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1번 해설

문제

41. (가)~(마)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① (가) – 아침 이슬, 건전 가요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되다

② (나) – 병정님, 조선인에 대한 징병제 실시를 미화하다

③ (다) – 경성 방송국, 우리말 방송을 검열하여 송출하다

④ (라) – 미쓰코시 백화점, 자본주의적 소비문화가 이식되다

⑤ (마) – 신여성, 여권 신장 등의 내용으로 여성을 계몽하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① (가) – 아침 이슬, 건전 가요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되다

박정희 정부 시기 아침 이슬 등의 곡이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나) – 병정님, 조선인에 대한 징병제 실시를 미화하다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였다.

1944년 징병제를 시행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다) – 경성 방송국, 우리말 방송을 검열하여 송출하다

1927년 일제 강점기에 경성방송국이 개국을 하여 라디오 방송을 송출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라) – 미쓰코시 백화점, 자본주의적 소비문화가 이식되다

1930년 무렵 서울에는 10만여 명의 일본인이 살고 있었다. 이들 일본인은 본정(현 충무로), 명치정(현 명동), 황금정(현 을지로) 일대를 중심으로 일본인 거리를 이루었다.

그리하여 청계천을 경계로 남쪽의 일본인 거리는 남촌, 북쪽의 한국인 거리는 북촌으로 불렀다.

당시 남촌의 거리는 서울의 정치와 상업의 중심지로서 관공서, 은행, 백화점(화신, 미쓰코시), 상가, 도로 포장, 신호등, 가로등, 네온등 등 근대 도시의 겉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마) – 신여성, 여권 신장 등의 내용으로 여성을 계몽하다

1920년대를 전후로 <신여성>, <삼천리>, <별건곤> 등의 잡지가 창간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①번이다.

 

일제의
국가 총동원법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였다.

 

  • 인적 수탈
    • 군사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병력이 부족해지자 수많은 한국인 청년을 강제 동원했다.

태평양 전쟁으로 전선이 확대되자, 일제는 1943년에 학도 지원병 제도를 실시하여 많은 학생까지 전쟁터로 끌고 갔다.

1938년 지원병제, 1943년 학도 지원병제, 1944년 징병제 시행.

 

    • 노동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노동력도 강제로 동원하였다.

1939년 국민 징용령, 1944년 여자 정신 근로령 시행.

 

    • 일본군 위안부

일제는 수많은 여성들을 중국과 남양 군도 등지의 전쟁 지역으로 끌고 가 일본군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끔찍한 삶을 강요하였다.

 

  • 물적 수탈
    • 공출 제도

일제는 놋그릇, 놋대야, 수저, 농기구, 교회와 사찰의 종 등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금속 제품이라면 가리지 않고 빼앗았다.

 

    • 산미 증식 계획 재시행

일제는 전쟁으로 식량이 부족해지자 산미 증식 계획을 다시 시행하였다.

 

    • 식량 배급제

일제는 농가마다 목표량을 정해 미곡 공출제와 식량 배급제를 실시하였다.

인구의 증가와
도시의 변화
  • 식민지 도시 계획

조선 총독부는 서울에 도시 개수 계획을 도입하여 도시의 모습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또, 경복궁, 창경궁, 경희궁 같은 전통 건물을 마구 헐어 내고, 총독부, 경성부 청사, 경성 역사 같은 관공서와 공공 시설, 공원, 학교 등을 잇따라 건립함에 따라 서울의 모습은 점차 식민지 도시 풍경으로 변해 갔다.

 

  • 북촌과 남촌

1930년 무렵 서울에는 10만여 명의 일본인이 살고 있었다. 이들 일본인은 본정(현 충무로), 명치정(현 명동), 황금정(현 을지로) 일대를 중심으로 일본인 거리를 이루었다.

그리하여 청계천을 경계로 남쪽의 일본인 거리는 남촌, 북쪽의 한국인 거리는 북촌으로 불렀다.

당시 남촌의 거리는 서울의 정치와 상업의 중심지로서 관공서, 은행, 백화점(화신, 미쓰코시), 상가, 도로 포장, 신호등, 가로등, 네온등 등 근대 도시의 겉모습을 갖추고 있었지만, 북촌의 거리는 그렇지 못하였다.

화신 백화점

끽다점(다방)

 

  • 대중 문화

일제 강점기에 도시를 중심으로 의식주와 같은 일상생활에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신문, 잡지와 같은 매체에 새로운 대중문화가 소개되어 유행하였다.

이에 ‘모던 걸, 모던 보이’와 같이 서양식 옷차림에 쇼핑과 외식을 즐기는 사람이 등장하였다.

서양 간식인 캐러멜이 소개되었다.

