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학년도 수능 한국사 14번 해설 – 대한 매일 신보

14번 문제

14. 밑줄 친 ‘신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선 고 문

피고인은 ‘장인환 등이 한국의 독립과 자유를 방해하는 스티븐스를 저격했으니 그야말로 애국지사’라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 이를 본 사람은 누구나 피고인이 항일을 주창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략)…피고인은 치외 법권에 의지하여 신문지법의 규제를 벗어났다. 이 때문에 일본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피고인이 양기탁과 함께 발행하는 신문을 이용하려 한다. …(중략)… 본 재판관은 영국 법령에 따라 피고인을 3주간 수감할 것을 명한다.

① 국채 보상 운동을 지원하였다.

② 최초로 발행된 순 한글 신문이었다.

③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기관지 역할을 하였다.

④ 조선 총독부의 ‘문화 통치’ 방침에 따라 창간되었다.

⑤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논한 시일야방성대곡을 게재하였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베델과 양기탁이 중심이 된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에 창간되었다.

통감부의 극심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영국인 베델을 발행인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일본의 침략에 반대하는 논설을 실을 수 있었다.

그러다 1908년 통감부는 신문지법을 개정하여 대한매일신보를 규제하였다.

 

① 국채 보상 운동을 지원하였다.

1907년 서상돈, 김광제의 제안으로 대구에서 국채 보상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당시 대한 매일 신보 등의 언론 기관들은 모금 운동에 앞장섰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최초로 발행된 순 한글 신문이었다.

1896년에 독립 협회의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은 대중을 계몽하여 근대화를 촉진하려는 순 한글판과, 외국인에게 우리의 처지를 홍보하는 영문판으로 발행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기관지 역할을 하였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기관지로 독립신문을 간행하여 배포하였다.

이 독립신문은 독립 협회의 독립신문과는 다른 신문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조선 총독부의 ‘문화 통치’ 방침에 따라 창간되었다.

3⋅1 운동 이후 일제는 이른바 문화 통치를 표방하였다.

문화 통치의 일환으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우리 민족의 신문 발행이 허가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논한 시일야방성대곡을 게재하였다.

복수 정답의 원인이 된 보기이다.

황성신문에 실렸던 시일야방성대곡이 대한매일신보에도 실린 적이 있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①, ⑤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17학년도(2016)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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