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학년도 수능 한국사 9번 해설 – 임술 농민 봉기

9번 문제

9. 다음 자료를 활용한 탐구 주제로 가장 적절한 것은?

  • 진주민 수만 명이 무리를 지어 서리들의 가옥을 불사르고 부수자 경상우병사 백낙신이 이들을 해산시키려 하였다. 이때 백성이 그를 둘러싸고 삼정의 문란에 대해 항의하였다.
  • 임술년에 경상도 단성, 함양, 개령, 인동 등 여러 고을에서 백성이 소동을 일으켰다. 이들은 수령을 포위하고 조세를 줄여 줄 것을 요구하거나 향리들을 쫓아내고 환곡 장부를 빼앗았다.

① 신라 말 지방 호족의 성장

② 고려 전기 문벌 귀족 사회의 동요

③ 고려 후기 삼별초의 항쟁

④ 조선 전기 훈구와 사림의 대립

⑤ 조선 후기 농민 봉기의 발생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조선 후기인 1862년 철종 때 진주에서 삼정의 문란과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수탈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몰락한 양반 출신인 유계춘 등을 중심으로 봉기를 일으켰다. 이를 임술 농민 봉기라고 한다.

임술 농민 봉기는 진주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는데, 농민들은 탐관오리와 토호의 탐학에 저항하여 한때 진주성을 점령하기도 하였다.

대규모의 농민 봉기에 당황한 세도 정권은 암행어사를 파견하여 관리들의 비리를 조사하였으며, 안핵사 박규수를 파견하여 주동자를 처벌하도록 하였다.

 

① 신라 말 지방 호족의 성장

통일 신라 말 사회가 혼란해지면서 지방에서는 호족이라 불리는 새로운 세력이 성장하였다.

호족들은 중앙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면서 반독립적인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들은 자기 근거지에 성을 쌓고 군대를 보유하여 스스로 성주 또는 장군이라고 칭하면서 그 지방의 행정권과 군사권을 장악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고려 전기 문벌 귀족 사회의 동요

고려의 문벌 귀족은 여러 세대에 걸쳐 중앙에서 고위 관직자를 배출한 가문을 뜻한다.

문벌 귀족은 과거와 음서를 통하여 관직을 독점하고, 중서문하성과 중추원의 재상이 되어 정국을 주도해 나갔다.

1126년 대표적인 문벌 귀족인 이자겸은 반대파를 제거하고 척준경과 함께 난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였다(이자겸의 난).

그러나 이자겸이 척준경에 의하여 몰려나고 척준경도 탄핵을 받고 축출됨으로써 이자겸 세력은 몰락하였다.

이자겸의 난은 중앙 지배층 사이의 분열을 드러냄으로써 문벌 귀족 사회의 붕괴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고려 후기 삼별초의 항쟁

1270년 몽골과 강화를 맺은 고려 정부가 개경으로 환도하자, 대몽 항쟁에 앞장섰던 삼별초는 왕족인 승화후 온을 왕으로 삼고 배중손의 지휘 아래 반기를 들었다. 진도와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여⋅몽 연합군과 전투를 벌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조선 전기 훈구와 사림의 대립

조선 전기 향촌 사회에서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굳히던 사림은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권력에 참여함으로써 훈구 세력을 견제하였다.

사림은 훈구 세력이 중앙 집권 체제를 강조한 데 비해, 향촌 자치를 내세우며 도덕과 의리를 바탕으로 하는 왕도 정치를 강조하였다.

과거를 통하여 중앙에 진출한 사림 세력은 주로 이조 전랑과 3사의 언관직을 차지하고 훈구 세력의 비리를 비판함으로써 그들의 일방적인 독주를 견제하였다.

훈구 세력과 사림 세력의 대립으로 사화가 발생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조선 후기 농민 봉기의 발생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1학년도(2020)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

 

한국사 시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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