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학년도 수능 한국사 17번 해설 – 대한민국 임시 정부

17번 문제

17. (가)의 활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성명서

우리는 독립운동의 방향을 논의하고자 국민 대표 회의에 참석했다. (가)은/는 민족 대표 33인이 전 민족을 대표해 독립을 선언한 운동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중략)… (가)이/가 독립운동을 이끄는 데에 적절하지 못한 조직과 제도를 가지고 있다면, 본 회의를 통해 개조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① 대성 학교를 설립하였다.

② 대한 자강회를 조직하였다.

③ 정우회 선언을 발표하였다.

④ 브나로드 운동을 추진하였다.

⑤ 대일 선전 포고문을 발표하였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1919년 3⋅1 운동 이후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조직할 지도부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민주공화제를 바탕으로 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하지만 이승만의 국제 연맹 위임 통치 청원 사건을 계기로 신채호, 박용만 등의 무장 투쟁론자들은 이를 문제 삼아 임시 정부의 개편을 요구하였다.

이어 여러 민족 운동가는 독립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1923년 국민대표 회의를 개최하였다.

 

① 대성 학교를 설립하였다.

신민회는 평양에 대성 학교(1908년), 정주에 오산 학교(1907년)를 세워 인재를 길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대한 자강회를 조직하였다.

1906년 대한 자강회는 전국 각지에 지회를 설치하고, 150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기에 이르렀으나, 일제가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 황제의 퇴위를 강요하자, 격렬한 반대 운동을 주도하다가 강제로 해체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정우회 선언을 발표하였다.

1925년 치안 유지법으로 인해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사회주의 세력은 정우회 선언을 발표하여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의 협동을 강조하였다.

이로 인해 신간회 설립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브나로드 운동을 추진하였다.

1931년 <동아일보>는 ‘배우자, 가르치자, 다 함께 브나로드’라는 구호 아래 학생이 참여하는 농촌 계몽 운동인 브나로드 운동을 벌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대일 선전 포고문을 발표하였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정식으로 일제에 대일 선전 포고를 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17학년도(2016)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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