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학년도 6월 모의평가 한국사 3번 해설 – 고구려의 신라 구원

3번 문제

3. 다음 사건의 영향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

왕이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 신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중략)… 왕의 군대가 이르자 왜적이 물러가므로, 뒤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의 종발성에 이르렀다. 성이 곧 귀순하여 복종하므로, 병사를 두어 지키게 하였다.

– 「광개토 대왕릉비」 –

① 임오군란이 일어났다.

② 병자호란이 발발하였다.

③ 천리장성이 축조되었다.

④ 금관가야가 쇠퇴하였다.

⑤ 북벌 운동이 추진되었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400년 신라 해안에 나타나던 왜의 세력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고구려 광개토 대왕의 군대가 신라 영토 내에 머물렀다(신라 구원).

 

① 임오군란이 일어났다.

구식 군대는 군제 개혁 후에 설립된 신식 군대(별기군)에 비해 낮은 대우를 받았다.

1882년 13개월 만에 급료로 지급된 쌀에 겨와 모래가 섞여 있자, 이에 분노한 구식 군대의 군인들이 임오군란을 일으켰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병자호란이 발발하였다.

1636년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이 발발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천리장성이 축조되었다.

고구려 시대에 수나라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고려 시대에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천리장성을 축조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금관가야가 쇠퇴하였다.

고구려의 신라 구원 후에 금관가야는 고구려의 공격으로 쇠퇴하였고 이후 고령의 대가야가 연맹을 주도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북벌 운동이 추진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이후 오랑캐에 당한 수치를 씻고, 임진왜란 때 도와 준 명에 대한 의리를 지켜 청에 복수하자는 북벌 운동이 전개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19학년도(2018) 6월 모의평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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