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학년도 수능 한국사 20번 해설 – 7·4 남북 공동 성명

20번 문제

20. 밑줄 친 ‘이 성명’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남북 적십자 회담을 계기로 남북한은 1972년에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 성명은 분단 이후 남북한이 최초로 통일과 관련된 사항을 합의하여 발표한 것이다.

① 실력 양성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② 좌우 합작 운동의 계기가 되었다.

③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채택되었다.

④ 미∙소 공동 위원회의 개최가 결정되었다.

⑤ 자주, 평화, 민족적 대단결의 통일 3대 원칙이 제시되었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① 실력 양성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일부 지식인들은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먼저 민족의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력 양성 운동을 전개했다.

실력 양성 운동은 적자생존의 원리를 내세운 사회 진화론에 기반한 것으로, 이미 1900년대 애국 계몽 운동 당시 국권 회복의 방법으로 제기된 바 있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좌우 합작 운동의 계기가 되었다.

1946년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결렬되고, 이승만은 정읍에서 남한만이라도 단독 정부를 수립하자고 주장하였다.

1946년 7월 단독 정부 수립에 따른 분단을 막기 위해 여운형과 김규식 등 중도 세력은 좌우 합작 위원회를 구성하여 통일 정부 수립 운동을 전개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채택되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어 학회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미∙소 공동 위원회의 개최가 결정되었다.

1945년 12월에 모스크바에서 미국, 영국, 소련의 3국 외상 회의가 개최되었다.

모스크바의 3국 외상 회의에서는 한국에 조선 민주주의 임시 정부를 수립하기 위하여 미⋅소 공동 위원회를 설치하고, 최고 5년간 미국, 영국, 중국, 소련의 4개국이 신탁 통치를 실시한다고 결정하였다.

1946년 3월 신탁 통치안에 대한 격렬한 반대 운동에도 불구하고, 신탁 통치 문제와 한국의 임시 정부 수립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자주, 평화, 민족적 대단결의 통일 3대 원칙이 제시되었다.

박정희 정부 시기인 1972년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7·4 남북 공동 성명에는 통일의 3대 원칙으로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이 제시되었다.

또한 남북 조절 위원회를 설치하여 통일 방안을 논의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17학년도(2016)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

 

한국사 시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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