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학년도 수능 한국사 15번 해설 – 6·10 만세 운동, 광주 학생 항일 운동

15번 문제

15. (가), (나) 시기 사이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가) 순종의 서거를 계기로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은 학생들과 함께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이 계획은 일제에 의해 사전에 발각되었지만, 학생들은 예정대로 6월 10일에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나) 1929년 10월 말 나주역에서 발생한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의 충돌에 대해 경찰은 일본인 학생을 일방적으로 두둔하였다. 이러한 민족 차별에 분노한 광주 지역 학생들은 11월 3일 식민지 교육 제도 철폐 등을 요구하며 대규모 항일 시위를 전개하였다.

① 신간회가 결성되었다.

② 자유시 참변이 일어났다.

③ 남북 협상이 추진되었다.

④ 육영 공원이 설립되었다.

⑤ 군국기무처가 설치되었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가) 1926년 4월 순종이 세상을 떠나자, 사회주의 계열인 조선 공산당은 학생 단체, 천도교 일부 세력과 힘을 모아 순종의 인산일(장례일)인 6월 10일에 대규모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이 계획은 사전에 발각되면서 많은 사람이 체포되었으나, 학생들은 일제 경찰의 감시를 뚫고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 곳곳에서 격문을 뿌리며 독립 만세를 외쳤다(6·10 만세 운동).

(나) 1929년 10월 나주역에서 일본인 남학생이 한국인 여학생을 희롱하여 발생한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 간의 충돌로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시작되었다.

광주에서 시작된 항일 학생 운동은 목포와 나주로 확산되었으며, 12월에는 서울 지역까지 확대되었다.

학생들은 ‘조선인 본위의 교육 제도 확립’, ‘식민지 교육 철폐’, ‘일본 제국주의 타도’, ‘민족 해방’을 주장하였으며, 1930년 3월까지 전국에서 시위와 동맹 휴학을 지속하였다.

 

① 신간회가 결성되었다.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은 6.10 만세 운동을 함께 준비하면서 민족 유일당(민족 협동 전선)을 만들어 힘을 합칠 수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였고 신간회 창립에 기여하였다.

1927년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연대하여 최대 규모의 합법적인 민족 협동 전선 단체인 신간회를 결성하였다. 이상재가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자유시 참변이 일어났다.

1920년 간도 참변 이후 독립군은 그 곳에서 한국인의 민족 운동을 지원한다고 하는 적색군의 감언이설에 속아 자유시로 이동하였고, 적색군을 도와 내전에 참전하였다.

그러나 적색군은 내전에 승리한 후 독립군의 무장을 강제로 해제하려 하였고, 이에 저항하는 독립군을 공격함으로써 무수한 사상자를 낸 이른바 자유시 참변(1921년)을 야기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남북 협상이 추진되었다.

1948년 2월, 유엔은 소총회를 열어 한국 임시 위원단의 접근이 가능한 지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김구, 김규식 등은 남한만의 선거로 단독 정부가 수립되면 남북의 분단이 계속될 것을 우려하여 남북한이 협상을 통해서 통일 정부를 수립하자고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김구 등은 남북 협상을 제의하였다.

1948년 4월, 평양에서 김구와 김규식, 김일성과 김두봉 등이 참석하는 남북 연석 회의가 열렸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육영 공원이 설립되었다.

1886년 정부는 육영 공원을 세워 헐버트 등 미국인 교사 세 사람을 초빙하여 주로 현직 관료와 상류층의 자제들에게 신지식과 외국어를 가르쳤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군국기무처가 설치되었다.

1894년 제1차 갑오개혁이 추진되면서 군국기무처가 설치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1학년도(2020)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

 

한국사 시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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