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학년도 6월 모의평가 한국사 10번 해설 – 최익현

10번 문제

10.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한국사 인물 연보

(가)

1873년 서원 철폐를 비롯한 흥선 대원군의 정책을 비판하고 퇴진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림.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에 반대하며 위정척사 운동에 앞장섬.

1896년 을미사변 이후 시행된 단발령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림.

1906년 을사늑약에 반대하여 궐기를 촉구하며 의병을 일으킴. 쓰시마 섬에 끌려가 순국함.

① 한국통사를 저술하였다.

② 왜양일체론을 주장하였다.

③ 한인 애국단을 조직하였다.

④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였다.

⑤ 조선 혁명 선언을 작성하였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위 자료에서 해당하는 인물은 최익현이다.

 

① 한국통사를 저술하였다.

박은식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참여하면서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하여 일제의 불법적인 침략을 규탄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왜양일체론을 주장하였다.

1870년대 강화도 조약이 체결될 무렵, 최익현 등이 왜양일체론을 내세우며 일본의 개항 요구에 반대하였다(개항 반대 운동).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한인 애국단을 조직하였다.

김구는 1931년 임시 정부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한인 애국단을 조직하여 의열 투쟁을 전개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였다.

의병장으로 국내외에서 항일전을 전개하고 있던 안중근은, 우리나라 침략에 앞장섰던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대표와 회담하기 위하여 하얼빈에 도착했을 때, 그를 사살하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분명히 보여 주었다(1909년).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조선 혁명 선언을 작성하였다.

의열단은 신채호가 작성한 <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삼아 민중 직접 혁명을 달성하고자 노력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19학년도(2018) 6월 모의평가 한국사

 

한국사 시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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