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학년도 9월 모의평가 한국사 17번 해설 – 6.25 전쟁

17번 문제

17.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헤이그 특사 파견

② 청산리 전투 승리

③ 자유시 참변 발생

④ 인천 상륙 작전 개시

⑤ 미.소 공동 위원회 개최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6·25 전쟁이 시작되었다.

1950년 10월, 중국군의 개입 후 장진호 전투가 벌어졌고 국군과 유엔군은 남쪽으로 후퇴하였으며, 이 가운데 흥남 철수 작전도 이뤄졌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 협정이 조인됨으로써 3년여 만에 6·25 전쟁은 정전으로 매듭지어졌다.

 

① 헤이그 특사 파견

1907년 고종은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기 위해 헤이그에 특사(이상설, 이준, 이위종)를 파견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청산리 전투 승리

1920년 10월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 군정서와 홍범도의 대한 독립군을 중심으로 한 독립군 연합 부대는 청산리 일대 백운평, 완루구, 어랑촌, 고동하 등지에서 6일 동안 10여 차례의 전투 끝에 일본군을 격파하였다. 이것이 청산리 전투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자유시 참변 발생

1920년 간도 참변 이후 독립군은 소⋅만 국경에 위치한 밀산부에 집결하였다. 그 곳에서 서일을 총재로 하는 대한 독립 군단을 조직한 후, 일본군의 추격을 피하여 소련 영토 내로 이동하였다.

독립군은 그 곳에서 한국인의 민족 운동을 지원한다고 하는 적색군의 감언이설에 속아 자유시로 이동하였고, 적색군을 도와 내전에 참전하였다.

그러나 적색군은 내전에 승리한 후 독립군의 무장을 강제로 해제하려 하였고, 이에 저항하는 독립군을 공격함으로써 무수한 사상자를 낸 이른바 자유시 참변(1921년)을 야기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인천 상륙 작전 개시

1950년 9월 15일, 유엔군과 국군은 인천 상륙 작전에 성공하였다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 후 38선을 넘어 압록강까지 북진하였다.

1950년 11월 1일, 국군∙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최대로 북진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미.소 공동 위원회 개최

1946년 3월 모스크바의 3국 외상 회의에서 결정된 신탁 통치안에 대한 격렬한 반대 운동에도 불구하고, 신탁 통치 문제와 한국의 임시 정부 수립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0학년도(2019) 9월 모의평가 한국사

 

한국사 시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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