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8번 해설

문제

8. (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① 교육 기관으로 주자감을 설립하였다.

② 감찰 업무를 담당하는 중정대가 있었다.

③ 인안, 대흥 등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④ 거란도, 영주도 등을 통해 주변국과 교역하였다.

⑤ 내신좌평, 내두좌평 등 6좌평의 편제를 마련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가)에 해당하는 국가는 발해이다.

발해 문왕 때 수도를 중경에서 상경으로 옮겼다.

영광탑과 이불병좌상은 발해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① 교육 기관으로 주자감을 설립하였다.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감찰 업무를 담당하는 중정대가 있었다.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인안, 대흥 등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발해 무왕과 문왕의 연호는 각각 인안과 대흥이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거란도, 영주도 등을 통해 주변국과 교역하였다.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내신좌평, 내두좌평 등 6좌평의 편제를 마련하였다.

백제의 통치 체제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⑤번이다.

 

남북국의
건축과 탑
  • 8세기 중엽에 세운 불국사와 석굴암이 통일 신라의 사원 건축을 대표
  • 동궁과 월지(안압지)는 통일 신라의 뛰어난 조경술을 잘 나타냄

불국사

동궁과 월지(안압지)
  • 이중 기단 위에 3층으로 쌓는 전형적인 통일 신라의 석탑 양식이 완성
  • 통일 신라 초기의 석탑으로 대표적인 것은 감은사지 3층 석탑
  • 불국사에는 통일 신라 석탑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3층 석탑과 높은 예술성과 빼어난 건축술을 보여 주는 다보탑이 있음

불국사 다보탑

불국사 3층 석탑

감은사지 3층 석탑

화엄사 사사자 3층 석탑

  • 통일 신라 말 양양 진전사지 3층 석탑은 기단과 탑신에 부조로 불상을 새김
  • 선종이 널리 퍼지면서 승려의 사리를 봉안하는 승탑과 탑비가 유행. 팔각원당형을 기본형으로 삼고 있는 승탑과 승려의 일대기를 비에 새겨 세운 탑비는 세련되고 균형감이 뛰어나 이 시기의 조형 미술을 대표.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은 이 시기의 대표적인 승탑이다.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

진전사지 3층 석탑

  • 발해 상경은 당시 당의 수도인 장안을 본떠 건설했으며, 외성을 쌓고, 남북으로 넓은 주작 대로를 내고, 그 안에 궁궐과 사원을 세웠다.

발해 영광탑

남북국의
불상 조각과 공예
  • 통일 신라
    • 불상

통일 신라 시대에 들어와 균형미가 뛰어난 불상들이 만들어졌다. 이 시기 조각의 최고 경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석굴암의 본존불과 보살상들이다.

석굴암 본존불

 

    • 공예

통일 신라에서는 불교와 관련된 석조물을 많이 만들었다. 불국사 석등과 법주사 쌍사자 석등은 단아하면서도 균형잡힌 걸작으로 꼽힌다.

통일 후에는 상원사 동종, 성덕 대왕 신종 등 범종이 많이 주조되었다. 특히, 성덕 대왕 신종은 맑고 장중한 소리와 경쾌하고 아름다운 비천상으로 유명하다.

상원사 동종은 현존하는 우리 나라 최고(最古)의 범종이다.

성덕 대왕 신종

성덕 대왕 신종 무늬

법주사 쌍사자 석등

상원사 동종

고구려의 금동 장식

무령왕릉 출토 금동 신발

 

  • 발해
    • 불상

발해에서는 불교가 장려됨에 따라 많은 불상이 제작되었다. 상경과 동경의 절터에서는 고구려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여겨지는 불상도 발굴되었다.

 

    • 공예

상경에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석등은 발해 석조 미술의 대표로 꼽힌다.

고구려 양식을 계승한 연꽃무늬 수막새를 제작했다.

말갈계 토기를 사용했다.

돌사자상

석등

발해 이불병좌상

연꽃무늬 수막새

남북국의 고분과
고분 벽화
  • 통일 신라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이 유행하였다.

고분 양식은 거대한 돌무지덧널무덤에서 점차 규모가 작은 굴식 돌방무덤으로 바뀌었다.

봉토 주위를 둘레돌로 두르고, 12지 신상을 조각하는 독특한 양식이 새롭게 나타났다.

 

굴식 돌방무덤

돌로 1개 이상의 방을 만들고 그것을 통로로 연결한 무덤으로, 일반적으로 앞방과 널방으로 구분하고, 벽에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하였다.

 

돌무지덧널무덤

신라에서 주로 만든 무덤으로 지상이나 지하에 시신과 껴묻거리를 넣은 나무덧널을 설치하고 그 위에 냇돌을 쌓은 다음에 흙으로 덮었다. 도굴이 어려워 많은 껴묻거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

돌무지덧널무덤

 

  • 발해

정혜 공주 묘는 굴식 돌방무덤으로, 모줄임 천장 구조가 고구려 고분과 닮았다.

정효 공주 묘에서는 묘지와 벽화가 발굴되었다.

정혜 공주 묘 비석

정효 공주 묘

발해 통치 체제
  • 중앙 정치 조직 – 3성 6부, 당의 제도를 수용하였지만, 그 명칭과 운영은 발해의 독자성을 유지. 좌·우사정이 6부를 나누어 관할.
  • 중앙의 최고 교육 기관으로 주자감 설치
  • 지방 행정 조직은 5경 15부 62주로 조직
  • 군사 조직은 중앙군으로 10위를 둠
  • 서적 관리, 주요 문서 작성 등을 위해 문적원을 설치
  • 관리의 비리 감찰 업무를 수행하는 중정대 설치
발해 무왕
  • 732년, 장문휴의 수군으로 당의 산둥 지방 공격
  • 인안이라는 독자적인 연호 사용
발해 문왕
  • 당과 친선 관계를 맺으면서 당의 문물을 받아들여 체제를 정비하고, 신라와도 상설 교통로를 개설하여 대립 관계를 해소
  • 수도를 중경에서 상경으로 옮김
  • 대흥이라는 독자적인 연호 사용
삼국
통치
체제
  • 고구려

제가 회의 – 고구려 초기에 국정을 논의하고 결정했던 귀족 회의

대대로(또는 막리지)가 국정을 총괄

지방의 여러 성에 욕살, 처려근지 등을 둠

 

  • 백제

정사암 회의 – 재상의 선출 등 국가의 주요 사항을 의논하고 결정하던 백제의 귀족 회의

6좌평제와 16관등제

상좌평이 국정을 총괄

무령왕 때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함으로써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

 

  • 신라

화백 회의 – 신라에서 국가의 중요한 일을 의논하던 귀족 회의체

17관등제

골품 제도 – 신라인의 일상 생활까지 규제

발해 경제
  • 목축

솔빈부의 말은 주요한 수출품이 되었다.

  • 무역

발해의 수출품은 주로 모피, 인삼 등 토산물과 불상, 자기 등 수공업품이었다. 수입품은 귀족의 수요품인 비단, 책 등이었다.

거란도, 영주도를 통해 주변국과 교역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5년 제7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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