 설치하여 유명 문신을 머무르게 하며 정권 운영의 고문을 담당

고려 고종은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몽 항쟁을 위해 강화 천도

사병으로 조직된 도방과 함께 삼별초가 군사적 기반

야별초를 좌·우별초로 나누어 편성하기도 함

 

  • 무신 정권 시기 봉기
    • 김보당의 난

1173년 동북면병마사로 있던 김보당 등 문신 계열이 동계에서 무신 정권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 의종의 복위를 추진했지만 실패하여 처형당했다.

    • 조위총의 난

1174년, 서경에서 조위총이 무신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일으킴. 이의민이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여 상장군이 됨

    • 망이·망소이의 난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는 무거운 조세 부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망이, 망소이 형제를 중심으로 봉기

    • 김사미·효심의 난

1193년, 경상도의 운문(청도)과 초전(울산)에서는 김사미와 효심이 저항 운동을 일으킴

    • 만적의 난

1198년, 개경에서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이 중심이 되어 신분 해방 운동을 시도, 사전 발각 후 실패

고려
교육 기관
  • 관학
    • 국자감(국학)

중앙에는 국립 대학인 국자감(국학)이 설치되었다.

국자감에는 국자학, 태학, 사문학과 같은 유학부와 율학, 서학, 산학 등의 기술학부가 있었다.

유학부에는 문무관 7품 이상 관리의 자제가 입학하고, 기술학부에는 8품 이하 관리나 서민의 자제가 입학하였다.

 

    • 향교

지방에는 향교가 설치되어 지방 관리와 서민 자제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 사학
    • 사학 12도

최충의 문헌공도를 비롯한 사학 12도가 융성하였다.

      • 문헌공도(文憲公徒)

문종 때 최충이 세운 9재 학당으로, 12도 중에서 가장 번성하여 명성이 높았다. 최충이 사망한 후 그의 시호인 문헌을 이름으로 붙였다.

 

  • 관학 진흥 시책

사학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이 과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국자감의 관학 교육은 위축되었다. 이에 정부는 관학 진흥을 위한 여러 시책을 추진하였다.

    • 서적포

숙종 때 국자감을 강화하고자 서적포를 두어 도서 출판을 활발히 하였다.

    • 7재

예종 때에는 국자감을 재정비하여 7재라는 전문 강좌를 설치하고, 양현고라는 장학 재단을 두어 관학의 경제 기반을 강화하였다. 또, 청연각과 보문각이란 학문 연구소를 두어 유학의 발달을 촉진하기도 하였다.

    • 충선왕

충선왕 때에 국학을 성균관으로 개칭하고, 공자 사당인 문묘를 새로 건립하여 유교 교육의 진흥에 나섰다.

    • 공민왕

공민왕은 성균관을 순수한 유교 교육 기관으로 개편하고 유교 교육을 강화하였다.

고려
역사서 편찬
  • 7대 실록(1034년)

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왕조실록을 편찬하였으나, 거란의 침입으로 불타 버렸다.이에, 태조부터 목종에 이르는 7대 실록을 현종 때 편찬하기 시작하여 덕종 때 완성하였다.

  • 삼국사기(1145년)

인종 때 김부식 등이 왕명을 받아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기전체로 서술되었다. 신라 계승 의식이 많이 반영되었다.

  • 해동고승전(1215년)

각훈이 쓴 해동고승전은 삼국 시대의 승려 30여 명의 전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현재 일부만 남아 있다.

  • 동명왕편(1193년)

고려 명종 때 이규보의 동명왕편은 고구려 건국의 영웅인 동명왕의 업적을 칭송한 일종의 영웅 서사시로서, 고구려의 계승 의식을 반영하고 고구려의 전통을 노래하였다. 또한 무신집권기의 사회 혼란 속에서 고려의 역사 전통을 고취할 목적으로 썼다.

  • 삼국유사(1281년)

충렬왕 때에 일연이 쓴 삼국유사는 불교사를 중심으로 고대의 민간 설화나 전래 기록을 수록하는 등 우리의 고유 문화와 전통을 중시하였으며, 단군을 우리 민족의 시조로 여겨 단군의 건국 이야기를 수록하였다.

  • 제왕운기(1287년)

이승휴가 쓴 제왕운기는 우리 나라의 역사를 단군에서부터 서술하면서 우리 역사를 중국사와 대등하게 파악하는 자주성을 나타내었다.

  • 사략(1357년)

이제현은 사략을 비롯한 여러 권의 사서를 저술하였는데, 지금은 사략에 실렸던 사론만 전한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5년 제7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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