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학년도 6월 모의평가 한국사 19번 해설 – 5.18 민주화 운동

19번 문제

19. (가) 사건이 있었던 시기의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

① 4·13 호헌 철폐 집회에 참가한 회사원

② 광주 시가지에서 계엄군과 대치하는 시민

③ 3·15 부정 선거를 규탄하며 행진하는 교수

④ 3선 개헌 반대 시위에서 구호를 외치는 학생

⑤ 5·16 군사 정변의 발발 소식을 알리는 아나운서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위 자료는 1980년 5월 18일에 발생한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내용이다.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모든 정치 활동을 금지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 전남대학교 앞에서 학생들이 ‘비상계엄 해제’, ‘전두환 퇴진’, ‘신군부 퇴진’, ‘김대중 석방’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신군부는 광주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하여 계엄군을 투입하였고, 이들은 폭력을 행사하며 무차별적으로 시민들과 학생을 체포하였다.

5월 21일 계엄군은 시위 중인 시민들에게 총을 쏘아 많은 사상자를 내었고, 시위는 더욱 확대되었으며 시민들은 스스로 무장하여 시민군을 조직하였다.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은 상무충정작전을 실행하였다. 4시 5분 전남도청에서 시민군과 교전이 벌어졌고, 4시 55분 전남도청 진압이 완료되었다.

 

① 4·13 호헌 철폐 집회에 참가한 회사원

1987년에 발생한 6월 민주 항쟁에 대한 내용이다.

1987년 1월 대학생 박종철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러한 가운데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은 시민들의 개헌 요구를 무시하고 기존 헌법에 따라 간선제로 다음 대통령을 뽑겠다고 발표하였다.

6월 10일, 민주 헌법 쟁취 국민운동 본부의 주도로 ‘박종철 고문 살인 조작·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 대회’가 열렸다.

6월 26일에는 100만여 명이 시위에 참여하여, ‘직선제 쟁취’,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쳤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광주 시가지에서 계엄군과 대치하는 시민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3·15 부정 선거를 규탄하며 행진하는 교수

1960년에 발생한 4.19 혁명에 대한 내용이다.

1960년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은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 과정에서 대대적인 부정을 저질렀다(3·15 부정 선거).

시민들은 부정 선거에 맞서 강력하게 저항하였다. 선거 당일에 마산, 광주, 서울 등에서 부정 선거 규탄 시위를 열었다.

1960년 4월 11일,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최루탄을 맞고 사망한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었고, 이를 계기로 시위는 격화되었다.

1960년 4월 19일, 서울에서 학생과 시민 수만 명이 시위에 나섰다. 시위대가 부정 선거와 독재 정치를 규탄하며 경무대(현 청와대)로 향하자, 경찰이 시위대에 발포하여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4·19 혁명).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3선 개헌 반대 시위에서 구호를 외치는 학생

박정희 정부는 국가 안보와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구실로 대통령 3회 연임을 허용하는 개헌을 추진하였다.

1969년 3선 개헌을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졌지만, 결국 여당 의원들만 따로 모여 편법적으로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1971년 박정희는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5·16 군사 정변의 발발 소식을 알리는 아나운서

1961년 5월 16일, 박정희와 일부 군인들이 군사 정변을 일으켜 헌정을 중단하였다.

군사 정변 세력은 국가 재건 최고 회의를 구성하고 군정을 시행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18학년도(2017) 6월 모의평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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