 

  • 잡지

1920년대를 전후로 <신여성>, <삼천리>, <별건곤> 등의 잡지가 창간되었다.

 

  • 주택

도시에 사람이 몰리면서 이전에 볼 수 없던 주택이 나타났다. 1920년대 이후에 상류층의 문화 주택, 중류층의 개량 한옥, 중⋅하류층의 영단 주택이 등장하였다.

서울 변두리에는 빈민이 토막집을 짓고 살았다.

일제 강점기
종교 문학 예술
  • 종교
    • 천도교

천도교의 지도자들은 3⋅1 운동을 주도한 후 제2의 독립 선언 운동을 계획하였다.

천도교에서는 개벽, 신여성, 어린이 등의 잡지를 발간하여 민족 계몽에 노력하였다.

    • 대종교

단군 신앙을 내세운 민족 종교인 대종교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국권이 침탈된 직후부터 만주로 이동하여 민족 교육 운동을 전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광단과 북로 군정서를 결성하여 항일 무장 투쟁을 벌였다.

    • 원불교

박중빈은 원불교를 창시하고, 개간 사업과 저축 운동을 전개하여 민족의 자립 정신을 키워 갔으며, 남녀 평등, 허례 허식의 폐지 등 새생활 운동을 전개하였다.

    • 개신교

개신교는 국권 피탈 이후 경제, 사회, 문화 각 방면에 걸쳐 민족 운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일제로부터 심한 탄압을 받았다.

일제 말기에는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운동을 벌여 그 지도자들의 일부가 체포, 투옥되기도 하였다.

    • 불교

불교에서는 일제가 한국 불교계를 장악하려는 목적으로 제정한 사찰령을 폐지하려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한용운은 조선 불교 유신론을 주장하여 민족 불교로서의 전통을 이어 갔다.

    • 천주교

천주교는 민중 계몽 운동에 주력하였으며, 일부 신자는 만주에서 무장 항일 운동 단체인 의민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 문학
    • 1910년대

1910년대의 대표적인 작가는 최남선과 이광수이다.

이광수는 그의 소설 무정이 계몽기의 신문학을 총결산할 만한 작품이라 평가될 정도로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였다.

    • 1920년대

3⋅1 운동 이후, 문학계에는 그 이전까지의 계몽주의적 성격과는 다른 새로운 사조가 들어왔고, 이 때 일부 작가들은 동인지를 간행하였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동인지는 창조, 백조, 폐허였다.

그리고 이 즈음에 개벽, 조선지광 등의 잡지가 출간되어 작품 발표의 기회가 많아져 문학 활동이 왕성해졌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의 영향 아래 식민지 현실을 고발하고 계급 의식을 고취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신경향파 문학이 등장하였다.

이와 더불어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식민지 현실과 계급 모순을 적극적으로 비판한 카프(KAPF, 조선플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한용운은 님의 침묵을 통하여 우리 민족에게 자주 독립의 신념을 북돋워 주었다.

    • 1930년대

1930년대 이후 식민 통치에 대한 저항을 극렬히 드러내는 저항 문학이 등장하였다.

이육사의 <광야>, <절정>, 심훈의 <그날이 오면>,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서시>, <쉽게 쓰여진 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대표적이다.

심훈의 <상록수>는 농촌 계몽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 예술
    • 음악

음악계에서는 홍난파와 현제명 등의 작품이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잘 어울려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편, 국외에서 활동하던 안익태는 애국가 합창을 넣은 ‘한국 환상곡’을 작곡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표현하였다.

이애리수, 황성옛터 고려의 옛 궁터 만월대의 텅 빈 밤과 서정
윤심덕, 사의 찬미 비극적인 삶으로 빚어낸 염세와 허무
고복수, 타향살이 고향을 떠나 살게 된 이들의 짙은 향수
이난영, 목포의 눈물 항구를 배경으로 그리는 이별과 눈물의 정서

 

    • 미술

미술에서는 이중섭의 활동이 특히 두드러졌다.

    • 연극

3·1 운동 이후 토월회가 민중 계몽을 주장하며 신극 운동을 전개하였다.

    • 영화

영화계에서는 나운규가 강렬한 민족 의식을 반영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아리랑(1926)은 일제 강점기 민족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다.

 

  • 기타

우리 나라 최초의 비행사인 안창남은 1922년 12월에 여의도 상공에서 수만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국 방문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쳐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1927년 경성방송국이 개국을 하여 라디오 방송을 송출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하였다.

일제강점기 시기 경성과 평양을 대표하는 경성 축구단과 평양 축구단이 장소를 번갈아 가면서 경평 축구 대회를 벌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5년 제7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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