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학년도 9월 모의평가 한국사 17번 해설 – 일제 민족 말살 통치

17번 문제

17. 밑줄 친 ‘이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자료는 조선 총독부 징용자 명부로, 전남 완도군 징용 대상자의 성명, 업무, 작업 장소, 기간 등이 기재되어 있다. 일제가 국가 총동원법을 시행한 이 시기에는 인적 자원에 대한 수탈이 심화되었음을 이 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① 보빙사가 파견되었다.

② 당백전이 발행되었다.

③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었다.

④ 일본식 성명 사용이 강요되었다.

⑤ 미.소 공동 위원회가 개최되었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문제 해설

일제는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여 본격적으로 인력과 물자의 수탈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일제는 강제 징용으로 한국인 노동력을 착취하였고, 학도 지원병 제도, 징병 제도 등을 실시하여 수많은 우리 젊은이를 전쟁에 동원하였다.

 

① 보빙사가 파견되었다.

1883년 조선 정부는 조미 수호 통상 조약(1882년) 체결 후 미국과 수교한 이후 미국에 답례 사절단인 보빙사를 파견하여 근대 시설을 살펴보게 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당백전이 발행되었다.

흥선 대원군 집권 시기, 경복궁 중건 자금 마련을 위해 당백전을 발행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었다.

개항 이후, 청과 일본이 조선을 두고 침략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조선 정부는 부국강병을 목표로 개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1880년 정부에서 이 정책을 전담할 기구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일본식 성명 사용이 강요되었다.

일제는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키고 침략 전쟁을 확대하면서 한국인의 정신을 말살하고 일본 국왕에 대한 숭배 사상을 주입하는 민족 말살 통치를 실시하였다. 이는 한국인을 침략 전쟁에 효율적으로 동원하려는 의도였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 정신을 뿌리뽑기 위해 이른바 일⋅선 동조론을 주장하였고, 내선 일체의 구호를 내세워 우리 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는 황국 신민화 정책을 시행하였다.

또한 성과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고쳐 쓰도록 하고(창씨개명 1940년), 황국 신민 서사 암송(1937년), 궁성 요배, 신사 참배 등을 강요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미.소 공동 위원회가 개최되었다.

1946년 3월 신탁 통치안에 대한 격렬한 반대 운동에도 불구하고, 신탁 통치 문제와 한국의 임시 정부 수립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2학년도(2021) 9월 모의평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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